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맞은 LG그룹, 위기감 고조

LG 구본무 회장, 시름 깊어지는 이유는

2008-04-07     권민경 기자

[138호 경제] 한국의 대표기업 LG그룹이 지난 27일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로 출발해, 사람으로 치자면 '환갑‘을 맞은 셈이다.

한 기업이 반세기가 넘도록 장수를 했으니 자축할 만도 하지만, 60주년을 맞는 LG그룹의 분위기는 오히려 경직된 분위기였다.

社史를 발간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기념행사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최근 LG가 처한 위기상황과 맞물려 있다. LG는 그룹의 현금창출 역할을 하던 전자, 화학 등 주력 계열사들이 지난해 실적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왔다.

여기에 기업들이 저마다 미래 성장 사업 발굴을 위해 활발한 신규사업 진출을 하고 있는데 반해 LG는 아직 뚜렷한 미래 사업 또한 찾고 있지 못한 실정.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를 입증하듯, 구 회장 올 초 신년하례식에서 “지난 60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발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최근 창립 기념 발간 사사를 통해서도 “기업에 있어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며 “쉼 없이 변화하고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47년 부산 서대신동에서 설립된 락희화학공업사를 모태로 한 LG는 이후 60여년 간 한국 경제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해 왔다. 창업 첫해 화장품으로 시작해 이후 화학과 전자사업에 뛰어들며 1959년 라디오, 선풍기, 전화기, 흑백TV, 세탁기 등을 만들어 국내 전자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어왔다. 설립 첫해에 3억 원이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85조원으로 28만 배 이상 성장했고, 종업원 수만 14만 명에 달하는 국내 대표기업으로 우뚝 섰다. 현재는 지주회사인 (주)LG를 비롯해 전자부문의 LG전자, LG필립스LCD, LG이노텍, LG마이크론 등 8개사, 화학부문의 LG화학, LG석유화학, LG생활건강, LG생명과학 등 7개사, 통신·서비스 부문의 LG텔레콤, 데이콤, LGCNS, LG상사 등 15개사 총 31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LG전자는 그룹을 대표하는 회사로, 1958년 설립돼 내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전 세계 80여 개국에 법인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 LG전자는 지난해 36조7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그룹의 현금 창고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LG전자를 비롯해, LPL등 전자부문 계열사들의 잇따른 부진으로 인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LG그룹 전체의 실적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LG전자, LPL 실적 부진 만회할까

결국 지난해 연말 LG그룹은 연말 인사를 통해 전자계열의 핵심 사령탑을 전격 교체했다. 남용(주)LG 사장을 LG전자 부회장으로 임명한데 이어, LG전자 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였던 권영수 사장을 LG필립스LCD(이하 LPL)사장으로 이동시켰다. 이와 함께 3년간 LG전자를 이끌었던 김쌍수 부회장은 (주)LG로 자리를 옮겼고, 구본준 LPL 부회장은 LG상사 부회장으로 이동했다. 재계에서는 전자 계열사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구 회장이 기존의 ‘인화’를 강조하던 문화에서 벗어나 ‘성과’와 ‘실적’위주로 방향 선회를 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LG전자의 매출은 전년 대비 2.5%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1.5%나 급감했다. LPL과 LG화학 등 주력 계열사 역시 매출은 각각 14.5%, 25.3% 늘었지만, 영업이익에 있어서는 전년대비 20.8%감소, 적자전환했다. 코스닥 상장사 LG마이크론의 이익도 절반 이상(-64.5%) 크게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들어 휴대폰 사업부의 수익성 개선과 디스플레이 사업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보여 LG전자와 LPL 등의 부진이 해소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특히 LG전자 실적회복의 기반인 휴대전화는 모토롤라, 노키아 등 글로벌 기업의 공세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PDP 모듈 역시 올 상반기에도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최근 본사 인원을 통합해 재배치하고 일부 인원을 감축하는 등 조직 정비에 돌입했다. LPL은 지난해 최악의 상황에 비하면 호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14일 사상 처음으로 LCD 패널 제조라인 가동 중단까지 치달았던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 실적 개선의 기미가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달러 약세, 판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전 세계 LCD 패널의 수익이 악화가 이어지고 있어 LPL 또한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많다.

미래 성장 사업 발굴 쉽지 않아

주력계열사의 실적 개선 외에도 LG가 고심해야 하는 것은 미래 신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과거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반도체)로 넘긴 반도체 사업 등에 대해 그룹 내부적으로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룹의 주력인 LG전자 내에서도 가전, 휴대폰 등이 중심인 LG입장에서, 사실 반도체는 가슴 아픈 사업 분야다. 10년 전인 지난 1998년 외환위기 타개 등의 명분으로 ‘반도체 빅딜(사업 맞교환)이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통합된 것이다. 당시 조선, 자동차와 함께 신 성장동력으로 분류되던 반도체를 강제로(?)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LG는 시간을 끌며 버텼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빅딜에 불응하면 채권은행단을 통해 만기대출금 회수 조치 등 금융제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LG를 압박했다. 당시 구 회장은 청와대까지 불려가 결국 반도체 포기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사업을 포기해야 했던 구 회장의 심정은 지난달 26일 발간된 창립 60주년 사사에서도 잘 나타났다. 구 회장은 “인위적인 반도체 빅딜은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통합법인 출범 이후의 모습에서도 나타났듯이 한계사업 정리, 핵심역량 집중이라는 당초의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그 평가는 후일 역사의 몫으로 남게 됐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창립 60주년을 맞은 LG그룹. 지난 반세기 넘게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LG가 100년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또 한 번 발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