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칼날에 ‘벌벌’떠는 재벌 그룹들

G20회의 후 수사 재가동…다음 타깃은 어디?

2010-11-05     김시은 기자

[매일일보=김시은 기자] 사정당국이 재벌기업들에게 시퍼런 칼을 들이 댄지 벌써 두 달여다. 과연 무엇을 잘라내려고 동시다발적으로 칼을 든 것인지 벌여놓은 주요 수사만 해도 예닐곱 건에 달한다.

서울서부지검이 한화·태광그룹에 칼을 든 것을 시작으로, 대검중수부가 C&그룹을 압수수색하고 국세청이 제일기획·롯데건설·아주캐피탈·GS리테일·신세계푸드 등에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최근 STX건설이 STX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부당지원을 받은 의혹이 제기돼 공정위가 칼을 빼든 가운데, 중수부의 다음 타깃으로 CJ그룹이 암암리에 지목되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기관의 이런 움직임은 MB정부의 ‘공정사회’와 맞물며 주목할 만하다. 일각에선 ‘대기업 손보기가 시작됐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매일일보>은 사정당국의 칼날에 벌벌 떠는 재벌기업들을 중간점검해봤다. 

사정당국 ‘검찰·국세청·공정위’ 재벌기업 수사 두 달여, 주요 수사만 예닐곱 건
검찰,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소환 시기 G20다음?

사정당국의 첫 번째 칼자루는 서울서부지검이 쥐었다. 서부지검은 지난 9월16일과 10월13일 한화와 태광그룹을 압수수색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공개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다. 검찰은 차명 주식과 계열사 거래 등 경로로 조성된 두 그룹의 부외자금 규모를 밝혀내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지만, 아직 비자금의 용처와 정관계 로비설 규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곳곳에 포진되어 있는 ‘문어발식 비자금 출처 조성’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서부지검 ‘한화·태광그룹’…오너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정치권 로비까지 전방위 수사

검찰은 태광그룹의 비자금 수사를 위해 그룹의 자금관리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오용일 태광그룹 부회장과 박명석 대한화섬 대표이사, 그룹의 새 지배회사인 한국도서보급의 배준호 대표와 김남태 전 대표, 최운형 전 대한화섬 대표 등을 줄줄이 소환했다.

이들의 수사는 사실 이호진(48) 태광그룹 회장과 이회장의 어머니 이선애(82) 태광산업 상무를 겨냥한 워밍업이다. 1라운드 수사를 토대로 본격적인 2라운드 수사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태광그룹 사건은 애초 이 회장이 아들 현준(16)군에게 가업을 승계토록 하기 위한 불법 상속증여, 창업주인 이임룡 회장의 상속재산으로 비자금 조성, 케이블TV 사업자인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방통위에 대한 로비 등에 집중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용인시 태광컨트리클럽(태광CC)의 주변 땅을 전·현직 그룹 임직원 이름으로 소유하고, 한국도서보급을 두산그룹에서 인수한 뒤 오너가 지분을 다시 헐값에 사들여 사유화하고,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할 때 과거 공시규정 위반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할 자격이 없는 고려상호저축은행이 컨소시엄에 포함된 점 등의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결국 검찰은 이 회장 일가의 차명계좌나 차명부동산 등 비자금 전모를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과 예금, 부동산, 보험, 계열사 자산 등 거의 모든 부외자금 조성 수법이 총 동원돼 돈의 규모를 밝히는 데만도 수십 상자 분량의 자료를 더 분석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이는 한화그룹도 마찬가지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혹은 증권사 차명계좌에서 10~20년 동안 계열사 주식이 거래된 데다 관계사의 내부거래가 악용된 정황도 있어 자금 추적이 까다롭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검찰의 수사도 10월27일 계열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를 추가로 압수수색하고 29일에는 대한생명 인수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 팀장급 직원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범위가 확대되는 양상이다.수사 범위가 넓어지고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한화와 검찰 쪽의 장외 신경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한화그룹측은 계열사 추가 수사에 당혹해하면서도 ‘무리한 가지치기 수사’라며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검찰은 당초 알려진 300억보다 훨씬 많은 600억원대 규모의 비자금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검찰은 한화의 전·현직 임직원 명의로 관리돼온 차명계좌 등을 추적한 결과,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이 같은 돈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난 4일 검찰은 윤중식 엔에이치엘개발 대표와 오모 전 웰로스 대표를 조사한 상태다. 앞서 검찰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누나 김영혜(62)씨가 소유한 상장사 ‘한익스프레스’의 서울 지점과 한화그룹 제약 계열사인 ‘드림파마’ 등 한화 측 관계사 4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한익스프레스(한화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운송·물류업체)가 지난해 2월 드림파마의 물류사업 부문 ‘웰로스’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정황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검찰은 5일 그룹 협력사인 유통업체 (주)씨스페이시스를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차명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계속 새로운 가지들이 뻗쳐 나오고 이를 쫓아가다 보니 확인할 부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인지 일각에선 두드러진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여기저기 의심나는 곳을 계속 파보는 것 아니냐는 질타도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검찰은 김승연 한화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한 소환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때가 아니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두 기업의 수사는 최소한 서너 달, 다음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검중수부 ‘C&그룹’…워크아웃 중인 기업 수사 ‘이례적’

임병석 C&그룹 회장 횡령 혐의 기소로 수사 박차, 롯데건설 탈세혐의 포착? 
‘STX건설’ STX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부당지원, 중수부 다음 타깃 CJ그룹 거론

그나마 수사에 진척이 보이는 곳이 대검중수부다. ‘박연차 게이트’ 이후 1년4개월 만에 사정의 칼을 빼든 대검 중수부는 워크아웃 중인 C&그룹의 비자금·로비 의혹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0월22일 압수수색과 동시에 임병석(49) 그룹 회장을 체포한 검찰은 위장 계열사로 지목된 광양예선의 자회사 서해선박을 자산규모(67억원)보다 낮은 가격인 23억원에 매각하면서 남긴 돈과 선박(해룡45호) 매각대금을 횡령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그런데 최근 검찰은 임 회장이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를 상당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C&그룹 임병석 회장이 위장 계열사 명의로 법인카드를 10여장 발급 받은 것도 그러한 혐의를 입증하는 정황중의 하나다. 검찰은 이 법인카드가 정관계 로비용으로 뿌려진 것으로 보고 실제 사용자를 쫓는 등 임 회장의 정·관계 로비에 관여된 인사들을 소환할 예정이다.검찰은 지난달 임 회장에게 배임·분식회계·사기대출·시세조종·불법M&A 혐의만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 4일 검찰은 횡령 혐의로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져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울러 검찰은 임 회장이 ‘비자금 창구’로 지목된 광양예선 외에 또 다른 위장계열사를 운영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P사의 설립 시점(작년6월)이 C&중공업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이 잇따라 퇴출당하면서 그룹이 사실상 공중분해 되는 와중이었다는 점에 주목, 임 회장이 이 업체를 ‘구명 로비’를 위한 비자금 창구로 활용하려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검찰은 P사와 다른 계열사 간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한편, 이 회사의 자금업무를 담당한 전·현직 임직원들을 조만간 불러 비자금 조성 여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또한 검찰은 C&그룹의 계열사인 서울선박금융회사㈜가 임 회장의 정·관계 로비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임 회장은 그룹 경영상 내린 판단이었다거나 계열사 차원에서 이뤄져 모르는 일이라는 식으로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횡령과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01∼2007년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바살본)’의 총재로 활동하면서 정관계 인사와 폭넓게 교류한 정황을 파악, 자세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특히 C&그룹 수사가 거액의 국민 혈세가 투입된 기업을 인수해 단물을 빼먹은 ‘파렴치 기업인’에 단죄를 가하는 데 있음을 강조해 온 검찰의 또 다른 과녁이 어디에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향후 내놓을 수사 성과가 주목된다. 

국세청 ‘제일기획, 롯데건설’…대기업 압박용 카드?

사정당국의 세 번째 칼자루는 국세청이 쥐고 있다. 국세청은 C&그룹이 중수부의 압수수색을 받은 지난 10월21일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이자 국내 최대 광고제작사인 제일기획이 10월 초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제일기획측에서는 이번 세무조사는 일정규모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4~5년 간격으로 실시하는 정기 세무조사로 지난 2005년 정기 세무조사와 같은 성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국세청이 롯데건설, 아주캐피탈 등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검찰이 한화, 태광, C&그룹 등에 비자금 의혹으로 수사를 하는 등 몇몇 대기업도 수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국세청은 제일 기획에 이어 GS그룹의 GS리테일과 신세계그룹의 신세계 푸드 등 재벌 그룹의 유통 계열사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올해 들어 사업 부문을 매각했거나 코스닥에서 코스피로 상장이전한 기업들이어서 세무조사의 초점이 비자금 조성이나 편법 상속증여와 같은 비리 조사 쪽에 맞춰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특히 업계 일각은 롯데건설이 갑작스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최근 롯데그룹 주변에는 롯데쇼핑의 과징금 논란은 물론 롯데물류센터의 오산시 특혜논란 등 갖가지 문제들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롯데그룹 측에서는 지난 2005년에 이은 정기적인 세무조사인 것 같다고 했지만, 탈세혐의 등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4국 부서가 대규모 인력을 동원, 그것도 사전통고도 없이 조사에 나선 것이라 뒷말이 일고 있다. 롯데건설이 그룹 계열사의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공사비를 축소 신고하고 재개발과 재건축 과정에서 탈세를 저지른 혐의가 포착된 것이 아니냐는 소문. 이미 상당부분 구체적인 탈세혐의를 포착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더불어 고금리 대출로 물의를 일으킨 롯데 캐피탈 등 그룹 계열사로 조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10월27일 롯데미도파의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이 때문인지, 한화그룹의 예처럼 대규모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세청은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세무조사 강화 등 대기업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국세청은 지난 4일 내년도 정기세무조사에서 매출 500억 원 이상 기업의 조사 대상을 올해보다 130개 이상 확대하는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또 매출액 300~1000억원 기업 중 사주의 자금 유출 의혹이 있는 부도덕한 기업 150여 곳을 집중적으로 조사키로 했다. 전반적으로 대기업은 세무검증을 통한 성실신고 체제를 확립하고, 불성실 기업은 조사역량을 강화해 기업과 사주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이다. 따라서 이 시기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은 최근 강조되고 있는 이른바 ‘공정 사회’ 기조를 잇는 것으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사전 포석 중 하나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 ‘STX건설’ 중견그룹…오너일가 물량 몰아주기 대대적 수사 착수

한편, 재벌기업들은 광복절을 전후해 재계에 퍼졌던 ‘대기업 사정설’을 떠올리면서 “우려가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를 통해 ‘공정사회’를 화두로 던지자 재계에선 검찰이 ‘대기업 손보기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벌써 사정당국의 다음 수사 대상이라는 3, 4개 기업의 실명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런흐름에 공정위도 가세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태광그룹 계열사인 동림산업개발의 골프장 회원권을 태광산업을 비롯한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비싼값에 사들인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다. 여기에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STX건설이 STX그룹의 계열사로부터 부당지원을 받은 혐의에 대한 관련 조사 요청 서류를 공정위 시장감시 총괄과에 발송해 여기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중수부는 다음 타킷으로 CJ그룹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지난 7월말부터 이재현 회장의 차명재산 규모 및 조성방법에 대해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듯 사정당국이 재벌기업에 시퍼런 칼을 들이대자, 재벌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선 ‘5분 대기조’라는 싸늘한 농담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몰아치던 대기업 수사도 G20 회의 개최기간 앞에서는 잠시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4일 “G20 행사를 감안할 점이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국가적 대사인데 그래야지 않겠느냐”면서 광풍처럼 몰아치던 대기업 사정수사가 일시 중단됐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