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학습하는 동물이다. 언제나 환경에 적응한다. 그럼에도 변화를 싫어한다. 기존의 익숙해진 상황에서 무엇인가 변하면 일단 싫다. 거부감이 든다. 금융시장에서 그런 것들을 불확실성이라고 한다.예를 들어 보자. 2015년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달러 강세였다. 유가 하락과 위안화 약세, 유럽 양적완화 등이 맞물리며 달러는 강세를 보였다. 주요 선진국 중 미국이 유일하게 금리인상을 고려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던 탓도 있다. 달러 강세 심화로 신흥국이 문제가 됐다. 신흥국 통화 약세로 달러 자본이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실제 위안화 절하가 단행되며 위기감은 증폭됐다. 시장이 진정되려면 달러 약세가 필요하다고 했다.달러 강세 걱정의 피크는 2016년 1분기였다. 이후에도 달러는 강세로 가다가 최근에야 진정되고 있다. 약세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앞의 문제를 걱정했던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걱정했던 달러 강세가 약세로 전환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어느덧 달러 강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달러 약세 전환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 경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다.달러가 강세로 가도 걱정, 약세로 가도 걱정이라면 대체 달러는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생각하면, 달러는 가만히 있었어야 했다….지금 시장은 익숙했던 두 가지 환경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금리인상과 재정정책 약화 즉, 부양정책의 후퇴를 고민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는 정책에 의존해 왔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주었다. 효과가 빠른 재정투입도 병행됐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부양정책 속에 경기는 조금씩 살아났다. 우리는 어느덧 정책부양에 익숙해졌고 학습됐다. 정책지원 없는 경기 회복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시장에 케인즈가 넘쳐나고 있다.과거 경기가 좋았던 시절을 돌이켜 보자. 정책 지원이 얼마나 있었던가? 활황을 구가하던 시절의 대부분은 정책금리가 인상됐고 재정적자가 줄었다. 경기부양을 위한 지원보다는 억제를 위한 조치가 더 많았다. 유동성을 조이고 흑자재정을 추구했다. 그런 때가 가장 경기가 좋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모자랄 때는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내는 것. 좋은 게 좋다고 경기회복이 뚜렷함에도 부양정책을 유지하면, 비이성적 과열에 이은 파괴적인 하락으로 돌려준다. 명백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과도한 부양의 부작용을 걱정해서 머뭇거리면, 유럽처럼 회복이 느려진다. 잘못하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샤워실의 바보라는 소리도 듣곤 하는 것이 정책이지만, 그래도 경제에 있어서는 중요한 한 축이다.정책의존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모자란 것이 덜하다는 의미다. 반대편에 있는 민간경제의 자생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민간경제가 자생력을 가지고 회복되면 될수록 경제도 좋아지고, 주식시장도 그만큼 활황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긴축과 정부의 재정적자 감소는 필연이다.우리는 이제 지난 10여년간 학습된 체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 기간 동안 부양정책 없는 경기 회복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낯설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기회복은 정부나 중앙은행의 개입이 없는, 오히려 긴축을 해야 하는 환경에서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런 관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정확대 정책이 당초 기대보다 축소되거나 지연되는 것을 너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민간 경제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정도로 자생력을 갖추어 가고 있다.연준의 보유 채권 매각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유동성 위축을 걱정할 수 있는데, 유동성이라는 것은 통화의 양 뿐만 속도도 중요한 요인이다. 양이 좀 줄어도 속도가 충분히 빨라질 수 있다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글로벌 수출 증가, 소비 회복, 부동산 활황, 금융거래 증가, 신용 스프레드 축소 등은 모두 통화의 속도와 관계 있는 변수다. 걱정은 이런 숫자들이 꺾이면 그 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