한화손해보험, 몰카촬영 어쩔 수 없었다…“왜? 관행이니까…”

장애 확인 위한 ‘보험사 몰카’는 사생활 비밀 침해

2008-02-02     한종해 기자

일부 보험회사들이 계약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각종 위법행위를 일삼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보험회사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의 대부분은 병원에서 피해자들의 장애정도를 판별하는 진단서를 조작하거나 심지어 피해자를 따라다니면서 몰래 카메라로 촬영 하는 것. 특히 몰카의 경우 개인의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들춰진다는 점에서 사생활을 침해해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 15일 한화손해보험(구 신동아화재보험)이 계약자를 8일 동안 따라다니며 총 54장의 사진을 몰래 촬영한 것에 대해 초상권과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한화손해보험 측은 “장해정도 허위나 과장을 판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몰래카메라 촬영이었다”며 “전반적으로는 위축되겠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다”는 식으로 말해 사회적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방모(39ㆍ여)씨는 2000년 10월 3일 원주시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80km지점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옆 차선 차량이 차선을 급하게 변경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고 급제동했고, 이 때문에 뒤따르던 승용차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방씨의 승용차에는 남편 등 가족 5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사고로 방씨 가족은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고 차량 수리비로 1백여만원이 들었다. 이후 방씨와 방씨의 남편은 추가진단서를 발급 받아 4주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방씨의 남편은 요부전방전위증의증 및 추간판팽윤증을 추가로 진단받았다.방씨가 가입한 한화손해보험은 이 사고로 원고들이 다소 부상을 입었으나 후유장해 없이 치료가 끝났다고 판단, 방씨 등에게 합의금 2백만원을 제시했다. 이 같은 한화손해보험의 대응에 방씨 측은 발끈해 한화손해보험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손해보험측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몰카 촬영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비롯된다. 한화손해보험의 직원들이 피해를 입은 방씨 가족을 상대로 후유 장해 정도에 대한 증거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방씨와 방씨 남편에 대한 사진 54장을 몰래 촬영한 것.

8일에 걸친 몰카 촬영…증거자료 제출 목적?

한화손해보험은 2001년 9월 18일부터 2001년 9월 25일까지 8일 동안 방씨의 남편이 차량을 정비소에 맡기는 장면, 출근하는 장면, 쓰레기를 버리는 장면 등 29장의 사진을 촬영했고 방씨가 방씨의 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모습, 도로를 횡단하는 모습 등 25장의 사진을 몰래 촬영했다.이후 한화손해보험은 법원에 이들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으나 법원은 2001년 10월17일 지급액 5천만원으로 강제조정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한화손해보험이 이의신청을 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경국 법원은 한화손해보험이 원고들에게 4천3백만원을 지급하라는 강제조정결정을 내렸다.그러자 방씨 측은 한화손해보험이 초상권 및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위자료 청구소송을 재차 제기했고, 또 다른 문제로 법정공방이 시작됐다.방씨 측은 “보험사 직원들이 원고들의 승낙 없이 함부로 비밀리에 추적하면서 사생활에 대한 사진을 몰래 촬영해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원고들의 초상권 및 사생활의 평온을 누릴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정신적 피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5천만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한화손해보험,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없다” 반발

이에 대해 한화손해보험 측은 “사진 촬영 및 제출은 회사의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손해배상소송사건의 증거자료 수집을 위한 것이고, 촬영장소 또한 공개된 실외장소이며, 사진이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되었을 뿐인 점 등을 종합할 때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없다”고 방씨 측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결국 지난 5년여 간의 지루한 공방 끝에 이 사건은 방씨의 승소로 최종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지난 12월 15일 교통사고 환자 방씨 및 방씨 가족이 “보험사 직원들이 몰래 사생활 사진을 찍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한화손해보험과 보험사 직원 2명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피고 한화손해보험 측은 원고 가족에게 5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이 몇 차례에 걸쳐 원고들을 몰래 지켜보거나 차량으로 뒤따라가 촬영하고, 그 사진을 법원에 제출한 행위는 원고들이 보장받아야 할 초상권 및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 행위이므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행위”라고 밝혔다.이어 “소송당사자는 먼저 자신의 법테두리 안에서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이를 넘어서는 증거 수집은 법적인 절차에 따라야 하며 스스로 타인의 법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해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재판부는 또 “피고들이 원고들을 8일이라는 상당기간에 걸쳐 미행하거나, 차량으로 추적해 몰래 숨어서 사진 촬영함으로써 원고들이 원치 않는 사생활의 일면까지 침해한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 한화손해보험측이 제기한 ‘위법성이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험사기 적발에 활용…손보업계 영향 미칠 듯

이와 관련 한화손해보험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을 따라다니며 몰래 촬영을 하는 행위는 타 보험회사에서도 지금까지 관행으로 이뤄져왔던 부분”이라며 “피해자들이 과도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거나 장해정도에 과장이 있다고 생각되면 그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은 사진촬영밖에 없다”고 말했다.또 “사진촬영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12월 15일 판결처럼 ‘불법이다’라고 판결난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답했다.이 회사 법무팀 한 관계자는 “당시 환자의 상태가 애초 장해평가가 나온 상태와는 다르게 별 이상이 없어보였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터무니없는 보상금액을 요구하자 증거자료를 위해 사진촬영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회사가 환자들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촬영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그 당시의 사진 촬영이 이익을 추구하거나 배포를 목적으로 촬영된 사진이 아니기 때문에 범법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단 법원에서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은 만큼 몰카 촬영은 전반적으로 위축될 것”이라 덧붙였다.

한화손해보험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말도 안 된다”면서 “공익성을 띄어야 하는 보험사에서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사생활을 보호 받아야 할 보험가입자들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사진촬영을 하겠다’라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