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측이 기존의 ‘검증공방’에 대한 본게임을 시작도 하기 전에 ‘검증공방 3라운드’에 돌입할 전망이어서 한나라당을 위기로 내몰고 있다.
지난 달 29일 오전 11시께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룸을 찾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항간에 나도는 이명박 전 시장과의 특별한 관계에 있다는 한국계 미국 변호사 ‘에리카김’의 친동생인 김경준씨가 지난 2000년도에 옵셔널벤처코리아라는 회사를 차려서 이 전 시장과 동업을 했는데 김씨가 이듬해인 2001년 380억을 횡령한 뒤 도주, 소액주주 27명이 고소를 해서 현재 미연방검찰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 내부적으로 제기돼 왔던 검증포문을 그동안 조용히 외곽에서 지켜만 보던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네거티브(?) 공세의 첫 포문을 직접 열어 제낀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유찬씨의 폭로로 제기된 선거법 위반, 범인 도피, 위증 교사, 살해 협박의 검증 1라운드 ▲이 전 시장의 지시에 의해서 성접대를 했다는 김유찬씨의 추가폭로로 비롯된 검증 2라운드에 이어 ▲에리카김 동생 김경준 사건을 3라운드로 규정, 한나라당이 검증공방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혼탁해질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두 대선주자들 사이가 검증공방으로 치열하게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시장 캠프의 실질적 좌장격인 강재섭 대표와 친박근혜 계열로 분류되는 이재오 최고위원마저 ‘캠프 직책’을 놓고 서로 충돌하고 있어 한나라당이 권력다툼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한나라당 ‘4월 위기설’. 이명박 X파일이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후보 검증 공방이 끝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에리카김 사건은 이명박 대선 레이스에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외견상 열린우리당이 시끄럽게 검증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지만 검증논란 3라운드의 불씨는 이 전 시장의 맞수인 박근혜 전 대표측이 물론 제공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 한나라당 주성영(대구 동갑) 의원측이 지난 달 26일 법무부에 옵셔널벤처코리아 사기사건과 관련, 김경준씨의 국내 송환 및 인도를 위한 검찰의 경과에 대한 자료제출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주성영 의원이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박(親朴) 의원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은 정치권 내에서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 정인봉 변호사의 ‘X파일 파동’을 불러온 이 전 서울시장의 지난 1996년 선거법 위반사건과 관련해 당시 수사 검사였던 주성영 의원은 이미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상태다.이런 까닭에 이번 자료 요구가 이명박 대 박근혜로 진행 중인 현재의 대립구도를 붕괴시키고 대권 0순위인 이명박에 대한 확실한 검증론을 통해 박 전 대표의 지지율 반전을 기도하기 위한 속셈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당안팎에서 나오고 있다.물론 주 의원측은 당내 검증공방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김경준씨가 이 전 시장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는 에리카김씨의 친동생이라는 점 때문에 주 의원측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묵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이 전 시장과 에리카김이 어떤 특별한 관계인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나온 것이 없기 때문에 일단 루머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 보르커들이 거론하는 이 전 시장과 에리카김의 관계는 대부분 루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특별한’ 관계에서 ‘특별했던’ 관계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에리카김의 첫 만남은 지난 1994년 이명박이 당시 국회의원 신분으로 김경준을 만나기 위해 LA자택을 방문하면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리카김의 출판기념회에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에리카김의 동생인 김씨가 2004년 LA자택에서 FBI에 체포,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졌다는 게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다. 때문에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는 이제 ‘특별했던’ 관계로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건 정치권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내놓고 있는 그림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하나는 정치 브로커들이 이 전 시장과 에리카김의 관계가 수상하다며 이 전 시장측과 박 전 대표측에 접근해, 자료제공을 빌미로 거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인데 말 그대로 이 전 시장을 겨냥해 ‘루머’를 갖고 ‘사기’를 치는 수법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는 루머가 아니라 ‘진짜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인데, 이는 이 전 시장의 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이 지난해 에리카김을 만났다는 미국 현지언론의 보도에서 궁금증이 시작된다. 에리카김은 미국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과의 관계에 대해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가 앞으로 어떤 언론과 접촉해서, 어떤 발언을 내뱉느냐에 따라 대선의 주요 변수로 작용될 전망이다.열린우리당 모 의원은 이와 관련 “얼마 전 일주일 동안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며 “미국에 가니 미국의 신문에서 이 전 시장과 에리카김의 관계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아무리 후보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묘한 뉘앙스를 풍겼다.‘사실’이냐 ‘거짓’이냐, 이것이 문제로다요약컨대 현 상황은 ‘사실’에서 위력을 발휘해 이 전 시장을 벼랑 끝으로 내모느냐, 아니면 ‘거짓’으로 판명이 돼 다른 한쪽을 도태시키는 것이냐로 압축될 수 있는 상황이다.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새로운 검증 논란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 2000년 김씨가 옵셔널벤처코리아라는 회사를 차린 뒤 이 전 시장과 동업을 하기 전에도, 이 전 시장과 동업해 ‘LK이뱅크’라는 회사를 설립한 경험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이에 따라 김씨가 국내에 송환돼 재판이 진행될 경우, 이 전 시장의 과거지사에 대한 어떠한 언급이 나올 것으로 보여, 당 경선은 물론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시장측은 이와 관련 “이 전 시장은 김경준씨와 동업으로 각각 30억원씩을 내 LK이뱅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았고, 이 전 시장의 큰 형과 처남이 최대주주인 다스도 2000년 3~12월에 1백90억원을 투자했다”며 “그러나 김씨는 회사자금 3백84억원을 빼내 위조여권으로 미국으로 빠져나갔고 이에 이 전시장과 다스는 각각 30억원과 1백40억원의 피해를 봤다”며 <신동아> 2월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 시장측은 주성영 의원측에서 이 전 시장과 관련된 인물에 대한 자료를 검찰에 요청한 점, 특히 김경준씨가 본국에 송환될 경우 대선전에 불리하게 작용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도덕성’ 논란 李 또다시 ‘노심초사’ 선거법 위반, 범인 도피, 위증 교사, 살해 협박, 성접대 등과 관련된 의혹 등으로 이미 두차례에 걸쳐 도덕성 검증을 받아왔던 이 전 시장이 또다시 ‘도덕성’ 문제를 통해 치명타를 입을 경우, 2007년 대선은 물론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나라당 경선 자체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물론 이 같은 분석은 ‘개연성’에 가깝지만, 정치권에 따르면 김씨는 미국 법정에서 “나는 하수인에 불과하고, 사실상 이 전시장이 직접 다 처리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져, 이 전 시장이 현 시국을 정면돌파하지 못할 경우 당 경선에서 이 문제가 크게 쟁점화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그의 대선 행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확률이 크다.국내 일부 언론들도 이 전 시장과 에리카김의 관계에 대해 루머가 아니라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판단, 에리카김과의 인터뷰를 추진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전해진 바에 따르면 김경준씨는 한국행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는 상태. 표적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스스로 판단해서라는 게 이유인데, 일각에서는 이 전 시장측과 모종의 접촉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의혹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송환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이와 관련 주 의원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범죄인 인도상황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것은 여권이 한나라당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해 김경준씨와 관련해 송환시기를 조절한다는 등의 설(說)이 있어서 검찰과 정치권간 조율이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고 당내 검증공방과 무관함을 강조했다.주성영 “검증공방 아니다” 강조이 전 시장측은 일단 김경준씨를 서울지검에 직접 고소한 상태다. 측근인 정두언 의원은 “김씨가 한국에 들어와 이 사건이 빨리 해결돼 루머가 아닌 진실이 공개되길 바란다”며 에리카김과의 관계에 대해선 “그야말로 헛소문”이라고 일축했다.정 의원은 앞서 지난 달 25일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이 전 시장의 국민적 지지가 높아지면서 이에 비례해서 같이 시작된 것이 소위 이명박 네거티브”라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의 대표측 의원으로 분류되는 K, Y, C, L의원과 L전의원을 배후로 지목한 바 있다. 그는 “이명박 네거티브는 아들 병역기피설부터 시작해서 숨겨놓은 자식에 이르기까지 수 십 가지에 이르며 아직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은 아직까지 날라가기는커녕 끄떡도 없다는 사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이 전 시장측은 이처럼 검증 평가를 내심 피해가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상대후보 진영의 반응을 다르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본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380억 횡령사건인 김경준 사건에 대한 자료를 요청함으로서 검증공방이 3라운드로 접어들었다”며 “무슨 갱스터 무비를 보는 것 같다. 견본품이 이런데, 데모테잎이 이런데 완결편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하다”고 꼬집었다.이명박 전 시장의 입에서 도대체 언제쯤 이런 말이 나올까? “도저히 못참겠다!” 이는 정치권 내 호사가들의 생각 뿐일까. 이 전 시장의 ‘해명’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