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각 놀다가~ 뭐? 뭐가 궁금해?”
2010-12-07 송병승 기자
[송병승 기자의 ‘현장인터뷰’] 영등포 밤거리에서 ‘이모’를 만나다
12월의 어느 밤. 영등포 뒷골목을 지나는 기자의 팔을 누군가 붙잡는다. 속칭 ‘이모’다. 성큼 다가온 겨울에 기온은 떨어지고 칼바람이 불었지만 석유난로를 피운 한 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는 4~5명의 이모들이 모여 있다.
“방송에 나왔던 거? 요즘은 그런데 없어”
한 이모가 “궁금한 거 다 말하주겠다”며 기자를 멈춰 세웠다. “이모, 요즘 언니들은 어떻게 일해요?”라고 묻자 이전의 이야기들을 꺼낸다.“왜 예전에 방송에 나왔던 거? 가두고 핸드폰 뺏고 빚지게 해서 묶어두고, 그런 게 요즘 어디 있어. 빚지는 애들은 자기 성형하고 명품 사서 들고 다니면서 돈 헤프게 써서 그런 거지. 인터넷이 얼마나 발전한 시대인데 그렇게 했다간 다 알려지고 장사 못해. 112는 괜히 있겠어?”영등포 토박이로 이곳 생활만 30년을 했다는 이모. 세월의 풍파 때문인지, 이곳 생활의 연륜 때문인지 취재 차 나온 기자임을 밝혔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감 없이 이곳의 생활을 들려준다.“여기(영등포) 유리관(붉은색 불이 켜져 있고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는 가게) 안에 있는 아가씨들도 대부분 30대야. 20대는 10명도 안 돼. 우리처럼 이모들이 손님 끌어서 해주는 아가씨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젊은 애들은 이런데 안 오지. 더 많은 돈을 주는 데로 가지 않겠어? 하지만 돈 모으는 법을 몰라서 버는 것만큼 아니면 그 이상 더 쓰는 거야. 돈의 소중함, 필요성을 알 때쯤 되면 이미 늦어서 모을 수가 없지. 그러다보면 생긴 빚 갚아야 하고 애들 딸린 애들은 애 키워야 되고 그때 이런 데로 오는 거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학벌 없고, 기술 없고 나이 먹고, 이런 일 배웠는데 어디 갈 때가 있겠어”유리관 속 언니들은 자신을 ‘20대’ 라고 이야기 했지만, 짙은 화장으로 인해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었던 그 언니들의 실제 나이를 듣고 나니 왠지 가슴이 찡해진다. ‘나이를 가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칠을 더해야만 했을까…’“우리들도 겨우 담배 값 벌러 나오는 거야”
호객행위를 해주는 이모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도 남성이 지나가면 서로 나가서 말을 건네고 팔을 잡는다. 자기가 데려가 아가씨에게 넣어준 손님에게만 약간의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호객행위 하는 이모들도 그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야. 길 가는 사람들 잡아서 데리고 들어가는 게 어디 쉽겠어? 요즘 식당 가봐. 식당 아줌마들도 다들 30~40대 인데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갈 곳이 없잖아. 경제는 어렵지 사회적으로는 힘들어지지. 그래서 나오는 거야. 나와서 담배 값이나 벌고 들어가는 거지”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식당가에서 조차 이모들이 설 자리는 사라졌다. 음식점들은 좀 더 젊은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식당일조차 하지 못하는 이모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마음 같아선 파지 줍는 거라도 하고 싶지. 하지만 하루 종일 파지 주워도 돈 만원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야. 게다가 저 앞에 쪽방촌 보이지? 거기 사람들 대부분 파지 줍는 걸로 사는데 파지도 자리를 잡아야 줍지. 그러다 보니 우리 역시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돈 때문에 여길 못 떠나고 있는 거야”이모의 말대로 영등포 성매매 지역은 쪽방 촌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고 기자가 그곳을 지날 때 여러 사내들이 그곳을 지키며 파지를 분리하고 있었다.시간이 흐를수록 이곳도 변한다
2004년 성매매 특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 영등포 성매매 단지는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 예전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9시라는 이른(?)시간이어서 그런지 곳곳의 가게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아예 문을 닫은 가게 눈에 띄었다. “예전엔 경찰들이 돈도 받고 봐주기도 하고 그랬지.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거 없어. 돈을 받지도 봐주지도 않아. 그만큼 이곳의 사람들은 더 어려워 진거지”성매매 여성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전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일들이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인권단체에서 매주 화요일 나와서 콘돔이니 화장품이니 주고가. 생일날 되면 케익 주지 연말이면 장갑에 무릎담요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주고 간다니까. 예전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어”찾아든 한파로 인해 손님은 더 줄어가고 공치는 날도 많다고 이모는 말한다. 하지만, 이모 역시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더욱 음지가 되어가는 곳. 허름하고 쓰러져가는 이곳의 건물들과 그 앞에 들어선 거대한 쇼핑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낡은 담이 더욱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