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만원으로 즐거움을 산다” 취업절벽시대, 청년들의 핼로윈축제를 가다
2017-10-31 박숙현 기자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의상 대여하는데 3만원밖에 안 해요 그리고 이렇게 하루를 즐길 수 있잖아요.”'핼로윈 복장으로 꾸미는 데 얼마나 비용을 들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세일러복 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앙증맞은 펌킨 머리띠를 한 20대 후반 여성이 말했다. 직장인으로, 친구와 함께 처음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 놀러온 그는 영화나 공연 등 문화·여가생활에도 월급의 30% 가량을 지출한다고 답했다.오는 31일은 미국에서 건너온 기념일, 핼로윈데이다. 관심없는 이들도 많지만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이태원은 핼로윈데이를 앞두고 매년 들썩인다. 핼로윈 축제가 시작된 지난 토요일밤 401번 버스를 타고 용산구청•크라운호텔 정류장에 내려 녹사평대로 26길을 쭉 따라 올라갔다. ‘진정 이곳이 이태원의 핼로윈 풍경인가’라는 생각이 들만큼 조용하다 여길 때쯤 눈에 띄는 복장을 한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평범한 의상에 소심하게 얼굴에 상처 분장만 조금 하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커플의 뒤를 따라가니 멀리서 쿵 쿵 쿵 심장을 동요하는 클럽 음악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 이태원 퀴논길로 들어서니 새로운 세상이다. 요한 호이징하가 말한 ‘호모 루덴스’란 이들을 두고 한 말일까.듬직한 캡틴아메리카와 사진을 찍으려 다들 줄을 서는 바람에 한 구간이 정체다. 겨우 뚫고 나오니 남자 텔레토비가 똑같은 복장을 한 여자 텔레토비를 우연히 만나 처음 만나는 어색함을 뚫고 기쁨의 포옹을 한다. 가오나시를 끌고 다니는 치히로는 새침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사진 촬영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다.텅 빈 네모난 철판 요리기구를 앞에 두고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빤히 쳐다보시는 아주머니께 장사를 끝내신 거냐고 물으니 이제 시작이란다.길 한 가운데 하얀 플라스틱 테이블 3개와 빨간 의자를 둔 분장실이 성황이다. ‘상처분장, 페이스페인팅 1만~3만원’, ‘분장 받으실 분은 해골맨한테 번호표를 받아주세요’ 등의 임시 간판만으로도 줄서는 이들이 분장실 옆 구석진 골목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기자는 108번째 손님이 이제 막 분장에 들어갔다는 해골맨의 설명에 겨우 받은 157번 번호표를 버리고 중앙 아래쪽 길을 따라 걸었다.불그스름한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앳된 얼굴의 여성 둘이 있었다. 22살의 대학생인 이들은 처음으로 이태원 할로윈 축제에 참여했다고 한다. 조그만 펌킨 머리띠와 빨간색 악마의 삼지창은 다이소에서 각각 5000원, 2000원 주고 구입했단다.이번엔 환자좀비 복장을 하고 지나가는 여자 셋, 남자 둘을 붙잡았다. 20대 초반의 이들은 작년에 한 번 구경할 겸 오고 제대로 된 분장을 하고 온 것은 처음이란다. 제대로 된 분장이란 것도 별 거 없다. 여자들 화장품으로 5시간 정도 분장하고 환자복은 온라인에서 2만원으로 구입하면 끝이다. “변신하는데 많아봐야 3만 원정도 들었다”며 남자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또다른 낯선 이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인터뷰가 끊겼다. 이어서 만난 30대 초반 남성 네 명은 온라인에서 구입한 5만원대 의상으로 해리포터 호그와트 학생이 됐다며 신나했다. 이들은 월급에서 세금 떼고 쓸 수 있는 돈 중에서 문화나 여가생활비로 30% 가량 쓴다고 말했다.돌아다니는 것에 지쳤는지 차가운 대리석에 앉아있는 20대 후반의 직장인 여성 둘이 보였다. 이들 역시 할로윈축제 참여는 처음이고 영화 등 문화여가생활비로 30% 정도를 지출한다고 말했다. ‘여기 오려고 얼마나 준비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3일 전부터 온라인으로 찾아봤고 의상을 대여했는데 3만원밖에 안 해요. 그 돈이면 이렇게 하루를 즐길 수 있어요”라고 답했다. 무작정 왔다갔다한 이태원 퀴논길에서 'MISSTAKEROOM'과 같은 이태원스러운 술집과, 조그만 호박들로 어색하게 꾸며놓은 횟집,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신나는 사운드의 클럽들을 지나쳤다. 두 세번 왔다갔다 하니 할로윈을 즐기러 오는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공간에 용달차를 끌고 ‘천원핫도그’,‘해골반지’나 ‘해골팔찌’를 팔러온 청년들도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길 중앙에 분장실 한 팀이 철수하려는 참이라 바로 다가가 물었다. 20대 중반의 여성인 분장사는 “4시반부터 시작해서 11시 정도에 끝났다. 미술을 전공한 5명이서 분장을 했는데 100명 넘게 손님들이 있었던 것 같다. 줄이 저~멀리(7~8m)까지 서 있었다. 작년부터 왔는데 이태원의 할로윈 분위기는 매번 비슷하다. 외국인도 많고 독특한 의상들도 많고... 분장은 각 부위와 크기, 분장의 난이도에 따라 비용이 제각각인데 작년보단 장사가 잘 됐다”고 말했다. 노곤하지만 보람 있었다는 표정이었다.문재인정부의 경제 정책은 한마디로 ‘소득주도 성장’이다. 국민 한명 한명의 소득을 올리면 소비는 자연스레 따라와 기업 투자로 연결된다는 성장 공식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일자리에 투입할 내년도 예산은 19조2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12.4% 올렸다. 또 최저임금 인상 등 가처분소득을 늘리기 위한 여러 방안들도 나오고 있다.지난 3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6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1만5632달러였다. 원화로 환산하면 1인당 1814만원이다.가계총처분가능소득이란 각종 세금과 국민연금 납부액 등을 제외하고 소비와 저축에 활용할 수 있는 실질 가처분소득으로 개인들의 실제 주머니 사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5.4%인 것에 반해 PGDI는 3145달러 증가하는 데 그쳐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가처분소득은 거의 늘지 않고 취업난도 심각하지만 20대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문화·여가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통계청이 2015년 11월에 발표한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의 재정상황이 악화될 때 제일 먼저 소비를 줄일 지출항목(복수 응답)으로 20대(19~29세)는 △외식비(60.4%) △ 의류비(43.9%) △문화여가비(42.9%) 순으로 답했다. 30대는 외식비, 문화·여가비, 의류비 순으로, 60대 이상은 식료품비와 연료비를 줄이겠다는 비율이 높았다.소득주도 성장은 우리 경제의 숙제인 내수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일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을 위해 청년 일자리, 청년 주거환경 등을 개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이태원 거리를 걷는 와중에 소득의 30% 이상을 문화·여가생활비에 지출한다는 청년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청년의 삶으로 시야를 확대해 지원하는 청년정책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퀴논길에서 벗어나 지하철역으로 들어갈 때에도 중전 의상을 한 남성, 드라큘라 복장을 한 여성 등 제각각의 개성들이 이태원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