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촌 옥상화가 김미경의 세 번째 개인전, '좋아서' 展

서촌 옥상화가의 펜촉과 '연애생활',내달10일부터 18일까지 서촌 창성동 실험실에서 열려

2017-09-27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옥상에 올라 서촌의 풍광을 담아낸 펜화 작품들로 서촌 옥상화가’라는 이름을 얻은 김미경작가가 세 번째 전시회 ‘좋아서’를 연다. 10월 10~18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 창성동 실험실’.5년 전 서촌에서 그는 열병을 앓았다. 0.03mm 펜촉으로 옥상에서 보이는 기와집들을 개수까지 세어가며 그렸다. 첫 전시회 ‘서촌 오후 4시’(2015년 2월)는 이렇게 한없는 설렘과 열기 속에 태어났다. 
서촌을 의인화해본다면, 머리칼 하나씩 올올이 그려가며 그 자태를 재현할 기세였다. 이번 전시회는 그동안 무르익은 ‘서촌 연애’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자리다. 옥상에서 본 서촌 풍경을 거쳐 동네 안팎에 피어난 꽃을 좇아갔던 두 번째 전시회 ‘서촌 꽃밭’(2015년 11월)을 거쳐, 이제 김 작가는 서촌과 ‘생활’로서의 사랑을 나누게 됐다. 낯이 익은 골목과 집, 올해도 예년처럼 피고 진 꽃과 나무. 인사를 나누는 이웃이 늘어난 만큼 잉크가 닳은 펜촉도 쌓여갔다. 서촌의 풍광에 던지는 시선도 더 깊숙해졌다. 예전엔 서촌을 왜 사랑하냐는 질문 앞에서 100가지 이상 그 이유를 읊었다면, 이젠 “그냥 좋아서”라고 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났다.이번 전시회에는 2016년 초부터 2017년 가을까지 2년여에 걸쳐 그린 60여 점의 서촌 풍광과 세태, 꽃 그림들이 선보인다.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 전시회 ‘서촌 오후 4시’ 때부터 계속 작업해 온 ‘서촌 옥상도’ 시리즈가 그 첫 번째다. 10여 곳이 넘는 각기 다른 서촌 옥상에서 작업한 30여 점의 ‘서촌 옥상도’ 시리즈 작품들은 초기에 비해 구도가 깊어지고, 선이 자유로워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림 크기도 더 다양해졌다. ‘서촌 옥상도’라는 새로운 그림 영역이 한층 성숙한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두 번째는 서울 어느 동네보다도 뜨겁게 촛불을 겪은 ‘서촌 격변기’를 담아낸 작품들이다. 
2016년 늦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진행된 탄핵 국면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표현된 작품, ‘헌법재판소, 봄의 교향곡’(2017년작), ‘탄핵춤’(2017년작) ‘춤바람난 서촌’(2017년작) 등이다. 백만 촛불이 피어난 광화문과 침묵의 청와대 사이, 서촌에 사는 주민이 섬세하게 잡아낸 장면들이다. 
김 작가는 “탄핵의 시간이 서촌 옥상도에 빠져있던 내 그림 속에 ‘지금 이곳’의 열기를 끌어넣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역시 그냥 좋아서 그렸던 서촌 꽃 그림들도 이번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다만 ‘서촌 꽃밭’이 꽃 하나씩을 ‘줌인’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꽃 언저리에 서촌의 풍경이 함께 한다.이번 전시회에 맞춰, 김 작가의 초기작들을 볼 수 있는 작은 전시회 ‘다시 보는 서촌 오후 4시’가 준비됐다.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에서 10월 10~31일까지 열릴 이 작은 전시회에는, 김 작가의 첫 전시회 ‘서촌 오후 4시’에 나왔던 ‘서촌 옥상도2’(2014년작), ‘오늘도 걷는다’(2014년작) 등의 대표 작품 여섯 점이 선보인다. 작가랑 함께 옥상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10월 28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참여연대 옥상에선 ‘김미경 작가와 함께하는 서촌 옥상풍경 그리기’ 행사가 진행된다.

김미경(Kim, Meekyung) 길거리와 옥상에서 서촌 풍경을 펜으로 그리는 작가. ‘서촌 옥상화가’로 불린다. 2012년부터 3차례 참여연대 아카데미그림교실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5년 2월 17일부터 3월 1일까지 첫 개인 전시회 ‘서촌 오후 4시’, 2015년 11월 4일부터 11월 10일까지 두 번째 전시회 ‘서촌 꽃밭’ 을 열었다. 1960년 대구 생. <한겨레> 신문 등에서 20여 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 전업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작업 노트  -- 또 다시 너를 그렸다. <서촌 오후 4시>, <서촌 꽃밭> 이후 2년. 뉴욕 옥상에 올라 ‘뉴욕옥상도’를 그려보기도 하고, 땅끝마을 전남 강진 백련사로 달려가 동백꽃, 할미꽃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네가 그리웠다. 아직은 널 좀 더 그려보고 싶었다.  ‘왜 또 너야?’, ‘왜 자꾸 널 그리고 싶은 거지?’, ‘넌 도대체 내게 무얼 의미하는 거지?’, ‘널 그리면서 난 세상에 대고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그냥 ‘좋아서’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거창한 이유를 갖다 대보고 싶었지만, ‘좋아서’ 만 떠올랐다.

이렇게 오랫동안 깊은 짝사랑에 빠져본 건 처음이다. 몇 년째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너와만 보낸다. 옥상에서, 골목길에서, 인왕산에서, 하루 종일 너만 바라보고, 너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너를 잘 모르겠다. 한 순간 너를 죄다 알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갈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거울처럼 과거가 비추어져서 너를 좋아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네가 미래로 보이기도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라는 모습을 한 미래를, 꿈을, 아직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너를 계속 더 바라보고, 그려보고 싶다.너를 짝사랑하며 낑낑댔던 그 시간들을 일단 풀어내 놓기로 했다. 밀당을 모르는 내 유치한, 너에 대한 내 짝사랑의 흔적들이다. --<김미경 작업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