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방지’ 공정위에 구멍 있다

2017-11-30     박숙현 기자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9일 ‘2017년 하도급서면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향후 대책으로 ‘하도급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도급업체’에 해당하지 않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유용당한 경우 구제 근거가 마땅히 없어 관련 법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현행 ‘하도급법’에서는 원사업자가 수급업자에 기술자료를 정당한 사유 없이 요구할 수 없다. 다만 공정위가 과장금을 부과하는 등 시정조치를 내리려면 원사업자의 ‘기술유용’에 대해 입증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인과관계 등을 입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피해기업은 ‘민사소송’을 준비할 때 공정위의 조사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공정위는 설령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원사업자 또는 제3자에게 유출하는 행위만으로도 위법 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내년에 추진할 계획이다.그러나 공정위가 주시하고 있는 ‘하도급법’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을 유용당해도 관련 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공정거래법’등에 따라 사전심사를 받는다.관련 사례로, 중소업체 비제이씨는 지난해 3월 공정위에 현대차를 ‘공동특허 유도 후 등록한 행위’, ‘기술자료 요청’, ‘거래 중단 행위’로 신고했고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22일 현대차에 ‘무혐의’ 결정을 내려 심의절차를 종결했다.이 과정에서 비제이씨는 ‘하도급법’이 정의한 ‘하도급업체’에 해당하지 않아 관련 법 제12조의3 ‘기술자료 제공 요구 금지 등’ 규정을 적용받지 못했다. 현행 ‘하도급법’에서의 수급업자는 ‘업에 따른 위탁’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제조하는 현대차의 경우 새시모듈, 운전석모듈, 프론트엔드모듈 등 하나의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모듈화’에 참여하는 부품회사들이 이에 해당한다. 비제이씨는 자동차 도장 과정에서 ‘오폐수 처리를 업’으로 하는 사업체로, ‘하도급업체’로 인정받지 못했다.공정위가 현대차에 대해 ‘무혐의’ 처리를 내릴 때 근거 조항으로 ‘공정거래법’만 들었던 이유다.공정위는 현대차의 ‘기술자료 요청’과 ‘거래중단 관련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 23조의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중 제4호인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기 이용해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당시 공정위가 비제이씨에 보낸 ‘신고 회신문’에 따르면, ‘현대차가 당시 기술자료를 요청한 것은 악취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고 제공 자료들도 고도의 기술자료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신고인(비제이씨)은 비밀유지 및 권리귀속 관계 등에 대한 유의사항 없이 자료를 메일로 제공했고, 자료제공에 강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이와 반대로 중소기업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는 지난해 8월 ‘현대차의 기술침해가 인정된다’며 현대차에 대해 같은 달 31일까지 3억원을 비제이씨에 지급하라고 조정안을 냈다. 조정·중재위원회는 당시 그 법적 근거로 ‘하도급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을 들었다.현대차가 ‘기술자료를 요청한 사유’ 에 대해 새로운 근거도 나왔다. 관런 사건을 조사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현대차와 경북대가 산학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비제이씨의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요청했다’고 결론냈다. 지난 교문위 국감에서도 경북대를 상대로 기술탈취 여부에 대해 증인 심문했다.또 비제이씨는 기술자료 제출 시 현대차에 비밀유지를 요청했었다. 2005년 처음 현대차에 자료 제출을 시작할 때 관계자에 “자료를 대외비로 취급해 주시길 바라며 참고하신 후 폐기 시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명시한 이메일을 보냈다. 이와 관련해 지난 번 공정위 사전 조사 전 참고자료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비제이씨가 ‘하도급법’을 적용받았다면 공정위가 현대차를 ‘무혐의’ 처분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하도급법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정당한 사유로 요구하더라도 요구 목적, 비밀유지 사항, 대가 등을 명시한 기술자료 요구서를 중소기업에 발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공정위의 ‘기술자료 제공 요구·유용 행위 심사지침’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개발한 특허의 출원, 공동 기술개발에 대한 약정 체결, 하도급대금 인상 폭 결정, 제품 하자 원인 규명에 필요한 경우 등이 있다.물론 비제이씨가 ‘하도급법’을 적용받았더라면 공정위는 ‘정당한 사유’ 중 하나인 ‘제품 하자 원인 규명’에 해당해 기술자료를 제공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공정위가 비제이씨에 보낸 ‘신고 회신문’에 따르면, 공정위는 “현대차가 거래를 중단한 것은 기존 비제이씨가 납품한 미생물제로는 악취 문제 해결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현대차가 ‘새로운 미생물제 사용’이라고 주장한 ‘도장설비 악취 제거를 위한 미생물제 특허’는 특허심판원이 지난 21일 ‘무효’ 인용 결정을 내린 상황이다. 심사 과정에서 공정위의 전문성 부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이에 대한 대책으로 공정위는 지난 9월 ‘기술심사자문위원회’를 구성·운영해 전기전자·기계·자동차·화학·소프트웨어 등 5개 분과별로 5명씩 총 25명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두고 있다.기술심사자문위원회를 중심으로 앞으로 공정위가 기술유용 행위 근절하기 위해 기술자료 심사와 관련한 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기대된다.관련 사건은 공정위에 7월 재신고 접수돼 현재 서비스업감시과에서 사전심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