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상인 생계 위협하는 SSM 실태[현장취재]

“우린 뭘 먹고 살란 말인가”

2010-10-11     허은아 기자

[매일일보=허은아 기자] 중소상인의 생계를 위협하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소규모의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들에게 갑자기 생겨나는 SSM은 몹시 두려운 존재. 그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중소상인의 몰락을 가져오는 SSM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업조정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중소상인들의 살림은 나아질 줄 모르고 있다. 중소상인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며 유통업체와 정부에 보다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일보>은 평행선을 달리는 SSM 갈등과 이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중소상인들의 어려움을 취재해 봤다.

우후죽순 SSM, 중소상인 매출 감소 ‘심각’
‘사업조정제’ 실효성 의문, 업체와 대화 ‘절실’

“저런 것 좀 안 생기면 안 되나? 하루 매출이 20만원이나 줄었어. 겨우 담배나 라면 몇 개 팔 정도야. 우리가 부탄가스를 4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홈플러스는 4840원에 팔고 있더라고. 그런데도 주민들은 그 곳이 더 싼 줄 알아.” <매일일보>이 만난 신모(여)씨의 말이다. 그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골목에서 작은 구명가게를 20년 째 운영하고 있다. 자식을 모두 대학 보낼 정도로 보탬이 되는 가게였지만 올해 초 주변에 SSM ‘홈플러스익스프레스’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늘어난 SSM, 깊어진 소상인 주름

아파트 단지 내 상가 건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전모(여)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하루 매출의 50%가 줄었다”며 “대학 등록금이 부족해 아들 둘을 모두 군대에 보냈는데 현재 가게를 계속 운영해야 할지 고민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형슈퍼마켓(SSM)은 중소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지난 6월 서울, 인천, 청주 세 지역의 동네 가게 452곳을 조사한 결과 2억 2천만 원이던 가게 당 연평균 매출액은 주변에 대형마트나 SSM이 들어온 지 3년 만에 3분의 1이나 줄어든 7천만 원으로 감소했다. 고객 수도 가게 당 하루 평균 78명에서 47명으로 뚝 떨어졌다. 특히 첫 해 매출감소는 13%였지만  갈수록 불어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됐다. 슈퍼마켓뿐 아니라  정육점, 제과점, 청과점 등 가릴 것 없이 타격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해당 자치단체는 건축허가 신청 반려 등으로 SSM 진출을 견제하고 지역 상인들은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 대책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인들도 있었다. 신모씨와 전모씨는 “상권도 커야 상인들이 뭉쳐서 시위도 해볼 텐데 이렇게 작은 동네는 단체행동을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있어도 그만, 제도의 유명무실화

사실 SSM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큰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유는 중소상인들의 생계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영세 상인들의 몰락은 물류, 납품 등을 담당하는 또 다른 업체에도 타격을 가하고 나아가 지역상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처럼 지역 상점을 잠식하는 SSM의 무분별한 진출을 막을 제도적 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2009년 7월부터 유통업 분야까지 포함하는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규정에 근거하여 ‘사업조정제도’를 운영해 왔다. ‘사업조정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강제 조정보다는 당사자 간 자율조정 협의를 통하여 상생방안을 도출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업조정제도’가 적용된 뒤에도 SSM(올해 8월까지 230여 개)이 새로 문을 연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조정제도’가 SSM의 확산을 막는 데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 사업조정TF팀의 한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기업에 SSM 관련 현황과 실태 보고서를 따로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SSM이 언제 어디서 생기는지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나마 시행중인 ‘사업조정제’도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했다. 규정상 SSM이 가맹점 형태로 오픈하는 경우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이를 이용한 유통업체들이 가맹점을 모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은 소상인이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가맹점도 SSM의 한 형태라는 점에서 다른 중소상인들에게 여전히 생계의 위협이 될 수 있다.또한 사업조정제도와 관련하여 중소상인 김모씨는 답답한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미 입점한 SSM 규제는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도 안다”며 “다만 유통업체와 영업시간과 품목, 행사에 관해 협의하고 싶은 것일 뿐, 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도 빨리 터달라는 것인데 처리기간이 너무 길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해당 피해 점포가 직접 사업조정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슈퍼마켓 협동조합’을 통해야 하니 진행이 더디다”고 불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