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집 건설업계, 이번엔 검찰의 함바집 비리 수사로 곤혹
[매일일보=황동진 기자] 올 한해 국내 건설업계는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을 앓다시피 했다.
침체된 부동산 경기 속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사들마저 각종 비리에 연루, 사정 당국의 칼을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괜히 항변이라고 했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다. 때문에 새색시 걷는 마냥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한해를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지뢰가 또 터지고 말았다.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함바(식당) 운영권을 놓고 건설사와 운영업체 간의 검은 유착 관계에 대해 사정당국이 최근 칼을 빼어든 것이다. 이쯤대자 침묵하던 업계에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폭할 수 밖에 없다고까지 한다.
2010년 국내 건설업계, 부동산 경기 침체 속 줄도산 속출, ‘초상집 분위기’ 연출
검·경 비롯한 국세청 등 사정 당국, SK건설 등 국내 대표 건설사들 줄줄이 목줄 겨눠
검찰, 재개발 비리 수사 이어 함바 운영권 둘러싼 검은 유착 수사 착수…업계 “너무 한다”
“요즘처럼 힘든 시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7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금융 한파 때문에 PF 대출을 받기도 힘들어졌고, 이 여파로 미분양 사태가 속출, 중소건설사들의 줄도산이 이어 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의 부실건설사 선별 작업과 부동산 정책 강화, 소비자들의 눈높이 상승 등으로 요즘 웬만한 건설사들은 사업 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현재 워크아웃에 있는 H건설사 관계자의 말이다.
건설업계 “사업할 맛 안 난다”
이 관계자는 “뿐만 아닙니다. SK건설을 비롯한 롯데건설, 삼성건설, 금호건설 등 업계를 선도하는 대표 건설사들이 각종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까지 받으면서 그야말로 올 한해 건설업계는 초상집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은)쥐 죽은 듯이 지내왔습니다. 괜히 나섰다가 불똥이라도 맞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가 (사업 환경이)나아지기는커녕 목을 더욱 조여오고 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최근 검찰은 재개발 비리와 관련해 삼성물산을 비롯한 현대산업개발, GS건설, 현대엠코, 대우건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또다시 새로운 칼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건설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함바(식당) 운영권을 둘러싼 건설사와 운영업체간 검은 유착관계에 대해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함바 운영권 비리 전방위 수사
최근 검찰은 건설현장의 함바 운영권을 주는 대가로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대기업 건설업체 사장을 잇따라 구속 수사했다. 지난 12일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여환섭)는 함바 운영권을 주는 대가로 수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로 H건설사 고위 간부 A모씨를 구속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A씨는 2008년 초 인천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식당 운영권을 W사 대표 유모(64)씨에게 주고 5000만원을 건네받는 등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씨 등으로부터 총 2억4000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유씨가 함바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거액의 금품을 제공한 사람이 A씨 뿐만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업계 전반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S건설 마케팅부분 김 모 사장 또한 지난해 5~6월께 정유공장 건설현장의 함바 운영권 대가로 유씨 등으로부터 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4일 소환 조사 받았다. 또다른 S기업 이모 전무 역시 유씨로부터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J건설사 관계자는 “함바는 초기 투자비용이 적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업계에서는 함바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브로커들이 횡횡했다”며 “함바 운영권을 따내고 싶은 식당운영업자는 브로커를 고용해 건설사 고위 관계자들이나 현장 책임자는 물론 노조 위원들에게도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억원의 금품을 제공해왔다”고 귀띔했다.
“벌집 쑤시듯 하지 말아 줬으면…”
하지만 이 관계자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냈다. 그는 “비리를 근절시켜 건설시장을 투명화하는 데는 공감하지만, 올 한해 건설업계의 사정도 좀 헤아려 줄 필요가 있다”며 “검찰 등 사정당국이 벌집 쑤시듯 칼을 들이대는 것은 오히려 업계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나아가 건설 산업 전체로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