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 ‘카리스마’ 여전하네

박 전 회장 적극적 대외활동, 포스코 경영진 부담?

2008-04-07     권민경 기자

[138호 경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베트남, 중국 등 포스코의 해외사업 현장을 찾는가 하면 자신의 호를 딴 포스코 청암 재단 시상식에 참여하는 등 대외활동에 부쩍 열중하는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청암 시상식 날 기자들이 ‘한국경제와 포스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위기에 처했다”는 거침없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초 도쿄를 방문해 가진 인터뷰에서도 “지난 10년간 민주를 찾았으니 이제는 성장으로 가야한다”며 “5%의 성장 잠재력에 국민의 희망과 사기를 북돋워 1~2%를 추가, 연 6~7%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경영론을 펼치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이 이처럼 활발한 대외 활동에 나선 것과 관련, 재계 일각에서는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미 경영에 있어서는 뒷선으로 물러난 박 전 회장이지만, 여전히 포스코 내에서 그의 존재는 ‘신화’로 남아있다. 때문에 박 전 회장의 넓어진 행보가 최근 재선임 된 이구택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의 현 경영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박 전 회장은 이달 초 베트남을 시작으로 중국 등지에 있는 포스코 해외 사업장을 방문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해외 사업장을 찾고, 해당 국가의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며 포스코의 사업에 대한 협력을 부탁할 계획인 것.

중국에서는 지난해 7월 양자강 인근에 포스코가 준공한 일관제철소인 ‘장가항포항불수강’ 의 생산 설비 등을 둘러보고 현지 관계자들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베트남에서는 포스코가 오는 2012년까지 냉연공장과 열연공장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박 전 회장의 방문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고 포스코 관계자는 전했다.  박 전 회장은 ‘한국 철강 산업의 아버지’라는 상징적인 존재를 가지고 있는 만큼, 그동안 국제 철강 관련 행사 등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나 직접 포스코의 해외 사업장을 찾는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말이다.물론 포스코 측은 박 전 회장의 해외활동이 포스코의 경영과 큰 연관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명예회장이지만 포스코의 고문직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포스코와 관련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직접적인 비즈니스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 사업장도 보통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방문해왔다”면서 “전혀 이례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포스코 내에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박 전 회장, 여전히 포스코의 신화적 존재

한편, 박 전 회장은 지난 27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청암상은 포스코의 창업자인 박 전 회장의 업적을 기념하고, 창업 이념인 ‘창의, 인재육성, 희생, 봉사정신’을 확산시켜 성숙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포스코청암재단이 지난해 제정한 것. ‘청암’은 박 전 회장의 아호이다. 시상식에는 박 전 회장을 비롯해 이구택 회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 김우식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철강불모의 국가에서 오직 제철보국의 일념으로 철강자립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화의 초석을 닦은 박 전 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제정 취지처럼 이날 행사는 박 전 회장을 위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국내, 국외에서 박 전 회장의 보폭이 넓어지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포스코에 대한 그의 ‘영향력’ 확대라는 조심스러운 추측까지 내놓기도 했다. 사실 포스코의 창업자인 박 전 회장의 존재감은 여전히 포스코 내에서 상당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지난 1968년 포항제철 사장으로 취임한 후 20여년만인 80년대 후반 포항제철을 세계 최강 반열에 올려놓으며 재임 내내 ‘카리스마’ 형 지도자로 유명했던 만큼 포스코 직원들에게는 ‘신화’적 존재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박 전 회장의 뒤를 이어 4대 5대 회장을 맡은 김만제, 유상부 전 회장 등도 한결같이 박 전 회장의 카리스마 적 리더십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구택 회장 리더십, 박 전 회장과 종종 비교

그러나 지난 2003년 취임한 이 회장은 앞선 회장들과 전혀 다른 ‘관리형 CEO’ 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외유내강형’의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이 회장과 박 전 회장의 카리스마를 종종 비교하곤 했다. 이 회장이 취임 이후 내실 중심의 관리 경영을 바탕으로 최근 공격적인 해외 사업 추진에 나서는 등 경영 능력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리더십 면에 있어서는 박 전 회장만큼 뚜렷한 인상을 각인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 물론 군사정권, 즉 민영화 이전 ‘포철’ 시절을 이끌었던 박 전 회장과, 민영화 이후 달라진 기업 환경에서 포스코를 책임지고 있는 이 회장의 리더십이 같을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를 차치하고라도, 최근 박 전 회장의 빨라진 행보가 자칫 포스코 현 경영진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최근 3년 임기로 재선임되며, 국,내외 적으로 성공한 전문 경영인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는데, 박 전 회장이 대외적으로 너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그리 좋을 리 없다는 얘기.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박 전 회장이 대외적으로 포스코 챙기기에 나선 것이 포스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세계 철강계가 거센 M&A 바람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철강업계의 거물급 인사 가운데 한명인 박 전 회장의 움직임이 어떤 식으로든 포스코의 해외 사업에 탄력을 주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한편 박 전 회장은 빨라진 행보만큼이나 대외적으로 이 회장에 대한 칭찬의 말을 종종 언급하고 있어 또 다른 관심이 되고 있다. 이 회장이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69년 포스코 공채 1기로 입사할 당시, 이미 그를 미래의 CEO(최고경영자)라고 치켜세웠다고 알려진 박 전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회장의 연임과 관련 “아주 좋은 일”이라며 “이 회장이 워낙 열심히 하니 기분이 좋다. 베트남이다 인도다, 해외 진출도 잘하고 있지 않느냐"고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