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6차 공판, ‘H사 장부’ 둘러싸고 옥신각신
증인 한씨 “‘아주 윗선에서 주도해 만든 사건’이라고 들었다”
[매일일보] "허위 사실이 많은 엉터리 내용이다" (H건설업체 대표 한모씨)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만든 객관적인 자료가 맞다" (H건설업체 전 경리부장 정모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우진) 심리로 7일 진행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6차 공판에서는 검찰이 핵심증거로 내놓은 H사 장부를 둘러싼 신빙성 논란이 계속됐다.
첫 공판 때부터 주요 증거로 채택한 이 회사 채권회수목록과 비밀(B)장부에는 '의원', '한', '접대비 5억원' 등이 기재돼 있으며, 검찰은 모두 한 전 총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건넨 의혹을 받고 있는 한씨는 이날 H사 자금을 총괄한 정씨와 대질신문을 진행, "장부에 적힌 항목들은 이미 돌려줬거나 오래 전에 회수된 돈들이 상당히 기재돼 있어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신빙성을 부인했다.
이에 정씨는 "그 날짜에 실제 지출된 내역을 작성한 것으로 객관적이고 정확한 자료가 맞다"고 반박했다.
한씨는 특히 "검찰수사에 협조키로 결심한 후 문제될만한 자금을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현금과 달러를 섞어 조성했던 9억원이 떠올랐다"며 "정씨는 내 말에 맞춰 이런 자료들을 쫓았고 한 전 총리에게 제공된 돈이 9억원으로 정리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씨가 "당시 '의원에게 갈 돈'이라고 한씨가 직접 말했고, 여전히 9억원 모두 한 전 총리에게 간 걸로 알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자, 한씨는 "정씨에게 세 번에 걸쳐 3억원씩 자금마련을 지시한 건 맞지만 한번도 어디에 쓸 것이라고 말 한 적은 없다"며 "괜히 추측해서 오바하지 말라"고 맞섰다.
이날 한씨는 이 사건 제보자인 남모씨가 자신을 찾아와 "수사에 협조하라"고 겁박할 당시 '윗선'을 운운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한씨는 "검찰 수사 초기에 남씨가 내게 와서 '아주 윗선에서 주도해 만든 사건이라 협조하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윗선이 어디냐고 묻자 남씨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답하는 등 계속해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라고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한씨가 정씨에게 '수사에 협조하라'는 내용으로 보낸 서신 사본이 공개되자, 한씨는 "내 편지가 검열된다는 걸 고려해 검찰이 안심할 만한 내용으로 썼다"고 해명했다.
그는 "수감 중 투자자들에게 '검찰에 협조중이니 잘 될꺼다'란 취지로 편지를 보냈더니 수사관이 소환해서 '이런 내용은 문제된다'고 지적했고, 그 때 내 편지가 스크린된다는 걸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요즘 교도서에서 서신 검열을 하지 않는다는 건 제소자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라며 한씨 주장을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또 "오늘 증인 대기실에서 정씨와 마주쳤을 때 '오늘 내가 모두 죽여버릴꺼야. 내가 하는대로 모두 따라와'라고 말한 사실이 있냐"고 따져물었고, 한씨는 "그런 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해당 진술은 한씨의 입장 번복과 이후 증언들이 또 다른 감정이나 이해관계에 얽혀있다는 의혹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검찰은 H사 경리부장 출신 정모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흘러간 자금과 H사 박 전 부사장 등에게 급여 명목 등으로 건넨 돈은 별개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한씨는 앞서 "당초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던 9억원 중 3억원은 (한 전 총리 측근) 김모씨에게 대여해줬으며, 5억여원은 H교회공사 수주 로비자금에 쓰라고 H사 박모 전 부사장과 H교회 김모 장로에게 줬다"고 진술한 바 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와 박 전 부사장 등에게 제공된 자금의 시기와 자금원은 엄연히 다르다"며 "한 전총리에게 전달된 자금은 H사 직원의 계좌를 거쳐 자금세탁한데다 캐리어에 담는 등 용의주도한 준비를 거쳤지만 박 전 부사장 등에게 (급여 명목 등으로)돈을 지급할 때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총리에게는 달러를 섞어 주면서 장부에 '한', '의원' 등으로 기재한 반면, 박 전 부사장에게는 달러를 섞지 않고 실명 처리한 점도 차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다음 재판은 21일에 진행될 예정이며 증인으로 한씨의 동료 수감자가 출석한다. 내달 7일 열릴 재판에는 한씨 부모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한 전 총리는 2007년 3~9월 한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됐다. 김씨는 2007년 2~11월 한씨로부터 사무실 운영 및 대통령 후보 경선 지원 명목으로 9500만원을 받고 버스와 승용차, 신용카드 등도 무상제공 받아 사용한 혐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