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M] 젠트리피케이션, 왜 제자리걸음인가?
[장화민 공씨책방 대표] 갑자기 소유주가 바뀌었다고 해서 나가라고 하면 제가 25년 동안 같이 보내온 세월이라든가 저희 집에 오셨던 손님들의 추억, 그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전부 다 없어지는 거잖아요.
[박호 서울숲사진관 실장] 저희가 활성화되기 전에 들어와서 3년째인데요. 그 때는 건물세가 대부분 저렴했던 부분이 있는데 자꾸 과도한 세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상당히 어려웠거든요.
[임영희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 상임활동가] 건물주나 임대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기존에 있었던 조항들에 대해서 얼마든지 악용하고 활용을 해서 임차인을 내쫓을 수 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기자] “인류 역사상 그걸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유시민 작가가 한 얘깁니다.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젠트리피케이션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우리말로 ‘둥지 내몰림’이라고도 하는데요.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면 낙후한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주거비나 임차료가 오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원주민이 반강제적으로 해당 지역을 떠나는 것입니다.
[장화민 공씨책방 대표] 건물주가 바뀌면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에요. 갑자기 소유주가 바뀌었다고 해서 나가라고 하면 제가 25년 동안 같이 보내온 세월이라든가 저희 집에 오셨던 손님들의 추억, 그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전부 다 없어지는 거잖아요.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속상한 거죠. 건물 갖고 계신 분들이 그런 걸 인정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겠죠.
(손님들은) 여기서 장사를 계속 할 수 있게, 책방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자발적으로 서명 운동도 해주시고 “끝까지 지키세요”라면서 격려도 해주시고 그렇게 하죠.
[기자] 정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제 효력을 나타내지 못해 입주자들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장화민 공씨책방 대표] 내가 터 잡고 맘 편히 장사할 수 있을 때쯤 되면 나가라고 해서 그냥 대책 없이 내쫓기는 분들도 많잖아요. 오랫동안 장사했으면 그 장사한 가치를 인정을 해주고 (외국의 경우) 둥지를 떠나게 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는 그런 장치들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법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저희 집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이 됐잖아요. 지정하시기 전에 그런 것들도 보완할 수 있는 보완제도들을 마련해서 선정해주시면 좋겠고...
[기자]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의 대책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곳곳에서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종로구 혜화동 주택가에는 대로변을 제외한 구역에/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설 수 없도록 했으며, 서울 성동구는 상생협약정책이나/ 구역을 지정해 입점을 제한하는 계획들을 내새웠습니다.
[고선근 성동구청 지속가능정책팀장] 성수동 지역의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된 구역 내에서 지금 255개 상가 건물 중 현재까지 150개 이상 건물에 대해서 상생 협약이 체결 되어서 62%이상 상생협약을 했고 가맹사업법에 적용되는 프랜차이즈 업종에 대해서는 입점을 못하도록 하는 정책을 하고 있거든요. 4월부터 7월까지 현장에서 임대 기간이 끝나서 재계약을 한 그런 점포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2016년 도에 17퍼센트 대 인상률에서 이번에는 3.7% 정도로 인상률이 낮아졌어요.
[박호 서울숲사진관 실장] 건물주 분들이 건물이 좋아졌다고, 아니면 상황이 좋아졌다고 (세를) 자꾸 올리시면 저희들이 또 다른 데로 내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은 굉장히 찬성하는 바입니다. 지금 이 동네는 대기업들이 못 들어와요. 대기업들이 들어오면 건물세가 올라가고 거품이 끼기 때문에... 정책적인 부분에서 성동구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기자] 서울시 도시재생지역 가운데 한 곳인 '해방촌 신흥시장'의 임대료는 앞으로 6년 간 동결된다고 합니다. 임대인 44명과 임차인 46명이 만장일치로 임대료 동결안에 합의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가 있던 이 지역의 임차인들은 6년 동안 임대료 상승 걱정 없이 영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용산구청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건물주와 상인, 양 측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환경개선공사 연계와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었던 결과라고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피해는 떠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남는 사람에게도 돌아오게 됩니다. 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인들이 떠나면 골목은 고유의 색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렇게 특색이 사라진 거리에는 자연스레 발길도 줄어들 것입니다. 상권은 죽고 임대료도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의 우려도 무시해선 안 되는 것이죠.[이기웅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한번 동네가 떠서 오래 몇 십 년 간다고 하면 사실 좋은 일이겠죠. 그렇지만 잠시 떴다가 또 다른 데로 옮기고... 그런 과정에서 공실률 높아지고 동네 망가지고 이런 과정이 악순환처럼 계속 되고 있는 것이죠. 한국의 경우, 특히 서울의 경우 (젠트리피케이션이) 굉장히 과열돼 있는 상황이거든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정책적으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현재의 접근 방식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고...
소유권이 인정되는 재산이라고 하더라고 동시에 ‘도시공간에 같이 모여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고... 사회전체가 전반적으로 변해야지만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런 변화가 이루어 져야지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기자] 구도심을 살려내기 위한 방안이라면서 시행된 낙후도시 개발 정책. 더 많은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 서민들을 내모는 것도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도 상권 상인과 건물주의 합의가 가장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몫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