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거부와 영아 사망은 무관했다”

[내막추적]‘여호와의 증인‘신도 자녀 사망 사건’…언론의 무책임이 아이 잃은 부모 두 번 죽여

2011-12-15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송병승기자]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요즘에야 온라인게임에 중독된 부모가 아기를 굶겨 죽였다거나 친자식을 학대하고 때려서 죽였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기는 하지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의 영역이다.지난 10월 발생한 생후 2개월 영아의 사망 소식이 최근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아이의 부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다. 이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사망한 아이의 ‘수혈 수술’을 거부했던 사실이 전해지자 많은 언론들은 부모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수혈거부로 무고한 아이를 희생시켰다는 보도를 앞다퉈 내보냈다.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에 동참했고 이들은 종교 때문에 아이를 죽인 비정한 부모로 매도되면서 아이의 죽음에 이은 또 한번의 사회적 매장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매일일보>이 취재해본 결과 사람들이 가볍게 씹고 넘어가버렸을 이 사건의 진실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수혈 수술 치료 대안 있었지만…A병원, 아이 부모에게 안 알려
A병원 “수혈수술 쪽 성공률 높아, 생명 소중함 지키려했다” 강변

‘물 만난 고기’ 마냥 기사 써내려간 특정종교 연계 언론들
종교 무관 언론이라고 해서 보도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올해 9월6일 ‘선천성 심기형’을 안고 태어났다. 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기에 아이를 치료한 A병원 측은 부모에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알렸다. 아이의 부모는 수술에는 동의했지만 수술상황 중 ‘수혈’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종교교리 때문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아이는 9월24일 폐동맥을 묶는 한차례의 시술(취재과정에 A병원 측에서는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고 강조했다)을 받았고, 아이의 부모는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 수술방법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병원 측은 생존률이 높다는 이유로 ‘수혈 수술’을 강권했지만 부모 역시 거부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이로 인해 병원 측은 10월19일 진료업무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고 법원은 21일 받아들였다.부모는 서울대병원에서 자신의 아이와 비슷한 케이스의 심장 질환 아이를 2009년 ‘무수혈수술’로 치료하는데 성공한 사례가 있음을 알아냈고, 법원의 가처분 인가가 떨어진 직후 그 효력이 미치지 않는 서울대병원으로 아이를 옮겼다. 사망 영아의 부모가 백방으로 찾아다녀 본 결과 알아낸 서울대병원의 ‘무수혈 수술’ 성공 케이스는 서울대학교 김웅한 교수팀이 2009년 진행한 것이었다.이 ‘무수혈 수술’은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을 거부했던 환자에게 이루어졌다. 당시 생후 2주된 아이에게 이 ‘무수혈 수술’이 시술됐고, 이 아이는 2010년 12월 현재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안 있었지만…A병원은 왜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나?

본지 취재과정에 A병원 측은 이런 케이스가 있음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A병원 측은 생존률을 문제로 한 번도 부모에게 권하지 않았다. 부모가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는 것을 이미 밝혔고, 수혈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수술방법을 권하지 않고 한 가지 수술만을 고집한 것이다. A병원 관계자는 “한 케이스 성공으로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며 “우리가 수혈 수술을 고집했던 건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이고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강변했다.현재까지 A병원은 ‘무수혈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 장비나 여건 등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상태이고, 관련 의료기술을 개발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그냥 수혈을 받으면 되는데 왜 그런 쓸데없는 쪽에 에너지를 낭비하냐는 것이다.  아이는 병원을 옮긴지 열흘 만인 10월29일 끝내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패혈증’이었다. 서울대병원 측에 따르면 패혈증의 발병은 심장기형과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서울대병원과 A병원 그리고 부모의 변호사 등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아이는 심장뿐 아니라 여러 가지 장기에 부족한 부분을 안고 태어났고, A병원 역시 아이의 경과를 지켜 본 뒤 2~3개월 이후에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고 한다. 아이의 사망으로부터 1개월 보름여가 지난 12월 중순,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자 많은 언론들이 일제히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를 비난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특히 특정종교계와 연결되어있는 언론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기사를 써내려갔고 종교와 무관한 언론이라고 해서 보도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승냥이 언론의 ‘뉴스 소비’

대형 개신교회를 스폰서로 하는 모 메이저언론은 “‘여호와의 증인’ 부부 수혈 거부로 심장병 딸 숨지게 해…왜곡된 종교 신념”이라는 타이틀과 “종교적 신념을 앞세워 위독한 자녀의 시급한 치료를 막아 사망토록 방치 했다”는 기사를 통해 모든 책임을 ‘여호와의 증인’신도인 부모에게로 돌렸다. 또 다른 종교 교단 연계 메이저언론 역시 “부모 고집에 심장질환 2개월 영아 끝내 숨져”라는 타이틀로 “의사 표현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갓난아이가 부모의 종교적 신념으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고 부모의 종교를 비판했다.  종교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여호와의 증인’ 이라는 부모의 종교를 문제 삼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수혈 수술’ 거부에만 초점을 맞췄다. 부모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한 노력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아이의 죽음은 ‘이단’의 종교를 믿는 부모의 잘못으로만 여겨졌다.  사건을 정리하면, A병원은 ‘무수혈 수술’의 성공 케이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시술기법이라는 점, 그리고 아직 생존률 등의 측면에서 안정성이 확실히 보장됐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이 사실을 환자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부모는 ‘수혈’을 거부해 자식의 죽음을 방치한 ‘광신도’로 사회적 낙인을 받은 것이다. 
 

[취재여담] ‘뉴스소비’와 사실보도의 무게…그 사이

한국사회에서 ‘여호와의 증인(이하 여증)’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이다. 집총거부(세간에 ‘병역거부’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은 병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살상무기인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한다)나 수혈거부를 고집하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여증’을 ‘광신도’의 표본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볼 때 집총을 거부해서 모든 젊은 남자 신도들을 줄줄이 전과자로 만드는 것도 물론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혈’을 거부하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은 아니다.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기둥뿌리를 뽑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아닌 그깟 수혈 한 번 받는 것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혈이 꼭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수혈수술을 받으면서 이 사실을 교단 등 주변에는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간청하는 ‘여증’ 신도를 본 적이 있다고 기자에게 귀띔하기도 했다. ‘집총거부’에 비하면 ‘수혈’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아이의 부모는 자식을 잃은 엄청난 슬픔에 더해 사실을 왜곡한 편견 보도로 인해 사회적 지탄까지 받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여증’의 입장을 대변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실을 제대로 전하려고 노력한 언론이 있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왔을까? 사실 확인과 내막취재에는 관심 없는 다수 언론들의 보도로 인해 부모의 노력과 고통은 철저히 감춰진 채 이 사건은 그저 ‘이단’의 종교 교리로 인해 거부된 ‘수혈’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패륜적 광신도 사건으로, 많고 많은 사건사고 뉴스의 하나로 ‘소비’됐다. 아이의 사망 원인이 수술거부와 무관하다는 것, 부모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여러 수술방법을 찾아 본 것, 수술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것, 아이의 원래 수술 날짜는 2~3개월 후였다는 것 등은 어느 언론사의 기사에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아니, 이런 내막을 알았다면 ‘밸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도자체가 안되었을 것이다. 설마 아니겠지만, 내막을 아는 언론 중에 A병원에서 경제적 편익을 얻는 ‘소스’로 활용한 곳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쪽으로까지 생각이 뻗치니 그렇지 않아도 씁쓸하던 마음이 아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