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대책’ 서민들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임대주택 건설 용지 확보방안 미흡 등 허점드러내
정부가 또 다시 주택시장 안정대책(1·31)을 내놓았다. 정부가 올 들어 내놓은 대책은 지난 1월 11일 발표한 ‘1·11 대책’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 등 3개 부처가 지난 31일 공동으로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과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공공부문 역할 강화 방안(1·31대책)’의 핵심은 말 그대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고 공공분야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방안을 통해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고 안정된 기반위에 향후 부동산 정책을 서민의 주거복지 안정으로 전환하겠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장기임대주택 공급확대 ▲분양주택 공급확대를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 강화 ▲서민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사회 친화적·수요자 중심의 임대정책 추진 등 크게 4가지 사항을 정책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260만가구 지을 땅은 확보됐나?
그러나 정부의 정책대로 부동산 시장은 안정될까? 또 분양주택 공급확대를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은 강화될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회의적이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대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선 장기임대주택 공급확대 방안을 놓고 보자. 정부는 대책에서 올해부터 오는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총 260만가구의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장기임대주택 물량 확대는 필요하다. 문제는 서민 실수요자용 국민임대주택이 직주근접이 가능하도록 도심, 역세권 주변에 들어설 것이냐이다.
그러나 도심은 땅값이 비싸다. 게다가 지자체나 주민반대도 무시할 수 없다. 설령 부지가 있더라도 조성자체가 늦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도심 국민임대주택 공급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일이다.
따라서 260만가구 규모의 장기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을 지을 용지확보방안이 먼저 제시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비축용 장기임대주택 건설재원 조달 방안도 심사숙고해야 한다. 물론 시중 유동자금이 400조원에 달하고 정부에서 조성하는 것이라 수익성에는 문제가 없는 만큼 펀드자금마련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투자상품을 임대주택 뿐만 아니라 분양주택까지 넓혀야 한다. 현재의 집값 상승은 좋은 주택으로 갈아타려는 실수요자가 이끌고 있다. 일반분양주택에 비해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임대주택만 펀드로 재원을 마련, 공급해 봐야 주택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간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도 적잖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대책에서 기존 5년임대주택을 10년으로 분양전환시기를 장기화 할 경우 사업자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거나, 세제감면 혜택을 주는 등 유인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청약자 입장에선 그리 매력적이지 못하다.
10년 전매규제는 유동성과 환금성이 상당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수요자들은 판교신도시와 같은 입지여건이 매우 뛰어나지 않고선 사실상 청약을 꺼리고 있다.
또, 현재 겪고 있는 수도권의 택지 구득난을 감안할 경우 민간건설사들이 판교같은 곳에 택지를 자체 조성하기는 버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분양주택 공급확대를 위한 공공부문의 역할강화방안도 다시 한번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택지의 공급애로를 해결키 위해 민간택지의 민간·공동개발 사업을 추진할 경우 10년 미만 장기 거주자 등의 재산권 침해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영개발을 위해 조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재원과 재원조달에 따른 국민부담, 미분양시 공공부문의 부실문제, 주택품질 저하, 부실시공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단 점도 염두에 둬야한다.
“소셜믹스는 군 한 막사에서 이등병에서
장성급이 같이 생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사회 친화적·수요자 중심의 임대정책 방안 역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정부는 대책에서 주택공급의 소셜믹스(Social Mix)를 고려하는 한편 임대주택의 품질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임대주택’은 서민들이나 영세민들이 사는 아파트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믹스도 대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고려돼야 한다.
정부가 현재 고려하고 있는 소셜믹스는 단지내에 구성되는 여러동(棟) 가운데 임대동과 일반분양동으로 고루 배치하거나 하나의 동에 1층은 임대아파트, 2층은 일반분양아파트 등 각 층별로 임대와 일반분양을 섞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지의 여부를 따지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소셜믹스를 적용한 공동주택은 없기 때문이다. 소셜믹스는 대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사회친화적, 사회통합을 유도키 위한 것이지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형주택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소셜믹스는 마치 군대 한 막사에서 이등병에서부터 장성급에 이르기까지 전 장병들을 한 군데로 몰아 생활토록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과연 그렇게 했을 경우 생활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소셜믹스에 대한 우려는 지난 2005년 강북지역 K 뉴타운에서 발생했다. K 뉴타운은 임대 1천8백가구, 일반분양 3천5백여 가구 등 대단지로 구성된 하나의 단지이다. 한단지로 구성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분양아파트 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사이에 철조망을 쳐 놓았다. 당시 8살인 성모군이 하굣길에 뛰어가다 삐져나온 철조망에 얼굴이 긁혀 방송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바우처제도 도입, 임대주택 재고 확보 뒤 시행해야 한다.
수요자중심의 임대정책을 추진하면서 도입하겠다는 ‘주택바우처 제도’ 역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주택바우처(voucher)는 정부 재정을 통해 월 임대료의 일부를 보조해 주는 제도로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전·월셋값 일부를 보조해주는 일종의 쿠폰, 즉 보증금 증서이다.
바우처제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충분한 임대주택 재고를 확보한 뒤 임차인 주거지원의 주요정책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주택 바우처제 도입은 임대료 상승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임대료 체계도 부담할 수 있는 능력, 수혜정도에 맞게 임대료를 차등 선정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건설교통부 한 고위공무원은 “주택바우처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가구구성별 적정주거비 산정, 대상가구 소득파악 시스템 등에 대해 전문 연구를 거친 뒤 지급대상·규모, 전달체계, 소요재원 등 시행계획안을 꼼꼼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