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호] 아듀! ‘청량리 588’, 역사 속으로
청량리 집장촌 철거 시작…포주들 “보상안해주면 못나가”
2007-02-15 한종해 기자
서울의 대표적 성매매 업소 집결지역으로 꼽혔던 속칭 ‘청량리 588’에 대한 철거 작업이 본격 시작됐다.
서울 동대문구(구청장 홍사립)는 청량리 균형발전 촉진지구 내 청량리역 주변 전농동 588 일대에서 도로 확장을 위한 철거 공사를 1일부터 시작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답십리길~청량리 롯데백화점 사이에 길이 226m, 폭 8~32m 도로를 확장 개설하기 위해 성매매 업소 건물들을 철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 업소 포주들과 성매매 여성 그리고 인근 상가 주인들이 보상가 문제로 크게 반발하고 있어 철거 작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구청에서는 땅주인에게만 보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
최소 4~5천만원에서 최대 1~2억원의 권리금을 내고 들어온 포주들은 현재로써는 그 돈을 찾을 길이 없다.
성매매 여성들도 보상과는 거리가 멀어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일부 여성들은 현재 안마시술소나 스포츠마사지 업소로 빠져나가 번지 없는 성매매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성매매 업소와 함께 한때 호황을 누렸던 인근 약국ㆍ미용실ㆍ세탁소ㆍ슈퍼 등도 대부분이 문을 닫은 상태다.
매일일보에서 지난 6일 청량리 588일대를 찾았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588번지. 청량리 역사 앞에서 답십리 길 방향으로 300m 남짓 이어진 성매매 거리이다. 홍등 아래 유리문 너머로 저마다 의상을 입은 아가씨들이 6만원에 손님을 부르는 이곳은 ‘청량리 588’로 불린다. 청량리 588은 6ㆍ25전쟁 이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588번지와 620번지 골목 두개에 150여개 업소가 있다.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청량리 588번지 일대는 150여개 업소에서 현재 50여개 정도만 영업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2일 철거가 발표되면서 50여개 업소 중 10여개 정도만 영업을 하고 있다.한 업소에 두세 명이던 성매매 여성도 이제는 한 명 정도가 있을까 말까 한다. 1980년대 말까지 명동처럼 붐볐다는 거리가 지금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성특법 이전 성매매 업소 한 달 수입 1000만원
성특법 시행 이전에는 청량리 588의 업소들은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 3명만 데리고 있으면 한 달 1000만원 수입은 너끈히 보장됐다는 게 이 곳 업주들의 얘기다.9년 전 네평짜리 가게에 권리금 1억원을 주고 들어왔다는 업소 주인 김모(49)씨는 골목에서 홀로 푸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네 평 땅값은 내가 들어올 때 4500만원밖에 안됐다”며 “땅주인만 보상해준다면 나는 여기서 못 나간다”고 말했다. 김씨 같은 업소 주인들은 밤새 구청이 걸어놓은 철거 현수막을 떼어내 버렸다. ‘철거’라고 써놓은 붉은 글씨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뭉개버리고 구청에 대한 욕설만 여기저기 휘갈겨 써놓은 상태다.또 다른 업소 주인 임모(65)씨는 “두세군데 업소만 보상이 끝나 철거를 시작했을 뿐인데 마치 온통 철거를 시작한 것처럼 난리를 쳐서 더 죽겠다”면서 “우리처럼 임대료내고 영업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50대로 보이는 또 다른 남성업주는 “기자들하고는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그만 가라”며 “우리 얘기는 써주지 않고 항상 안 좋은 쪽으로만 보도하지 않느냐”며 험악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10개중 1개 업소 영업 여전…하루 한명 잡기도 어려워
입구부근에서 중심부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훤한 대낮인데도 10개중 1개 업소 꼴로 홍등을 밝혀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유리문 사이로 내민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 “오빠 여기야, 여기. 이리 들어와”라며 손짓을 했다. 철거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일부 성매매 업소의 여성들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가득했다.3년째 이곳(청량리 588번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A(26)씨는 손님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루에 한명도 있을까 말까 하다. 영업하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영업을 하는 이유가 거기있다. 싸게 해 줄테니 놀다가”라며 기자를 방안으로 이끌었다.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한참을 설득한 끝에 A씨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A씨는 “몸은 전혀 힘들지 않다. 마음이 너무 괴롭다”며 “보상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무작정 철거에 들어가니 앞날이 깜깜하다”고 답했다. 이어 “같이 일하던 친구들도 노래방으로, 안마시술소로, 대딸방으로, 대부분이 떠났다”며 “나도 일자리를 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옆에서 기자와 A씨의 대화를 듣던 또 다른 성매매 여성 B씨는 “손님이 와도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007을 방불케 하는 작전이 수행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손님이 오면 일단 손님을 청량리역 인근의 한 커피숍에서 기다리게 한 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직접 커피숍으로 가 장사를 한다”고 설명했다.588번지 철거와는 상관없이 번지 없는 성매매는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주변 상가들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 “보상 문제 해결해 달라”
청량리 588일대 주변 상가들의 반응도 앞날의 생계를 걱정하는 업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30여년을 이 거리에서 장사를 했다는 권모(57)씨는 “80년대 말 구멍가게로 하루 매상 100만원을 올린 적도 있는데 지금 식당은 하루 20만원 매상을 올리기가 어렵다”며 “성매매를 하던 사람이든 그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던 사람이든 장사는 걷어치워도 아파트 딱지라도 줘야 나간다고들 한다”고 말했다.20년 동안 청량리에서 약국을 운영해왔다는 약사 구모(60)씨는 “성매매 특별법에다 청량리 재개발 이야기 때문에 매상이 2년 전에 비해 70% 정도 줄었다”며 “약국을 철거해도 단골손님들 때문에 청량리에 다시 약국을 차릴 생각”이라고 말했다.구씨는 이어 “주변 세탁소ㆍ미용실ㆍ목용탕 등이 종류별로 2~3개씩 있었는데 지금은 다망하고 한두개만 겨우 문을 열어놓고 있는 상태다”고 밝혔다.60대 후반의 구멍가게 주인 김모씨는 “30년간 이 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588전체를 다 싸잡아서 없앤다고 하니 철거대상이 아닌 가게도 다 망할 지경”이라면서 “이제는 버틸 힘도 없다”고 허탈해했다. 또 “나 같은 사람은 처자식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낸다고 해도 다른 상가 주인들은 일가족이 길바닥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했다.동대문구청 ‘영업권과 권리금 보전 받아들이기 어렵다’
동대문구청은 연말까지 588번지를 관통하는 답십리~롯데백화점 구간 226m의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78개동과 토지 89필지를 우선 철거할 예정이다. 현재 구청과 토지-건물 소유주간 보상협상이 진행중이다.동대문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보상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지지부진하다”며 “현재 협상 진척률은 약 12%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오는 28일까지 1차 협상을 벌인 뒤 이후 한 달가량 추가 협상 기간을 가질 계획”이라며 “일부 업소가 영업권과 권리금 보전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한편 청량리 자율정화위원회 박승철 위원장은 “보상 협상이 끝나면 언제든지 철거에 응해준다. 그러나 보상도 안된 상태에서 철거라는 왜곡된 언론플레이를 먼저 한다면 받아들일수 없다”며 “다음달 5일까지 구청에서 항의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성매매 여성 김모(26)씨 인터뷰
-이른시간(오후3시)이다. 영업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시간 아닌가.▲아니다. 요즘에는 하루에 한명 잡기도 하늘에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가뜩이나 장사도 안되는데 지나가는사람이라도 잡아야 한다. 솔직히 이것 말고는 마땅히 할 일이 없다는 게 이유이기도 하다.-혼자 일하나. 원래 2명 정도 더 있어야 하지 않나.▲한명은 노래방도우미로, 한명은 안마시술소로 빠져나갔다. 나도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일자리만 구해지면 곧 떠날 예정이다. 이곳(588번지)을 폐쇄한다고 해서 성매매가 근절되리라고는 생각해선 안된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안마시술소ㆍ대딸방 등지에서 번지 없는 성매매는 계속되고 있다. -손님을 잡는다 하더라도 경찰 단속이 만만치 않을텐데.▲다 방법이 있다. 손님을 먼저 보내고 내가 뒤따라 가면된다. 청량리역 인근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 등 미리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면 된다. 이 밖에도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방법은 많지만 손님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올해 말까지 철거를 완료한다고 하던데.▲내가 내몸파는 것까지 뭐라고 할 수 있나 싶다. 힘없는 사람은 당해야지 별 수 있나. 다만 먹고 살게는 해줬으면 좋겠다. 나가라고만 하면 갈곳은 유사 성매매 업소뿐이다. 우리도 국민인데 일방적으로 나쁜X들로만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