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건 농성, GM대우는 말이 없다

[현장]아치 위로 올라간 두 노동자의 이야기

2010-12-09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송병승기자] 기상청은 8일 영하의 기온과 많은 양의 눈이 내릴 것을 예보했다. 오랜만에 기상청의 예보가 딱 맞아 떨어져 동장군과 설공주가 찾아 왔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GM대우 부평공장 앞에는 여전이 많은 사람들이 아치 위의 두 노동자와 함께 ‘비정규직 철폐, 해고자 복직’을 외치며 농성을 진행 중에 있었다. 2007년 GM대우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지자 사측은 노조간부들을 징계하고 계약 만료, 폐업 등의 이유로 대부분 노조원들을 해고 시켰다. 복직의 기회가 있었지만 복직한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의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나올 수밖에 없었다.이후 GM대우 부평공장 서문 천막 농성을 시작으로 선전전, 삼보일배 등의 투쟁을 벌였지만 사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135일의 교통정보 수집용 탑 고공농성, 마포대교와 한강대교 시위 등 목숨을 건 투쟁에서 역시 GM대우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사측, 초지일관 ‘무관심’…아치 위엔 두 노동자가 있다

지난 12월1일 새벽, GM대우 비정규직노조 회원들은 기습적으로 정문 아치 위에 올랐다. 오랜기간의 투쟁에도 GM대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또 다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GM대우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켜라!’ ‘GM대우는 불법파견 중단하고 정규직화 실시하라’라는 현수막을 정문 아치에 걸었고 사람이 가장 공포감을 느낀다는 10m높이의 아치 위에서 영하의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며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이미 가지고 올라간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되었기에 통화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현장생활, 노조활동 등을 자세히 알고 있는 동료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눈보라를 맞으며 아치위에서 농성을 전개 하고 있는 황호인(41)과 이준상(34)의 이야기이다.

비정규직, 그들만의 이야기

호인과 준상은 GM대우에서 해고된 노동자다. 아니,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리고 현재는 GM대우 정문 아치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그들은, 사측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겠지만 아래에서 함께하고 있는 노조원들에게는 희망이다. 그들은 2006년 당시 인천지역 경제의 핵심을 담당하고 있는 GM대우에 입사했다. 물론 비정규직이었다. 다른 이유가 뭐 있었겠는가. 오로지 돈을 벌기위해 현장을 찾았을 뿐.호인은 지게차 운전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조립2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젠트라, 윈스톰 등을 만드는 라인이다. 자동차 부품이라는 것이 사람 손으로 옮길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에 호인은 그 부품을 지게차로 운반해 주는 업무를 담당했다. 여러 파견 업체가 있지만 기본급은 거의 대부분 비슷했고, 업체마다 다른 수당을 주었지만 결국 월급날이 되면 어느 업체에서 파견을 나왔건 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한숨이 새 나왔다.2007년 9월 중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호인은 그간에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외치고자 조합에 가입했다. 하지만, 그 뒤로 호인에게 찾아온 것은 ‘계약 해지’였다. 준상은 다른 기술이 없었기에 부품포장(조합원들은 이 업무를 KD업무라 부른다) 업무를 배정받았다. 수출하는 자동차는 완제품보다 부품포장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더 많다. 150만대를 수출한다면 100만대 정도는 부품 수출이다. 조립라인은 한 사람이 한 가지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기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하지만 부품포장라인 같은 경우는 단순 업무기 때문에 자리 교환이 가능하다. 회사는 정규직이 빠지면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했다. 같은 하청업체가 아니면 고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불법파견으로 다른 하청업체 직원들까지 함께 일을 했다. 준상 역시 이러한 불법파견에 대해 알리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을 수도 있지만, 준상에게도 ‘해고’라는 통지서가 찾아왔다.

결코 짧지 않은 3년이라는 시간

호인은 불혹을 넘긴 나이다. 동년배의 어느 친구들은 어엿한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고 결혼을 하고 토끼 같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호인은 불합리함에 맞서며 아직 투쟁의 현장에 남아 있다. 나이가 많아지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사회에서는 그 나이에 맞는 위치를 요구한다. ‘20대에는 어떻고, 30대는 어때야 하고, 또 40대는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통상적인 것들.이런 사회적인 것들을 호인은 지켜가지 못했다. 누군가는 호인에게 “나이먹고 저게 뭐하는 짓이람”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길. 호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다. 불합리함에 맞서며 그것을 바꾸기 위해 그렇게 호인은 찬바람을 맞으며 아치위에 서 있다. 한강 대교 위에 올라 목소리를 높이며 현수막을 흔들었던 것도, 마포대교에 밧줄을 묶고 혼자 매달려 시위를 벌였던 것도, 그리고 지금 아치 위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도 준상이다. 준상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현장에서 싸워왔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비정규직 철폐, 해고자 복직’만을 외치며 달려온 3년이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국민들이 ‘비정규직’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투쟁에 승리한 사업장들도 하나둘 늘어갔다. 하지만 GM대우는 아직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에 대한 원청사용자성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건만, GM대우는 아직까지 이를 부정하고 있다.

정문 아치 위, 하늘과 좀 더 가까워진 것 이외엔 변한 것이 없다

두 노동자가 아치위로 올라 간지도 벌써 8일이 지났다. 함께 하는 조합원들이 식사를 밧줄에 묶어 올려 보내고 있지만 이것 역시 처음부터 이루어 질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측과 경찰은 모든 물품이 음식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밧줄로 올리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지난 4일에는 대형 ‘낫’을 대동해 기습적으로 음식을 올리는 밧줄마저 자르려 했다. 당시 이를 막으려던 조합원들과의 마찰이 벌어져 하마터면 그 대형 낫에 조합원이 큰 부상을 입을 뻔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식사 이외에 침낭이나 스티로폼 등을 아치 위로 전달하려고 하고 있지만 항시 대기하고 있는 경찰 병력과 사측은 그것을 막고 있다. 새벽이 되면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인데도 불구하고 아치 위의 두 사람은 찬바람을 맞으며 새우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두 사람은 핸드폰을 가지고 올라 갔지만 이미 배터리가 모두 닳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힘들어 지고 있다. 서로간의 대화는 육성으로 크게 외쳐서 하는 수밖에 없지만, 이 또한 항상 대기 중인 경찰 병력으로 인해 쉽지 않아 보인다. GM대우 비정규직 노조 신현창 지회장은 아치 위 농성자 조합원들에게 “날씨가 매우 추워지니 제발 아프지 말고 잘 버텨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한편 GM대우 측은 9일 “점거 농성이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뭐라 할말이 없지만 빨리 해결 될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복직해결은 이루어 질 수 없다”며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대로 할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