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 밥그릇 지키기도 벅찬 은행들
[매일일보 공인호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가까이 매년 힘들었지만 올해만큼 불확실성이 큰 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은행산업을 어떻게 전망하느냐는 질문에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가 장고 끝에 내놓은 답변이다. 올 들어 너도나도 실적 내세우기에 바쁜 최근 분위기를 감안하면 엄살을 넘어 다소 생뚱맞은 소리처럼 들린다.
그도 그럴 것이 조만간 발표될 주요 시중은행의 상반기 성적표는 '실적 잔치'로 불릴만큼 개선세가 뚜렷하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간 '리딩뱅크' 경쟁은 갈수록 열기를 더하고 있고, 금융위기 이후 줄곧 소외받던 은행주는 주식시장에서 '최선호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또 대기업들의 실적호조와 부동산시장 호황으로 각 은행의 연체율과 대손충당금은 갈수록 줄고 있고, 수익성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때이른 글로벌 통화긴축 기조 덕에 뜀박질을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 호기를 맞았다는 세간의 평가도 결코 지나쳐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국내은행의 외형은 커졌고 재무제표도 이전보다 매력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비대해진 덩치 탓에 급격한 환경 변화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이달말 출범 예정인 카카오뱅크는 차별화된 케릭터 상품을 공개하며 군불때기에 나섰고, 오픈 100일만에 40만 고객을 유치한 케이뱅크는 신용대출에 이어 시중은행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주택담보대출 상품까지 팔겠다고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규제완화가 은산분리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케이·카카오뱅크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제 3 플레이어'의 등판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같은 인식의 바탕에는 국내은행들이 사실상 독과점 형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땅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해왔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소매금융 기반을 잠식할 위협요인이라면, 초대형IB는 기업금융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잠재요인이다. 정부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에 한해 기업금융 등 신규사업을 허용해줄 예정이다. 이미 미래에셋대우를 비롯해 KB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인가 신청을 냈다.
이들 증권사는 자산관리(WM) 분야에 이어 당장 내년부터 수조원대 발행어음을 통해 시중은행과의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대형IB를 핵심 계열사로 둔 KB금융과 NH농협금융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자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하나금융(하나금융투자)과 신한금융(신한금융투자), 우리은행은 일정 수준의 내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의 NH투자증권(舊우리투자증권) 매각은 더없이 뼈아픈 결과가 됐다.
이처럼 은행들로서는 제 밥그릇 지키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지만 은행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요원한 실정이다. 얼마전 불특정금융신탁 업무에 대한 은행 허용 여부를 놓고 벌어진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간 신경전도 결국 '불허'로 가닥이 잡혔고,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주장해온 '겸업주의' 역시 진척이 없는 상태다.
정치권을 포함해 일각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비롯해 대형IB 도입 등에 따른 은행산업의 위기는 수수료 및 대출이자 중심의 천수답 경영이 발단이 됐다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을 둘러싸고 '메기론'이 줄기차게 등장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은행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 역시 은행산업 발전을 저해해 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핀테크'는 사실상 대형 시중은행이 이끌고 있으며, 인터넷전문은행이 내세우는 혁신은 대부분 규제 완화에서 비롯됐다.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이유로 도입된 각종 규제가 은행 이용의 편의성을 후퇴시켜온 셈이다.
결국 국내은행들이 가계와 기업대출이라는 전통산업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한 규제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밥그릇을 얼마나 채우느냐는 시장 플레이어의 몫이지만 밥그릇은 크기는 정책당국이 좌우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