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황동진 기자] 다사다난했던 2010년 한해가 저물고 있는 가운데, 재계에서는 세대 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창업 1~2세대가 물러난 자리에는 젊은 피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재계를 선도하는 1위 기업 삼성 역시 이건희 회장의 ‘젊은 조직론’에 발맞추어 최근 황태자 이재용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3세 경영이 임박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가운데 이 부사장의 형제들 간 ‘계열 분리설’도 ‘솔솔’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계열 분리설에 휩싸인 기업이 비단 삼성뿐만 아니란 것이다. SK를 비롯한 금호, 롯데, 한진, 효성 등 국내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모두 세대 교체 바람을 타고 분리설에 휩싸여 있다. 이에 <매일일보>은 오는 2011년 ‘계열 분리설’에 휩싸인 주요 그룹들의 속 풍경을 들여다봤다.
대권 거머쥔 ‘황태자’와 ‘황녀’ 간 격돌 본격
‘이재용 시대’ 도래 맞아 능력 있는 여동생들의 2011년 행보도 주목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행보가 심상찮다. 사실 삼성의 이상 행보가 포착된 건 이건희 회장이 올 초 복귀하면서부터다. 이 회장이 삼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지 1년하고도 10개월여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회장은 그룹 회장이 아닌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를 했고, 이를 둘러싸고 재계에서는 각종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재계에서는 삼성의 지주사 전환에 따른 지배구조 강화 목적과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시키기 위해 이 회장이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는 분석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 물론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시각도 공감을 얻었다. 여하튼 이런 저런 말들을 뒤로하고 이 회장은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올해가 저물기 전 심중을 드러냈다. 올 초 재계의 분석대로였다. 이 회장은 ‘젊은 조직론’을 들고 나왔다. 이 회장이 짠 조직론의 최정점에는 외아들 이재용 부사장이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사실 이 부사장은 지난해 인사에서도 승진설이 제기됐지만 당시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인 지 승진에서 제외됐다. 그랬던 것이 최근 이 부사장이 사장으로 전격 승진하면서 재계에서는 드디어 이재용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심중을 드러낸 만큼 이 회장은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는다. 아들을 보좌할 젊은 기수들로 채우고, 새로운 삼성 컨트롤타워를 세우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재계 일각에서는 의문 부호를 찍는다. 황태자의 황제 등극에 따라 삼성가 황녀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궁금증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사장이 승진이 확정된 만큼 황녀들도 동반 승진해, 향후 계열 분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용 부사장의 여동생들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삼성에버랜드 전무 겸직)와 이서현 제일모직 전무에 대한 계열 분리설은 비단 어제 오늘 나왔던 얘기가 아니다. 반은 적중했다. 지난 3일 삼성은 이부진 전무를 사장으로 전격 승진시켰다. 이로서 이 전무는 지난해 초 전무 승진한 뒤 2년도 채 안 돼 부사장을 건너뛰고, 곧바로 승진한 셈이다. 그동안 삼성은 이재용 부사장의 승진이 확정 된 가운데, 여동생들에 대한 승진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의사표시를 해왔다. 이부진 전무와 이서현 전무의 승진은 그들이 속한 각사에서 결정할 일이라며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다. 여하튼 일각에서는 이부진 전무의 승진을 기점으로 그가 속한 호텔신라와 에버랜드가 통합한 후 그룹에서 분리되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서현 전무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승진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지만, 이 전무 또한 오빠나 언니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는 현재 패션업계에서 두각을 내고 있다. 오는 2011년, 삼성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젊은 황제의 위기를 틈타 봉기하려는 원조 적통들
위기의 최태원 회장, 사촌 형제간 계열 분리 임박?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SK그룹은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추위 때문이 아니다.사정 칼날에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갈갈이 찢겨져 나가고 있다. 더불어 올인 하다시피한 해외 사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최태원 회장의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 그런데 여기서 더욱 문제는 그룹 전체가 각종 악재로 인해 휘청거리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최 회장의 경영 능력 부재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재계 서열 3위 그룹 수장에 오른 최 회장이 소버린 사태를 겪은 후 나름의 경영 성과를 이루기는 했으나, 무리수를 둔 사업들이 이제야 상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SK는 올 한해 중국 사업에 주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현지 정부의 심한 규제 탓에 발목이 묶여 버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말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려했던 사태는 지주사 전환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 SK는 내년 7월에 지주사 전환을 마무리 시켜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그도 그돌 것이 지주사 전환은 지배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의 경영 지배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주사 전환 시에 얽히고설킨 계열사간 지분 구조를 정리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현재 경영 능력 의심을 받고 있는 최 회장에 대한 봉기를 든 세력이 나타나게 된다면 SK그룹의 오는 2011년 대이변이 일어 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틈을 타 SK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아들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부회장이 독립 경영을 선언할 수도 있다. 사실 SK그룹 역시 삼성과 마찬가지로 ‘사촌 형제간 계열 분리설’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었다. 실제로도 SK그룹은 현재 SK그룹은 고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 전체를 이끌고 있기는 하지만, 최 회장의 친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SK E&S(도시가스)를 경영하고 있고, SKC와 SK케미칼 등 그룹 내 화학·소재 계열사는 최신원 회장과 최창원 부회장이 사실상 독자경영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승자의 저주가 끝내 우애를 갈랐다
돌아온 박삼구 회장, 봉합되지 않는 우애와 그룹
‘승자의 저주’를 제대로 겪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최근 박삼구 회장이 복귀를 했음에도 불구, 갈라선 두 가족은 뭉쳐지지 않았다. 박삼구 회장은 승자의 저주로 기인해 지난해 7월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금호석화) 회장과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입을 둘러싸고 이른바 ‘형제의 난’을 벌이다, 결국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동반 퇴진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분리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지난달 ‘워크아웃 조기졸업’이란 명분을 내걸고 15개월여만에 경영 일선에 박 회장이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 경영 체제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금호의 이같은 양분 체제는 내년에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실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화 직원들은 옷차림부터 다르다. 금호석화 직원들은 이달부터 금호아시아나그룹 CI(기업이미지)인 ‘날개’ 문양의 배지를 달지 않고 있으며, 명함에도 아예 그룹 CI를 뺐다. 또한 27층 높이의 금호아시아나 신문로 본사 건물에는 금호석화를 비롯한 금호피앤비화학·금호미쓰이화학 등 화학계열사가 9층 일부와 20~24층을 쓴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집무실은 각각 27층과 22층에 있다.금호아시아나는 박찬구 회장의 올 3월 경영 복귀 후부터 사실상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금호석화는 8월 회장 직속 부속실을 신설해 화학계열사의 경영전략과 감사·법무·홍보 업무 전반을 맡겼다. 신입사원도 따로 뽑고 있다. 금호석화는 7월에 독자적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했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달부터 대졸 공채를 진행 중이다. 한편, 박삼구 회장에 대한 복귀에 대해 계열사 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여전히 퇴진을 요구하고 있어 분리 경영 체제를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태양 앞에 달은 설 수 없다
신동빈 부회장 ‘마이너스 손’ 오명 벗고 황제 등극, 누나는? 2010년은 롯데그룹에게 있어서 ‘영광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숙원 사업이었던 제2롯데월드 건설 사업을 비롯해 굵직한 M&A를 잇따라 성공 시켰다. 지금도 인수 작업 중 기업들이 즐비하다.사실 지난해까지 만해도 롯데가 이렇게 잘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탄탄한 자금을 갖추기는 했지만, 악재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기 때문이었고, 당시 신동빈 부회장과 신격호 회장 간의 갈등설이 솔솔 제기됐었기 때문이다.소문은 이랬다. 신격호 회장과 차남 신동빈 부회장간의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신 회장이 아들의 경영 방식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사실 신 부회장은 과거 손대는 사업 마다 실패를 거듭하자 이를 빗대어 ‘마이너스 손’이란 별칭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이로 인해 신 회장뿐만 아니라 롯데 내부에서조차 신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눈초리마저 생겨났다는 후문이다. 능력을 중요시 여기는 신 회장으로서는 이런 아들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을 노릇이다. 당시 이런 설을 더욱 부추긴 건 이어진 지분 안배였다. 신 회장의 맏딸인 신영자 사장이 잇따라 계열사 지분 매입을 했고, 신 회장의 영원한 샤롯데로 알려진 셋째부인 서미경씨의 딸인 신유미씨 또한 계열사 지분을 잇따라 매입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지분 매입은 신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일각의 시각이었다. 특히 신 사장은 복귀 이후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롯데쇼핑을 유통지존자리에 다시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롯데쇼핑 사장과 롯데면세점 대표이사 자리까지 꿰찼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롯데가의 후계구도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뒷말까지 나돌고 있다. 현재 신 부회장은 무척 잘나간다. 반면 신 부회장의 누나인 신 사장은 주력 사업인 면세점 사업에서 최근 이부진 전무에게 승기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