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체, 11년 간의 담합 꼬리 잡혀

공정위, SK, LG 화학 등에 1천억 과징금 부과

2008-03-02     권민경 기자

<공정위, 가격담합으로 소비자 피해 1조5천억원 달해>
<업계 "정부의 생산량 조절 행정지도 따랐을 뿐" 반발 >

국내 합성수지 시장의 85%를 차지하는 10개 석유화학업체가 지난 11년 간 가격 담합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 1천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지난 20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 LG화학, 대한유화공업, 대림산업, 삼성토탈, GS칼텍스 등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1천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중 5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들은 지난 1994년 4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사장, 영업임원, 팀장회의를 수시로 갖고 폴리에틸렌(HDPE)과 폴리프로필렌(PP)의 가격을 적정가격보다 15%가량 높게 받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HDPE는 비닐쇼핑백과 맥주상자, PP는 식품용 필름과 비닐끈 등 실생활에서 쓰여지는 플라스틱 소재 원료다.

공정위는 업체들의 담합으로 인해 소비자 피해액은 무려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석유화학 업계는 1990년대 초 정부의 생산량 조절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인데, 과징금에 고발까지 당한 것은 억울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조사에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에서 자신신고 한 호남석유화학과 삼성토탈에 감면 조치 등이 내려진 것을 둘러싸고 형평성 논란까지 강하게 일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받은 10개 사는 호남석유화학, SK, 효성, 대한유화공업, 삼성종합화학, GS칼텍스, 삼성토탈, LG화학, 대림산업, 씨텍 등이며 이 중 SK와 LG화학, 대한유화공업, 대림산업, 효성 등 5개 사는 검찰에 고발됐다.

업체별 과징금은 SK가 23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대한유화공업 212억원, LG화학 131억원, 대림산업 117억원, 효성 101억원, 삼성종합화학 99억원, GS칼텍스 91억원, 삼성토탈 33억원,씨텍 23억원 등의 순이다.

담합 이후 영업이익 지속적 흑자 나타내

조사결과 이들 업체는 지난 94년 4월 사장단 회의를 열어 판매가격의 기준이 되는 기준가격을 매달 합의하고 이를 토대로 각 사별로 품목별 판매가격을 결정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002년 6월까지 매달 내수영업본부장이나 영업팀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점겸 회의를 열어 판매기준가격을 합의하고 월말에 마감가격을 다시 협의하는 등 가격을 공동으로 결정해왔으며, 이후 2005년 4월까지도 기준가격과 직거래처 판매가격을 협의해 결정해 왔다고 공정위를 밝혔다.

10개 업체의 담합 행위 기간 중 관련 매출액은 총 10조4천억원. 특히 이들 업체는 1991년~93년에는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했지만 가격담합이 실행된 94년 이후에는 외환의기를 겪었던 97~98년을 제외하고 모두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이들 10개사의 가격 담합으로 인해 지난 11년간 1조5천원에 달하는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

호남석화, 자진신고로 감면?...형평성 논란 불궈져

그러나 과징금을 부과받은 업체는 담합을 인정하면서도 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즉 90년대 초 서산단지 내 대규모 신규 증설이 허용되면서 과당경쟁과 산업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자 정부가 신규투자 억제, 생산 감축, 판매량 배분 등의 직, 간접적인 행정지도를 내렸고 업계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이에 공정위 정재찬 카르텔조사본부장은 "산자부에 문의한 결과 과거 감산이나 생산량에 대한 행정지도는 분명히 있었으나 가격에 대한 행정지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업계는 또 공정위 과징금 부과 결정을 둘러싸고 형평성 논란까지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롯데그룹 계열의 호남석유화학(이하 호남석화)이 첫 자신신고라는 명분으로 과징금 전액과 검찰 고발을 면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불법 담합행위를 자진신고하는 업체에 대해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따라 과징금을 면제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는 공정위가 업계의 불법 담합 행위를 예방하고 적발이 용이할 수 있도록 지난 96년 도입한 제도로,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가 담합에 대한 충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이전에 자진신고한 업체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고 있다.

국내 HDPE, PP시장에서 각각 20%, 15%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호남석화는 이 제도 덕분에 총 60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토탈과 삼성종합화학 또한 자진신고를 통해 조사에 협조하면서 과징금 30%를 면제받았고, GS칼텍스, 씨텍은 공소시효(3년)이전에 담합 행위를 중단해 고발을 피해갔다.

업계에서는 시장 1위업체로 지난 11년 간 결성돼온 가격 담합을 사실상 주도한 호남석화가 첫 자진신고라는 이유만으로 거액의 과징금 전액을 면제받은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삼성토탈의 경우에는 지난 2005년 4월 공정위가 사무실을 방문해 조사를 벌일 당시 직원들이 관련 서류를 빼돌린 전력까지 있는 것으로 드러나 관련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카르텔정책본부 문모 사무관은 "이번에 과징금을 부과받은 10개 업체가 순위별로 각각 20~30% 등 해당되는 만큼씩 감면을 받았다"면서 "호남석화와 삼성토탈만이 감면받았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정위 조사를 받은 업체들은, 조사가 진행될수록 처음의 우기기 작전에서 돌아서 경쟁적으로 자진신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