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업 절반 이상 “표준 하도급 계약서 사용 안 하고 있다”

사용 않는 41%, 메일·구두 등으로 위탁 횡행…불공정 행위 발생 시 구제 어려워

2018-11-26     이종무 기자

[매일일보 이종무 기자] # 자동차부품 생산설비 제작업체 A사는 원사업자에 설비 제조 위탁을 받고 납품까지 완료했다. 하지만 계약 조건의 수정사항이 있어 원사업자가 회수해갔던 원본 계약서를 아직도 받지 못했다. 이후 원사업자는 같은 설비의 추가 발주를 구두로 전했고 납품단가도 최초 견적서 기준 70% 수준으로 정했다. 그러나 추가 발주는 물론 납품 설비의 하도급 대금 일부도 아직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 목재 제조업체 B사는 전체 매출의 60%를 어음으로 결제 받는다. 어음의 수취 기간은 평균 30일이다. 금액이 클 경우 90~120일 정도 늦어지기도 한다. 만기는 평균 60일. 수취 기간과 만기를 합한 총 수취 기간은 90일을 넘는다. 하지만 법정 어음 할인료를 받지 못하고 있고 금융비용 등 현금이 필요한 부분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해결하고 있다.

국내 중소 제조업체 절반 이상은 표준 하도급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표준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업체 41%는 위탁이 발주서·메일이나 구두로 이뤄져 불공정 행위 발생 시 피해 구제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26일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국내 중소 제조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7 중소 제조업 하도급 거래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도급 계약 10건 가운데 6건 정도(58.2%)는 표준 하도급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표준 계약서를 사용하지 않는 6건 가운데 4건(41.1%)은 발주서나 메일, 구두로 위탁이 이뤄져 불공정 행위가 발생할 경우 수급 사업자의 피해 구제가 쉽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중소 제조업체들은 가장 빈번하게 경험하는 원사업자의 의무 행위 위반 사항으로 △서면 발급 의무 위반(54.2%)을 꼽았고 이어 △선급금 지급 의무 위반(37.3%)을 택했다. 원사업자와 수급 사업자 간 계약에 필요한 정보가 사전에 원활히 공유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하도급 대금의 평균 수취 기일은 △현금 33.2일 △어음 34.4일로 평균 만기 75.3일을 합한 총 수취 기일은 109.7일로 분석됐다. 법정 대금 지급 기한보다 50일 정도 더 걸리는 것이다.여기에 납품일 기준 60일을 초과해 어음 결제가 이루어질 경우 법정 할인료를 지급해야 하지만 이를 받지 못하는 업체가 70.9%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음 결제에 따른 금융비용을 수급 사업자가 자체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중소 제조업체가 지급 받는 하도급 대금의 결제 수단별 비중은 △현금(현금성 포함)이 77.9%로 가장 많았고 이어 △어음 21.8%로 집계됐다.중소 제조업체들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의 개선 방안으로 △법 위반 사업자에 대한 처벌 강화(49.6%)를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법·제도 개선 47.8% △주기적 실태 조사와 직권 조사 실시 34.6% △원사업자에 대한 공정 거래 의무 교육 실시 22.2% 등의 순으로 답했다.수급 사업자의 불공정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절반 이상(50.6%)이 △징벌적 손해 배상을 강화하거나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고 다음으로 △‘하도급법’상 손해 배상 절차 도입(19.8%) △손해 배상 소송 시 법률 지원 강화(18.6%)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하도급 불공정 행위는 계약 체결 단계에서 계약 조건이 원활히 공유되지 않거나 협의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표준 하도급 계약서 사용 확산 등을 통해 거래 당사자 간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시켜야 한다”면서 “중소 제조업체에 부담이 전가되는 어음 제도에 대해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