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외국계 유령자금으로 현대건설 인수하려 했나?

1.2조 나티시스은행 대출은 브릿지론...정상적인 대출로 보기 어려워

2011-12-23     이황윤 기자
[매일일보]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 은행에서 대출받은 1조2000억원이 브릿지론인 것으로 판명되면서 채권단과 정부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다.

당초 채권단은 자기자금과 대출금을 엄격히 구별하고, 대출금일 경우 증빙서를 내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양해각서(MOU)를 해지하고,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도 박탈할 수 있게 했다.

하종선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은 지난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 심리로 열린 MOU 해지금지 등 가처분 신청 첫 심리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나티시스은행에서 빌린 1조2000억원은 일종의 브릿지론”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형 글로벌 인수·합병(M&A)의 경우 일단 브릿지론을 얻은 후 재무적 투자자(FI)나 전략적 투자자(SI)와 협의가 완결되면 대출 대신 투자의 형태로 대체하는 것이 널리 행해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이 밝힌 브릿지론은 필요자금을 일시적으로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일시적 자금난을 피하기 위해 임시로 자금을 연결하는 다리(Bridge)가 되는 대출(Loan)이다. 통상적으로 대형 사업이나 M&A에서 흔히 쓰인다.

그러나 문제가 된 것은 향후 본 대출이 전제되지 않는 한 브릿지론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하 사장말대로 단순히 일시적인 자금조달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추후에 보증이나 담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면 그동안의 의혹이 사실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앞서 채권단은 현대그룹에게 ‘장래의 보증, 담보나 이와 유사한 계획’이 없다는 점에 대한 확인을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현재에는 보증, 담보가 없다’는 점만 밝혔을 뿐 ‘장래의 보증, 담보 또는 이와 유사한 계획’이 없다는 점은 밝히지 않았다.

두 번의 대출확인서에서도 이 부분은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브릿지론이기 때문에 향후 본 대출이 전제돼야 하고, 본 대출에는 당연히 담보와 보증이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확정된 대출이라면 총 자산 33억원인 현대상선 프랑스 현지법인에 무담보, 무보증으로 신용대출을 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본 대출이 전제된 브릿지론은 그 자체로 인출제한이 있다.

반면 브릿지론이라고 분명히 한 현대그룹은 채권단과 정부 등이 그 동안 요구한 해명에 대해 응하지 않은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상적인 자금조달 방식이라는 것이다.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를 제출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채권단은 현대건설 입찰 당시 자기자금과 대출금을 엄격히 구별하도록 했다.

대출금에 대해서는 확정적인 자금조달처, 조달방법, 대출금액 등을 입찰서류에 기재하고 그 증빙을 제출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MOU도 해지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현대그룹은 당초 나티시스은행 대출금이 브릿지론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며 “만약 밝혔다고 해도 (MOU 해지 등)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현대그룹이 양해각서(MOU) 해지전에 이 같은 사실을 밝혔더라도 현대건설 인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브릿지론은 독립적인 대출이 아니고 다른 투자나 사업을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빌려주는 돈”이라며 “현대그룹이 이제까지 무엇을 하다가 지금에 와서야 이런 내용을 밝히는 지 이해가 않된다”고 말했다.

1조2000억원이 확정적인 대출금이라는 것에도 의혹이 남는다. 정상적인 브릿지론이라면 일반 대출시 사용하는 대출계약서가 있기 때문이다.

단기대출금이면서 조기 상환이 쉽다는 점 외에 다른 내용이 없고,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특별한 비밀 조항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현대그룹이 브릿지론이기 때문에 대출계약서를 제출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정상적인 대출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대출계약서도 없고, 잔고증명서 발급목적으로 잠시 계좌에 입금하고 인출도 못하도록 한 자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대건설이 정체불명의 외국계 투기자본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프랑스 현지법인을 특수목적회사(SPC)로 활용할 생각이고, 프랑스 현지법인을 통해 외국계 재무적 투자자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1조2000억원을 이런 방식으로 갚겠다는 의도다.

유상증자든 본 대출이든 말만 다를뿐 외국계 정체불명의 자금이 현대건설 인수에 쓰인다는 이야기다. 이는 수년전 국가경제를 뒤흔들었던 ‘검은 머리 외국인’ 사태의 재판으로도 볼 수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돼 되살린 현대건설의 미래는 물론, 국가경제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비밀리에 외국계 회사에 알짜배기인 현대엔지니어링을 넘기려 했던 점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현대그룹은 처음부터 문제된 1조2000억원이 대출금이고 브릿지론이라는 사실을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이를 숨기고 자기자금 조달 비중, 조달이 확정된 자금의 비중, 거래종결 안전성 등의 평가항목에서 감점을 피했다.

M&A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입찰서에서 자금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면 채권단은 애당초 1조2000억원을 인수자금 조달방법으로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될 경우 현대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