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호텔신라의 한 영세기업 죽이기 전모
“삼성의 위력, 새삼 느낍니다”
2010-11-12 황동진 기자
[매일일보=황동진 기자]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를 맞아 ‘공정 사회’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기류에 힘입어 대‧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 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현황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공정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매일일보>이 만난 한 중소업체 사장의 하소연에서도 이러한 점들이 잘 나타났다. 이 업체는 (주)유성글로벌이란 회사로 국내 제1의 기업인 삼성그룹 계열사 호텔신라를 상대로 지리 멸렬한 법정 공방을 나홀로 진행하고 있다.
유성글로벌, “호텔신라가 두번에 걸친 일방적 파기로 수억원 피해” 주장
“너무나 억울하고, 삼성의 위력을 새삼 느낍니다.”
지난 11일 오후 2시경 여의도 KBS별관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주)유성글로벌 권혁대(50) 대표는 대뜸 이같이 말했다.
대체 무슨 곡절이 있었길래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한 것일까. 권 대표는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말문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했다. 2000년 초 한류 붐이 일어났을 당시 유성글로벌은 TV인기드라마 속에 등장한 주인공과 이들이 사용한 소품을 이용한 한류상품을 개발 했다. 당시 'KBS 겨울연가’ ‘MBC 대장금’ ‘SBS 천국의 계단’ 등이 잇따라 공전의 히트를 시키며 국내를 뛰어넘어 일본을 비롯한 중국, 태국 등 동남아 전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권 대표는 이점에 착안, 겨울연가와 대장금 등에 나오는 주인공이 착용한 옷과 소품을 악세사리로 제작해 판매한다면, 회사의 이익은 물론이거니와 국위 선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권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성글로벌은 KBS, MBC 등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한류스타’란 상표 등록까지 마친 후 상품 개발에 들어갔다. 기대 이상 이었다. 유성글로벌은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과 인사동에 자체 점포를 통해 회사 창립 이래 연매출 20억원이라는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직원 수 20여명에 불과한 유성글로벌이란 영세기업의 매출치고는 괄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당시 언론에서도 한류상품으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는 유성글로벌란 회사와 권 대표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유성글로벌이 ‘호텔신라’와 잘못된 만남의 시작은 2004년 10월 20일께였다. 권 대표는 당시 호텔신라 상품계획(MD)팀 소속 팀장과 직원이 호텔신라 본사 면세점에 유성글로벌의 한류스타를 유치하고 싶다며 거래 제안을 해왔다. 당시 호텔신라의 경쟁사인 롯데호텔은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샵’ 등을 오픈해 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때문에 호텔신라는 부리나케 한류 전문가를 찾았고, 마침 유성글로벌 권 대표를 발견, 거래 제안을 해온 것이다.당시 권 대표는 호텔신라 측의 제안에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호텔신라가 면세 시장에서 롯데호텔과 1, 2위를 다투고 있는 대기업이고, 더구나 국내 제1의 기업인 삼성그룹의 계열사이자,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씨가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유성글로벌은 호텔신라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호텔신라 장충동 본점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10여일 만에 마친 후 곧바로 판매에 들어갔다. 권 대표는 “호텔신라의 제안을 받은 후 빠른 시일 내에 입점 해 주기를 바래서, 내부 인테리어 공사도 우리 쪽에서 지불했고, 판매원 3명에 대한 임금도 우리 쪽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해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권 대표에 따르면 당시 호텔신라 본점 내 유성글로벌이 입점하기로 한 장소는 기존 화장품샵으로 활용됐던 곳이어서 한류 상품을 진열시키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 유성글로벌에서 내부 공사비용을 지불하게 됐다. 또, 판매원 3명에 대해서도 호텔신라 측에서 요구한 적정 기준에 부합한 사람들로 뽑아, 관리는 호텔신라가 맡고, 임금은 유성글로벌에서 지불했다.
이런 계약이 불공정한 거래인 줄 알면서도 권 대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거래에서 이 같은 방식을 따른다”며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호텔신라의 막가파 식 횡포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유성글로벌이 입점 후 8개월이 지나서였다. 2005년 7월께 호텔신라는 본점 내부 공사로 인하여 한류상품을 본점 옥상에서 천막을 쳐놓고 판매할 것을 요구했다. 권 대표는 “당시 내부 공사는 표면상 이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외국산 명품매장을 확대하기 위해 국내산 제품매장을 내쫓기 위한 것 이었다”며 “더구나 우리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까지 자체 비용을 들였는데, 막무가내로 옥상판매를 요구하니 반발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유성글로벌은 끝내 옥상판매를 거부했고, 결국 계약 1년을 채우기도 전에 8개월여 만에 계약 해지를 당했다. 이에 대해 호텔신라 홍보실 관계자는 “판매 부진에 따른 정당한 계약 해지였었다”고 반박했다.권 대표는 “어느 매장이건 입점 1년도 안 되서 큰 수익을 내는 곳은 극히 드물다”며 “그래도 유성글로벌은 호텔신라 면세점에서 많지는 않았지만 꼬박 200만원 가량의 흑자를 냈었다”고 했다. 권 대표는 호텔신라의 부당한 계약 해지에 순순히 응했다. 당시 자체 점포와 한국관광공사 내 면세점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부당한 대우까지 받으면서 호텔신라와 거래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외국 명품 유치에 혈안 호텔신라
결국, 부도 위기에 몰린 권 대표는 청와대를 비롯한 중소기업청, 공정위,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탄원서를 내며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호텔신라를 상대로 15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권 대표는 “15억원의 손해액을 산정한 것은 납부취소에 따른 피해액과 한류콘텐츠 투자금, 지적재산침해와 원산지허위표시에 따른 영업피해를 합쳐 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2009년 12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양자 모두 불복했다. 1심 재판부는 1억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한 것. 이후 2010년 7월 22일 2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 상고 진행 중에 있다. 이런 가운데 권 대표는 중소기업청 산하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진정서를 냈고, 최근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은 1억원의 합의 선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양자 모두 불복했다. 권 대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두 번에 걸쳐 이 같은 횡포를 부리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며 “정부가 권장한 면세점 내의 일정 비율을 국내제품으로 유치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 수익이 나는 외국산 명품 유치에만 혈안이 된 호텔신라의 치졸한 횡포에 치가 떨린다”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 정부에서 ‘보세구역판매장(면세점)운영에 관한 규정 제5조(운영인의 의무)’를 보면 시내면세매점 운영인은 당해 보세판매장에 매장면적의 5분1 이상 또는 330㎡(100평) 이상 국산품 매장을 추가 증설하여 국산품을 진열, 판매하여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한편, 유성글로벌과 KBS, MBC등은 호텔신라를 상대로 저작권법, 상표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소한 상태이다. 하지만 검찰은 민사 소송 결과에 따른 기소 중지를 내렸다. 이 외에도 유성글로벌은 호텔신라가 한 유통회사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하는 과정에서 외국산 제품을 국내산인 것처럼 속여 판 혐의로 소송 진행 중이다. 현재 이 유통회사는 관세법 위반 및 대외무역법 위반으로 2심까지 패소한 상태이며, 현재 대법원 상고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호텔신라 홍보실 관계자는 “이 부분은 유성글로벌과 해당 유통업체간 문제이 지, 호텔신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