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당하지만 학교선 은폐하기 급급”
금품 갈취 위해 원조교제 강요까지…조폭이야?
2007-03-16 한종해 기자
학교폭력대책법을 만든 지 3년이 됐지만 학교폭력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성인 범죄행위 뺨치는 흉포함이 발견되는가 하면 피해 연령층도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점차 어려지고 있다. 사이버폭력, 성폭력을 동원한 협박, 노동 착취 등 학교폭력 방법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또한 학교폭력은 갈수록 조직화ㆍ지능화되는 등 성인조직폭력 못지않은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교내 불량서클 등에 가입한 학생들은 지역별 연계조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성인조폭들의 말투나 행동을 모방한다.
이런 탓에 피해 학생들은 보복이 무서워 신고를 꺼리고, 학교폭력이 성인조직폭력으로 자연스레 이러지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폭력을 막고 학생들을 올바른 길로 지도해야하는 학교와 담당 교사들이 명예훼손, 진급불이익 등을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어 피해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학기를 맞아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들의 호소도 증가하고 있으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또 다른 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등 누가 피해를 볼 지 알 수 없다.
휴대폰, 인터넷 메신저를 이용한 사이버 폭력
서울 모 초등학교 4학년 박모양은 지난해 9월 초 친구 김모양에게 “선생님한테 아양 떨지 말라”며 김양 집에 끌려가 얼굴 등을 심하게 맞았다. 이후에도 괴롭힘을 이어졌고 김양은 ‘선생님이나 엄마, 아빠한테 이르면 너를 칼로 토막 내 국을 끓여 먹겠다’는 등의 섬뜩한 문자를 수시로 보내왔다.사이버폭력은 따돌림이나 기타 학교폭력 피해에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주로 신체폭행 등 1차 학교폭력 이후에 잇따라 발생하며 대부분이 욕설, 협박 등 위협적인 언어폭력이다.실제 학교폭력 관련 상단센터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친구 여러 명이 문자로 욕을 보내와 괴롭다’, ‘미니홈피(홈페이지)에 악성 댓글이 계속 달린다’며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교육개발원의 실태조사에서도 사이버폭력 경험률은 3.9%(100명 가운데 3.9명)로 언어폭력 8.4%, 금품갈취 4.7% 등의 뒤를 이으며 8가지 폭력유형 중 세 번째로 높았다.학교 성폭력 위험 수위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성폭력도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문제는 성폭력이 수치심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등의 협박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경기도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인 이모(16)양은 지난해 9월 같은 학교 친구 집 방에 갇혀 같은 학교와 인근 학교 동년배 9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들은 이양의 돈을 뺏은 뒤 신고를 우려해 속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은 뒤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이양은 한 달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우울증을 앓는 등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봤다.성폭력은 그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청소년 폭력예방재단 관계자는 “피해 학부모가 성폭력 발생 사실을 쉬쉬하는 데다 현행 학교폭력법이 학교폭력 범위에 성폭력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교내 폭력서클 조직폭력 조직과 연계
2005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학교 불량서클 가운데 다른 학교나 상급 학교, 성인폭력조직과 연계되는 경우가 70.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학교폭력 자진신고 기간에 성인폭력 조직 7개 파에서 활동 중이던 고교생 90명이 적발됐다.2005년 말 검찰에 적발된 서남부 최대 폭력조직 ‘이글스파’는 1978년 모상고 학생 12명이 만든 폭력서클이 모태가 된 것으로, 인근 중고교생들을 신입 조직원으로 수혈해 급성장했다. 지난 1월에도 전남 광양에서 조직 가입을 거부한 중학교 졸업반 학생을 감금해 폭행한 폭력조직 행동대원들이 구속됐다.이처럼 성인폭력조직은 기존의 세력과 활동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새 조직원을 찾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직폭력 서식환경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폭력조직 행동대원은 주로 10대 후반~20대 초반 청소년들로 이뤄지며, 이들은 불량서클 등을 중심으로 ‘폭력패거리’를 형성해 성인폭력조직과 연결된다.이 보고서에서 전국 234개 경찰서 중 112개의 담당자가 관할구역 내에 폭력조직으로 발전하거나 폭력조직에 공급될 수 있는 폭력패거리가 있다고 응답했고 이들은 경기 452명, 서울 350명, 경북 315명 등 모두 2587명에 달했다. 보고서는 “이 폭력패거리들은 성인 조직폭력의 한 축을 이루는 동시에 학교폭력의 심각한 근원을 이루는 문제”라고 지적했다.뒷짐만 지고 있는 학교와 교사들
사정이 이런데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자를 선도해야 할 학교는 울타리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폭력사건을 은폐하는 데 급급하고, 학교폭력 자율 해결 취지로 2004년 8월 도입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은폐를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다. 교사들의 문제 해결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지난해 9월 일진회 가입 권유 ‘단합식’에서 A군이 폭행당해 순진 뒤 이 학교 교장은 서군과 함께 폭행당한 학생들에게 자장면을 사준 뒤 “언론 취재에 응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학부모들에게는 ‘A군 노제에 참석하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과잉행동장애 탓에 급우들에게 따돌림과 폭행을 당한 B모군의 경우, B군의 부모는 지난해 8월 학교 측에 외부 전문가가 진행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이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이처럼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 측은 합리적인 해결에 앞서 은폐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학교의 은폐 시도에는 ‘학교 명예가 훼손된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사기관, 동창회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십분 활용된다.학교 폭력 사건이 시도교육청까지 알려지면 승진이나 학교 위신에 지장이 생길까 봐 쉬쉬하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말 동영상 검색엔진을 통해 공개된 여중생들의 집단 폭행의 경우, 그전에도 교사가 가해학생을 불러 ‘주의’를 준데 그쳤다. 학교폭력 상담 등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도 크게 부족하다. 교원 양성과정에서 생활지도 과목은 교대는 필수 2학점, 사대는 선택 2~3학점에 불과해 위기 개입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특히 학교폭력 관련 연수를 받은 교사는 7.2%에 불과했고, 처리 매뉴얼이라도 접했다(9.6%)를 포함해도 16.2%의 교사만이 학교폭력 처리를 아는 수준이었다.학생 선도의 일차적 책임은 학교에 있다. 학교의 적극적 노력이 없으면 어떤 대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