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CEO 선정, '짜고 치는 고스톱?'
주공·한전 사장 '공모제'...열쇠는 청와대에
[131호 경제] 올해 관가와 공기업에 '인사태풍'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재정경제부 산하의 굵직한 공기업 사장들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교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벌써 후임자 공모에 들어간 곳도 있고, 조만간 공모 작업을 갖을 계획을 잡고 있는 곳도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두 곳이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와 한국전력(이하 한전). 주공의 경우, 참여정부가 올인(?)해 왔던 부동산 정책과 맞물려 역할이 확대되면서 현재 공석인 사장 자리에 관심이 집중돼있다. 2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2억5천 만 원에 달하는 연봉을 받는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 사장의 교체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 이완을 막기 위해 투명하고 철저한 인사를 단행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특정인사 '내정설'이 나오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공모제의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사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단계부터 비공식적으로 윗선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
더욱이 공기업 사장의 경우 최종적으로 대통령 재가가 필요한 사항이어서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가 올라올 경우 재공모 등의 진통까지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수자원 공사, 인천공항공사 사장의 경우 3, 4 차례의 재공모가 치러지기도 했다. 때문에, 공기업 사장 인선은 겉은 공모제 이지만 실제로는 청와대가 승낙해야 하는 것이므로 여전히 '낙하산 인사' 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기획예산처의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정부가 잠정적으로 분류한 시장형, 준시장형 공기업 27개사 가운데 80%가 넘는 22개사 사장이 공무원과 정치인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장이 자체 승진한 곳은 1개 기관, 민간에서 채용된 곳은 4개 기관에 머물렀다. 해당 공사 출신으로 사장에 오른 내부 승진 케이스는 한국토지공사 김재현 사장이 유일했고, 민간에서 채용된 사람은 가스공사 이수호 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재희 사장, 대한주택공사 한행수 사장(1월 사표), 한국석유공사 황두열 사장 등 4명에 그쳤다. 이외에 철도공사, 환경관리공단, 조폐공사, 88관강개발, 마사회, 석탄공사 등 6개 공사의 사장은 정치인 출신으로 조사됐다. 또 한국전력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지역난방공사 등 16새 공사의 사장은 산업자원부, 건설교통부, 해양수산부 등의 공무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밖에 공기업 27새 사는 아니지만 주요 금융기관인 한국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증권예탁원, 증권전산,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은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이 독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정치인, 관료 출신이 사장직을 독점하고 있어 '공모제'는 말뿐, 여전히 '낙하산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기업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공과 한전에서 신임 사장 인선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벌써부터 '낙하산 인사', '특정인사 내정설' 등의 잡음이 나오며 유력 후보들이 점쳐지고 있다.주공 사장, 민간VS관료 대결...속내 따로 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유일(?)하게 '꿀리는' 분야가 '부동산'이라고 꼽은 만큼 부동산 현안과 관련해 주공 사장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현재 최종 후보로는 남궁석 전 정보통신부 장관, 진철훈 전 제주국제자유도시센터 이사장, 박세흠 전 대우건설 사장 등 3명이 확정됐다. 당초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권도엽 전 건교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은 공모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주공 신임 사장은 민간기업 최고 경영자와 관료 출신의 대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일 주공에 따르면 사장추천위원회는 공모 신청자 14명을 대상으로 서류전형, 면접을 실시해 남궁 전 장관, 진 전 이사장, 박 전 사장을 건교부에 최종 사장후보로 추천했다.
한전 사장 유력 후보, PK 삼파전 예상
산자부 산하의 한전 또한 한준호 사장이 다음달 임기만료를 앞두고 퇴진 의사를 확고히 해 후임자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8일 한전 사장추천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마감한 한전 사장 공모에 이원걸 전 산업자원부 차관, 곽진업 현 한전 감사, 김칠두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김상갑 남부발전 사장, 이재근씨 등 총 5명이 신청했다. 이 가운데 노조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곽진업 감사와 이 전 차관, 김칠두 산단 이사장 등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실제로 공모자 수가 지난 2004년 현 한준호 사장을 선임할 때 34명이었던 것에 비해 5명으로 대폭 줄어든 것은 일찌감치 이 전 차관, 곽 감사, 김 이사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점은 유력한 후보 3인방이 모두 영남 출신이어서 차기 한전 사장은 PK 3파전이 되는 것 아이냐는 분석. 이 전 차관과 곽 감사는 부산 동아고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한전 사추위는 12일 2차 회의를 통해 서류심사를 거쳐 15일 면접을 갖고 복수 후보를 산자부에 추천할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한전의 6개 발전 자회사 중 중부발전을 뺀 5개 자회사도 현 사장들의 임기가 4월1일로 만료돼 조만간 사장 공모 등 경영진 인사가 예정돼 있다.겉은 '공모제', 실제는 '윗선' 입김 작용?
이처럼 주공과 한전 모두 일단 외형적으로는 '공모제'의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등의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상황. 주공 사장은 벌써 진 전 이사장과 박 전 사장간의 경쟁으로 좁혀졌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한전의 경우도 영남권 출신의 몇몇 후보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주공과 한전은 이번 공모로 신임 사장이 결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정치권과 '끈'이 있는, 또는 청와대가 의중에 두고 있는 특정 인사가 더 유력하다는 돌고 있어 향후 신임 사장 인선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 사실 이런 추측이 터무니없지 않은 것도 과거 공기업 사장 인선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공모 때는 처음 추천된 3명의 이사장 후보가 갑자기 자진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고, 후보추천위원 중 한 사람은 청와대 외압설까지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사람이 최종 낙점을 받았다. 1차 추천 후보들이 탈락돼 2차례 이상 공모를 치뤘던 기관 또한 한국수자원공사, 가스공사, 석유공사, 국민연금관리공단, 철도공사 등 9곳에 달한다.특히 수자원공사는 2005년 3번이나 사장 공모를 했다. 해당 분야의 유수한 전문가들이 추천됐지만, 청와대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적임자가 없다"며 계속 돌려보낸 것. 결국 전직 환경부 장관이 사장에 내정됐다.인천공항공사의 경우는 무려 4번이나 사장 공모를 반복하며 CEO자리가 5개월간 공석이기도 했다. 가스공사와 석유공사도 작년에 각각 2번과 3번의 공모 끝에 사장이 임명됐다. 물론 당시에도 추천위의 심사를 거친 후보 명단이 청와대에 올라갔지만 몇 번의 퇴짜를 거쳐, 최종 임명된 사장 중 한 명은 노 대통령의 고교 선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