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토사구팽'

현대산업개발, 정 회장 비자금 조성 관계된 직원의 유족 상대로 소송했다가 패소

2010-09-25     황동진 기자

 

[매일일보=황동진 기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때 아닌 구설에 올라 난감해하고 있다. 최근 재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정 회장의 비자금 조성 사건에 관계된 직원의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뒷말을 낳고 있다.

사건 당시 검찰의 수사 강도가 심해지자 이 직원은 정 회장을 위해 해외 도피까지 했을 정도로 충성심(?)이 남달랐다. 사건이 일단락 난 후 이 직원에 대한 정 회장의 대우는 불 보 듯 뻔한 일. 그런데 지난 3월 이 직원이 사망하자 정 회장의 태도는 돌변했다.

오히려 이 직원이 당시 회삿돈을 횡령했다며 채무를 승계한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때문에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설왕설래다. 일각에서는 토사구팽이라며 비하하는 이들도 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시계는 1999년으로 돌아간다. 당시 정 회장은 현대차 회장에서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시점이었다.

지난 3월 사망한 전 현대산업개 재정팀장 서모씨, “몸 바쳐 충성했건만 돌아온 건…” 

당시 현대산업개발 재정팀장이었던 서모씨는 정 회장에게 “건설회사의 경우 현장을 관리하는 등 회사경영 차원에서 여러모로 부외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부외자금이란 회계장부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자금을 일컫는다.

정 회장은 서씨의 얘기에 솔깃했다. 당시 현대그룹에서 현대산업개발이 분리되는 상황에서 서씨의 말이 타당성이 있어보였던 것.  
 
정 회장 비자금 조성 사건 전말

이후 서씨는 부외자금을 만들라는 정 회장의 승낙을 얻고서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

당시 리젠트증권 자본시장실에 근무하던 장모씨와 에이스캐피탈을 운영하던 진모씨 등과 짜고 현대산업개발로부터 고려산업개발 신주인수권 550만개를 구입하는 것으로 가장, 경비 명목으로 대금의 10%를 받기로 양사 대표이사의 명의의 신주인수권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서씨는 매각대금 632억5000만원 중 약정한 사례금(10%)을 제외한 569억2500만원을 전달받은 뒤, 액면금 1억원짜리 증권금융채권 30장(시가 35억원)을 구입해 이를 정 회장에게 전달했다.

이들의 행각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게 된 계기는 2006년 검찰이 법조 브로커 윤상림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였다. 검찰이 윤씨의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구속된 에이스캐피탈을 운영하던 진모씨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돈거래가 드러난 것.

진씨는 2001년 정관계 로비사건으로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인물이었기에 더욱 의심을 샀다. 검찰은 전방위 수사를 벌인 결과, 정 회장을 비자금 56억원을 조성한 혐의(배임)로 불구속 기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비자금 3억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횡령)만 인정,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 측은 “재정팀장인 서씨가 모든 일을 벌인 것”이라며 “정 회장과는 무관하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서씨는 이와 달리 정 회장과 회사를 위해 해외 도피까지 갈 정도로 남다른 충성심을 발휘했다.

이후 사건이 일단락나자 정 회장도 서씨의 공로를 인정,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는 후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3월 서씨가 사망하자 정 회장의 태도는 돌변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씨가 시가 35억원 규모의 증권금융채권을 제외한 539억2500만원을 횡령했다며, 서씨의 유족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6억원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종언)는 현대산업개발이 서씨의 유족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서씨가 단독으로 처분대금을 횡령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기각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말들이 많다. 현대산업개발이 단지 6억 때문에 서씨의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서씨가 먼저 정 회장에게 접근한 만큼 현대산업개발 측의 주장대로 횡령을 했을 거나,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시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회장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소위 토사구팽격이란 것.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홍보실 관계자는 <매일일보>과 전화통화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며 ”법무팀에도 물어보니 가르쳐 주지 않아 아무것도 답변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현대산업개발 “아무것도 모른다”

한편, 정 회장은 남양주세무서를 상대로 낸 양도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도 지난해 말 패소 판결을 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 회장은 1999년 신세기통신 주식 52만4510주를 당시 현대산업개발 재정팀장 서씨를 통해 에이스캐피탈 등 네 곳에 분산처분하고 양도가액 147억여원에 해당하는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검찰은 2004년 ‘진승현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실거래가가 18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검찰은 정 회장이 32억여원 중 양도세 7억여원을 탈루했다고 세무당국에 통보했다.

관할 남양주세무서는 2006년 5월 정 회장에게 누락된 양도세와 증권거래세 등 세금 7억9000여만원을 부과했다. 이에 현대산업개발은 남양주세무서를 상대로 양도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고, 1심에서는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4일 서울고법 행정6부(부장 황찬현)는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에 대해서도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