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KBS와 전면전?
공공기관운영법 놓고 노 대통령, KBS 맹비난… 밀월 금갔나?
[매일일보닷컴] KBS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과 KBS를 비롯한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노조간 ‘전면전’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공공기관운영법은 기존 정부투자기관법 등에서도 ‘정부 관여를 축소하고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제외됐던 KBS와 EBS가 예외 대상으로 규정되지 않아 KBS, EBS 노사 등이 격렬하게 반발 중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방송이 없었으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느냐”며 그동안 방송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던 노 대통령이 KBS를 정면 비판한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盧, KBS 강력 성토 “힘가진 집단의 횡포” = 노 대통령은 지난 20일 KBS가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힘을 가진 집단의 횡포가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해당 부처는 적절히 잘 대응해 달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국무회의 석상에서 ‘공공기관운영법이 언론 자유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KBS가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것이 언론의 자율 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으며 (주무 부처인) 기획예산처가 KBS 언론 독립을 어찌 침해할 수 있겠느냐”고 따진 뒤, “입법부나 사법부나 언론계나 모두 독립적인 예산 편성권 등을 갖고 상호 견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KBS가 최근 ‘공공기관운영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내용의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과 관련, “이는 자사 이기주의와 전파 악용의 예”라고 꼬집고, 나아가 국회의원들이 KBS를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을 개정까지 하려 하는 움직임에 대해선 “이래서 나라 꼴이 문제”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전병헌 천영세 박성범 류근찬 의원 등 국회의원 61명은 지난 16일 KBS와 EBS를 법률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위한 ‘공공기관운영법 일부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상태다.
◇ 의원 54명 성명, “대통령은 국회 입법권을 존중하라” =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법률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국회의 입법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의원들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개개 헌법기관인 여야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개정안에 대해 행정부 수반이 공적인 자리에서 사적인 주관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과 국회 내 민주적 논의과정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투명성과 효율성은 추구되어야 할 공적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현행법은 투명성과 효율성만 추구할 뿐 그로 인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공영방송의 공적 가치는 외면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 목적을 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방송의 제작 및 편성은 결국 예산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기획예산처의 예산통제 및 관리는 편성권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며 “또한 경영효율성만 강조하다보면 공영방송이 수신료보다 광고수입 비율을 늘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공영방송인 KBS와 EBS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은 87년 민주화의 성과이며 이로 인해 87년 이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과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돼 왔다”며 “그런데 위 두 법을 통합한 ‘공공기관운영법’에 두 기관을 다시 포함시키는 것은 방송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과 통제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역사적 교훈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노 대통령이 이번 일로 ‘나라 꼴’이 걱정스럽다고 했는데, 정말 걱정스러운 ‘나라 꼴’은 여야 국회의원이 공동발의한 입법안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무시하고 평가절하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발상은 매우 위험스럽고 관료적 권위주의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 KBS 노조 “29일 시위집회, 총력 투쟁” = 사태가 확산되자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은 언론을 통해 “KBS의 보도와 편성에 대해 간섭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100% 출자한 공공기관이고 사실상 준조세인 수신료를 징수하는 기관이니만큼 경영 투명성은 제고하고 방만 경영,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는 게 정부의 의무”라고 진화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언론노조 및 KBS노조는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KBS 노조는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언론관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언론기관을 정부 산하에 두고 통제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KBS 직능 5개 단체(경영협회·기술인협회·기자협회·아나운서협회·프로듀서협회)도 ‘대통령의 공영방송에 대한 인식이 통탄스럽다’는 성명을 통해 “공공기관운영법은 참여정부 임기 말에 와서 정부가 방송의 독립성을 1987년 6월항쟁 이전인 2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 역시 ‘방송 독립성에 대한 대통령의 순진한 인식이 안타깝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대통령이 방송 독립성을 폄훼하는 망언을 하고 말았다”며 “(대통령은) 공공기관운영법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라”고 지적했다.
결국 ‘개정안’을 둘러싼 대통령과 국회의원 및 노조측간의 정면 충돌은 노 대통령의 “언론 독립과 관계없다”와 노조측의 “관계 있다”로 엇갈리게 해석되고 있는 가운데 논쟁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