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다 뜨는’ 손학규, ‘같기도’ 손학규
李-朴 검증론에 손학규 주가 승승장구, 범여권행 선택할까?
2008-02-25 최봉석 기자
손 캠프 “올것이 왔다”…‘보완재’에서 ‘대체제’로 탈바꿈 하나
3월, 전략적 고민 시기…“탈당하느냐 남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나라당 대권 예비후보 가운데 한 명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언급할 때는 늘상 ‘지지율’이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지지율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 전 지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당분간 ‘기분 좋은 측면으로’ 손 전 지사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근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손 전 지사의 지지자 중 77.1%가 ‘한나라당을 나오더라도 손 전 지사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한나라당 당적 여부와 상관없이 거의 전 지역에 걸쳐 고른 충성도를 보인 것이다.
명색이 한나라당 후보인데, 한나라당을 탈당해도 지지하겠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박 싸움은 손학규에게 ‘변곡점’
이처럼 손 전 지사의 대권가도가 뻥뻥 뚫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덩달아 주가가 상승하면서, 범여권의 움직임역시 빨라지고 있다. 손 전 지사에게 러브콜을 또다시 보내고 있는 형국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로 구성된 통합신당모임의 전병헌 의원은 지난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손 전 지사가 주창한 ‘드림팀’을 거론하며 “손 전 지사는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자이며 한나라당과 피가 다르다.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한나라당의 서자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드림팀을 꿈꾼다면 수구냉전세력의 ‘보완재’ 역할을 그만두고, 위기에 처한 자신의 본영인 민주개혁세력의 ‘대체제’ 역할을 자임하는 용기와 결단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CEO적 식견의 손학규, 능력과 윤리를 함께 갖춘 미래형 경제전문가 정운찬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손학규식 드림팀’을 만들려면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먼저 나오는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당초 드림팀에는 진대체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속했으나, 하이닉스반도체 후임 사장 자리에 유력 후보로 떠오르면서 사실상 진 전 장관의 영입은 물건너갔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어쨌든 통합신당모임은 줄기차게 손학규, 정운찬 등 외부인사 영입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모습이다.손학규가 탈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황이 이렇자 한나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손 전 지사가 정말 탈당을 결행해 범여권의 후보로 나설 경우 사실상 첫 번째 분당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반드시 막아야 하는 처지다. 물론, 반드시 손학규 전 지사 때문만은 아니지만 한나라당 경선준비위는 급기야 대선주자들의 분열 및 탈당 방지책으로 ‘3월 말 경선후보 조기등록’을 추진하겠다는 묘책을 꺼내들었다. 만약 조기 등록이 이뤄질 경우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경선 등록일 전에 탈당하지 않는 한 당 분열가능성은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검증공방으로 인한 어느 한쪽의 탈당, 그리고 손 전 지사의 비슷한 행보 가능성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당이 세 사람을 ‘울타리’안에 가둬놓겠다는 발상으로 해석된다.손학규 고민, 3월 한달 내내 지속된다
조기 등록이 3월 말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 전 지사에게는 ‘전략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달 여 남은 셈. 손 전 지사는 이에 따라 앞으로 경쟁 주자들의 대립을 관망하면서 ‘한나라당 후보로서’ 경쟁력을 부각시킬지, 이와 반대로 여권행을 통해 자신의 값어치를 높일 것인지를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가 설 연휴 기간 외부 행사를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조용히 시간을 보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가 정국 구상에 빠진 것이다.현 상황을 분석해보면, 손학규 전 지사는 한나라당 후보이지만 한나라당 후보도 아니다.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서도 ‘정체성’ 때문에 소속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좀처럼 의미있는 상승곡선을 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상이지만 범여권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음에도, 그렇다고 여권의 후보도 아니다. 소속은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체성’이 꼭 한나라당과 맞느냐, 그것도 아니다. 반전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는 누가 뭐래도 ‘손학규식 딜레마’다. ‘배부른’ 한나라당이 후보검증이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처럼, 줄타기 속에서 스릴을 즐기고 있는 손학규도 묘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지난 1월 말부터 KBS 2TV ‘개그콘서트’가 새롭게 선보인 코너 ‘같기도’. 김준호 홍인규 이상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같기도’는 현대인들에게 중용의 미(?)를 일깨워주는 개그로 정평이 나있다. “춤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건 이긴 것도 아니고 진 것도 아니고” “프로그램이 끝난 것도 아니고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한마디로 관객들을 웃기는 공식은 ‘애매모호’ 정도 쯤에 있다. 손학규도 그렇다. 한나라당 후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권 후보도 아니고. 탈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지지율이 오른 것도 아니고 추락하는 것도 아니고. 유권자가 ‘그를 지지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해야 하는 그 어느 지점에 손학규는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