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화장품', 누구를 위한 가격 상승인가

더 페이스샵 VS 미샤, 엇갈린 '가격' 전략

2007-03-02     권민경 기자

국내 저가화장품의 양대산맥 더 페이스샵과 미샤(에이블C&C)의 엇갈린 명암에 업계의 관심이 쏠려있다.

원조격인 미샤는 실적부진에 M&A 설까지 겹치며 고전하고 있는 반면 후발업체인 더 페이스샵은 지난해 매출액 1천820억원, 영업이익315억원을 기록, 아모레 퍼시픽과 LG생활건강에 이어 업계 3위 자리를 지켜냈다.

그런데 두 회사의 달라진 행보는 비단 실적뿐만이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더 페이스샵과 미샤 모두 '화장품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업계의 통념을 뒤집고 가격 파괴 전략으로 승부해왔지만, 최근 두 회사의 전략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

초창기만 해도 이들 저가 화장품의 평균 가격은 3300원에서 9800원을 유지, '박리다매'(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파는 것)를 실천해왔다. '저가'라는 것이 최대의 이점이었던 터라 비싼 제품도 1만원을 넘지 않았던 것이 사실. 이는 광고비와 포장비, 유통마진 등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미샤의 경우 여전히 대부분의 제품 가격을 1만원 미만으로 유지하며 기존의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비해 더 페이스샵은 '자연주의'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강조하며 제품의 가격을 조금씩 상승시켰다.

이에 업계에서는 '저가'를 표방해 시장 진입에 성공했던 더 페이스샵이 점차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수익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전략으로 돌아섰다고 분석했다.

저가화장품의 강점은 말 그대로 저렴한 '가격'이다. 미샤와 더 페이스샵 또한 지난 2002년과 2003년 출발 당시에는 600여개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대부분 1만원 미만에 구입할 수 있었다. 마스카라, 립스틱, 아이섀도우 등 색조화장품은 3300원∼4400원, 스킨, 로션과 같은 기초제품의 경우에도 1만원 선을 유지했다. 그러나 가격대는 얼마 가지 못해 깨졌고, 더 페이스샵의 가격 상승이 특히 두드러졌다. 최근 두 회사 제품을 비교해보면 미묘하지만 지속적으로 가격 차이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 측 모두 초창기에 출시됐던 색조화장품과 몇몇 기초제품들은 1만원 이하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력 제품과 신제품의 가격은 달라진 것.

더 페이스샵 '슬로건 바뀌면 가격도 오른다?'

더 페이스샵의 기초제품은 현재 1만2000원∼1만5000원 사이가 대부분이다.

특히 미백, 한방, 주름개선 등 '기능성' 이라는 명목으로 가격을 더욱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3300원짜리 제품은 핸드크림, 폼 클렌징 등 일부 제품에서만 볼 수 있다.

미샤 역시 가격 상승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신제품은 1만2000원대에 출시되고 있지만, 아직 주력 제품의 대다수는 1만원 미만을 고수하고 있다.

'저가화장품'이라는 슬로건으로 나란히 출발한 두 회사가 이처럼 가장 중요한 '가격'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블루 오션으로 각광받던 국내 저가화장품 시장이 후발업체들의 잇따른 참여로 레드오션으로 변했다는 이유를 꼽았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이후 태평양, 한불화장품 등 굴지의 화장품 업체들도 저가화장품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태평양은 이니스프리 허브스테이션과 에뛰드하우스라는 두 브랜드로 매장 확대에 나섰다.

한불은 잇츠스킨을 통해 저가화장품 경쟁에 뛰어들었고, 이외에도 스킨푸드, 뷰티크레딧 등이 더페이스샵과 미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부가가치는 줄고 경쟁은 심화되자, 저가화장품의 양강구도를 이뤘던 더 페이스샵과 미샤가 각기 다른 생존전략을 택했다는 것이다.

즉 더 페이스샵은 전략적으로 '가격 상승'을 통해 마진을 남기는 쪽을 택했고, 미샤의 경우에는 '저가 정책'을 고수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미샤 홍보실 관계자는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 반드시 소비자를 위해 제품의 질을 올린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미샤는 기존의 가격정책을 고수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저가'가 아닌 '정가'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더 페이스샵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저가'라는 것을 부각시키지 않았다"면서 "'가격'보다는 '자연주의' 컨셉을 강조한 것이 더 페이스샵의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1천여가지 제품 가운데 아직도 상당수는 3000원에서 1만원 미만"이라며 "일부 기능성 제품의 경우 1만5000원선이지만, 타 업체와 비교했을때는 저렴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빅모델 기용, 같지만 다른 광고 전략 눈길
  
그런가하면 초창기 '저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광고' 부분에 있어서도 두 회사의 전략이 차이를 보였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화장품 광고는 으레 미모의 남녀 스타를 기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럼에도 미샤와 더 페이스샵은 스타 모델보다는 제품 자체의 가치를 선전하는 데 치중해왔다. 

빅모델을 먼저 기용한 것은 미샤 쪽이었다.

지난 2004년 미샤는 빅스타인 보아를 기용해 이미지 변신을 노렸고, 지난해에는 장동건을 캐스팅해 보아와 투톱으로 내세웠다.

이에 질세라 더 페이스샵 역시 2004년부터 한류스타 권상우를 모델로 기용했고, 지난해에는 고소영을 더블캐스팅했다. 

빅모델 기용은 당연히 광고비에 영향을 주고, 이는 다시 가격 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회사 모두 겉보기엔 똑같이 빅모델 전략으로 돌아선 것처럼 보였지만 차이점이 있었다는 사실.

미샤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보아와 장동건을 투톱으로 내세운 지난해에 오히려 광고비는 줄어들었다"면서 "TV나 잡지 등에 광고를 내보내는 빈도를 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광고노출빈도를 줄여 빅모델 기용에 따른 광고비 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고객 체험단 등의 기타 마케팅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이에 더 페이스샵 홍보실 관계자는 "업계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비싼 모델료를 지불한 것이 아니다"면서 "빅모델로 인해 가격을 상승시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더 페이스샵이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광고비 절감보다는 유통 마진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