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정은 가라사대 “불신지옥”
2019-01-02 송병형 기자
지난 연말 평소 알고 지내던 북한 전문가에게서 문자가 왔다. ‘영화 강철비가 제법 잘 만들어졌으니 한 번 보라’는 내용이었다. 이 영화는 한반도의 엄중한 정세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북한 전문가가 권한 것도 이 때문으로 짐작된다. 특히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콕 집어냈다고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허구라는 지적이 그것이다.이 영화에서 북한 쿠데타 세력은 미국이 감행한 선제 핵공격을 막겠다며 일본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 동해 상공에서 폭발시켜 미국의 핵미사일을 요격한다. 자신들의 평소 주장대로 핵을 방어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 상공에서 핵미사일을 터뜨리려 한다. 핵폭발로 전자기기를 마비시킨 뒤 남진해 한국과 주한미군을 볼모로 삼고 미국과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평소 동맹 보호를 언약했던 미국은 일본을 위해 한국을 포기한다. 21세기판 애치슨 라인이다. 그리고는 절망하는 한국 대통령에게는 미 국무장관이 고함치며 자중하라고 한다. 한국은 결국 핵무장을 택하고 망명한 북한1호와 핵무기를 맞교환한다.공교롭게도 문자를 받은 다음날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육성 신년사를 통해 남쪽을 향해 평화공세를 펼쳤다.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남조선 당국은 온겨레의 운명과 이땅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미국의 무모한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해 정세 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화답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또 “이 땅에 화염을 피우며 신성한 강토를 피로 물들일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하며 미국의 핵장비들과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걷어 치워야 한다”고 했다.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전부터 북한에 가해지기 시작한 역대급 무력시위가 더 지속되어서는 안되며, 3월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는 요구다.김 위원장은 그 명분으로 현재의 한반도 정세를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라고 규정하며 “무엇보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하지만 그의 신년사 어디에도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오직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 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나라나 위협도 핵으로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약속만 있었을 뿐이다. 믿는 자에게는 천국이 불신자에게는 지옥이 기다린다는 맹목적인 교리나 마찬가지다. 영화 강철비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허무맹랑한 약속으로 들린다.현재의 문재인 정부만이 아니라 역대 모든 우리 정부에게 불가침의 원칙이었던 ‘한반도 비핵화’는 이제 갈림길에 서 있다. 대북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해결하자니 북한이 내밀었던 손을 다시 거둘지 모른다. 북한의 손을 잡자니 본토를 위협받는 미국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강철비의 양우석 감독의 말처럼 이제는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대응할 때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지난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