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김일성 딸인지 김정일 딸인지 어떻게 알아?”

공관 ‘늑장’에 국군포로 유해 ‘강제북송’…40대 탈북여성, 국회 토론회서 주장

2007-02-15     최봉석 기자

“대한민국은 우리를 버렸다.”

북한에 있던 국군포로의 유해가 북측 유가족에 의해 중국으로 반출됐으나, 해외 영사관의 ‘책임 회피’로 강제 북송된 일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탈북여성인 이모(45)씨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주최하는 ‘재중 탈북자 문제, 실태 발표 및 정책토론회’에서 ‘국군포로 유해 북송사건 경의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중국 선양에서 발생한 국군포로 가족 9명의 강제북송 사건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나온 것으로, 이 같은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부의 국군포로 가족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 중국 선양에서 발생한 국군포로 가족 강제북송 사건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같은 날 국정 조사 요구서를 낸 상태다.

이씨는 이날 공개한 ‘북송사건 경위서’에서 2004년 9월24일 국군포로인 아버지의 유해와 딸들을 데려오기 위해 국방부 ‘대북협상과’ C중령에게 관련 서류를 제출했으며, C중령은 “중국에 있는 영사관으로 전화연락을 하면 모든 안정과 도움을 보장, 담보해준다”는 말을 듣고 10월1일 중국 연길로 떠났으나 현지 사정은 딴판이었다고 주장했다.그는 중국 연길에 도착, 같은 달 4일 외교통상부에 전화를 걸어 관련서류 접수여부를 확인한 결과, A영사는 “아직 아이들의 서류를 접수받지 못했다”고 말해, 다시 국방부에 전화를 걸었으나 국방부측은 “서류를 외교통상부에 넘겼으니 A영사와 문제를 해결하라”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했다.그는 결국 A영사에게 “아버지 유해를 삼합에 모시고 나온다”고 전화를 걸자 “아이들 문제는 이야기 하지 말고 아버지 유해가 오면 그 위치를 알려달라”고 말해, 북한으로부터 선친의 유해 송환에 착수했다.

영사 말 믿고 송환 착수, 그러나…

그러나 7일 오후 선친 유해를 넘겨받아 중국 용정으로 들어오다가 단속에 걸려 공안에 유해와 여권을 회수 당한 뒤 다음 날 자신과 선친 유해가 용정시 공안욱 외사과로 넘겨졌고 오후 12시 A영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연을 알린 뒤 신분이 확인돼 여권을 돌려받았다. A영사는 이 과정에서 “선친 유해가 냄새가 난다고 하니 햇볕에 잘 말려 유전자 검사를 할 부분인 뼈만 간수하라”고 말했다.그는 이후 중국 공안으로부터 선친의 일부 유해를 넘겨받아 인근 과수원에 기거하면서 영사관측이 남은 일을 해결해줄 것을 기대했으나 일주일 뒤인 14일 A영사로부터 돌아온 답은 “선친 유해 중 뼈 일부분을 한국으로 가져가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선친이라는 사실이) 확인이 되어야 유해와 딸들의 한국행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고 증언했다.이씨는 결국 피랍인권연대 도희윤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호소했고, 도 총장은 “회수당한 아버지 유해는 언론에 공개해 구원하자”고 말해 A영사에게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자 A영사는 “제발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 내가 책임을 지고 해결하겠다”고 말했으나 며칠이 지나도 일은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제발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

그는 A영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항의했으나 A영사는 “선친인 이규만씨가 국군포로로 확인될 확고한 증거가 없고, 이모씨 역시 선친인 이규만씨의 딸인지 확실한 증거가 없다”, “북에게 넘어온 딸들도 이모씨의 딸인지 국군포로의 손녀인지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와 정부로서는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증언했다.이 과정에서 A영사는 또 “당신들이 김일성 딸인지 김정일 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막말을 했으며, “모든 문제는 당신들이 알아서 해라. 나머지 건사한 유해도 중국 공항에 가다가 단속에 걸려도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고 이씨는 주장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20일 유전자 검사를 위해 선친의 일부 유해를 갖고 한국으로 들어왔고 국방부에 의뢰, 세브란스 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국군포로임을 확인했고 외교부에서는 선친 서류를 A영사에 보냈지만 선친의 유해는 이미 북한 보위부에 의해 ‘북송’된 뒤였다고 허탈한 심경을 드러냈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이미 ‘북송’, 허탈

이와 관련 이미일 (사)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 공무원 모두가 탈출한 납북자나 국군포로 당사자와 가족들을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끝까지 보호해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확실한 지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해 3월 개정된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외공관, 그 밖의 행정기관의 장은 국군포로가 귀환을 목적으로 보호 및 지원을 요청할 때에는 지체 없이 그 국군포로와 동반 가족에 대해 필요한 보호를 행하고 국내 송환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김찬규 고려대 법학과 명예교수는 “국군포로는 우리 국민”이라며 “탈북한 우리 국민이 강제송환됨을 저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로서 책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탈북자들은 주민등록증만 없을 뿐 여느 대한민국 국민과 동등한 헌법상 권리를 지니고 있다”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강제 북송의 공포 속에서 타국을 헤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