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을 쫓는 ‘청계산의 망령’

가슴 아픈 한화그룹 청계산과 악연은 어디까지?

2011-02-09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송병승기자] 그렇다. 또 청계산이다. ‘한화그룹’과 김승연 회장에게 가슴 시린 추억(?)을 남겼던 청계산이 다시 그들에게 비수를 박았다. ‘청계산 보복폭행’이 있은 후 3년. 사건은 또다시 발생했다.

618m의 높이에 주봉인 망경대를 비롯, 옥녀봉·청계봉·이수봉 등의 여러 봉우리로 이루어진 서울의 명산중 하나인 청계산은 서울시와 과천, 의왕, 성남 등에 걸치고 있으며, 숲과 계곡, 절 등을 한 번에 만날 수 있어서 주말이면 많은 가족단위의 등산객들이 찾아 산행을 즐기는 곳이다. 이렇게 청계산은 시민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주는 곳이지만 유독 ‘한화그룹’에게만은 그렇지 못하다. 일각에서 “청계산에는 ‘한화그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망령’이 산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3년 전 ‘보복폭행’ 현장이 이번엔 ‘은닉’ 장소로 주목

한화그룹 “전혀 무관하다” vs 검찰 “계속 밝혀내겠다”

2007년 ‘폭행의 그날’ 청계산

2007년 3월8일 오전 7시경 김승연 회장의 차남은 청담동 G가라오케에서 북창동 S클럽 종업원 5명과 시비가 붙어 몸싸움을 하다 눈 주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자신의 차남이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된 김 회장은 이날 G가라오케로 찾아가 아들을 때린 일행 4명을 데리고 경기도 성남시 상적동 빌라 신축공사장으로 향했다.

오후 9시경 김 회장은 그곳에서 이들 일행 중 1명을 주먹과 발로 가격한 후 주변에 떨어 져 있던 1.5 길이의 쇠파이프로 등을 한차례 때리기도 했다.

나중에 현장에 나타난 김 회장의 차남이 이들 4명에 대해 “날 때린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 했지만 이미 이들은 김 회장으로부터 많은 폭행을 당한 후였다.

이후 김 회장은 S클럽에서 아들을 때린 사람을 찾아내 아들에게 “직접 때리라”고 지시했고 차남 김씨는 자신을 폭행한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정강이를 발로 차는 등 폭행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이 드러나면서 김 회장은 재판에서 폭행죄 유죄(집행유예) 판결 및 사회봉사명령을 받았다. 오랜 기간 공들여 쌓아온 그룹과 자신의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김 회장이 주먹과 쇠파이프로 일행을 가격했던 성남시의 그곳. 바로 ‘청계산’ 이었다.

3년 후, 비자금 사건과 청계산

그로부터 3년 뒤 ‘청계산 보복폭행’의 여파가 이제 조금씩 잊혀져가던 2010년 한화그룹에는 ‘비자금 사태’가 발생했다.

금융감독원은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심 차명계좌 5개와 관련해 대검에 수사를 의뢰했고 서부지검으로 이첩된 이 수사 첩보로 인해 한화 그룹은 본사 및 증권을 비롯해 경비용역업체, 협력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약 140여일 동안 수사가 진행된 한화 비자금 사건은 김 회장 등 전·현직 임원 11명이 불구속 기소되는 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그로 인해 ‘차남 보복 폭행사건’ 이후 2년여 만에 활동을 재개하려 했던 김 회장의 행보는 다시 바닥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번 한화 비자금 사건에서도 한화그룹과 ‘청계산’과의 악연은 이어졌다.

검찰은 지난 1월30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한화그룹이 청계산 비닐하우스에 중요 서류를 숨기는 등 조직적인 수사 방해 행각을 벌였다”면서 기소 이후에도 수사 방해 혐의에 대해서 계속 밝혀나가겠다고 전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한화의 경비용역업체인 S사 관계자가 지난해 9월 말 회사에 압수수색이 진행 되자 핵심 서류철을 자신의 집 뒷산 비닐하우스에 숨겼다가 적발됐다.

S사 관계자가 핵심 서류철을 숨긴 뒷산. 또 다시 청계산이었다.

한화 “비자금과 청계산 서류 은닉 무관”

‘보복 폭행’ 이후 이번 비자금 수사 결과 증거 인멸 장소로 청계산이 다시 언급되자 인터넷 등에서는 ‘김 회장이 청계산과 악연이 있는 것이 아니냐’, ‘청계산에 한화 그룹 시설이 있는가’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경비용역업체인 S사가 그룹 계열사가 아닐뿐더러 당 회사에 대한 압수수색의 발단도 경비원들의 압수수색 저지 혐의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들면서 비자금 사건과는 ‘연관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의 핵심 서류를 숨길정도의 직원이라면 말단 사원은 아닐 터. 어느 정도의 직위를 가진 직원이라는 것인데 회사의 핵심 서류를 자신의 집 뒷산에 숨길 정도라면 한화그룹과의 연관성도 배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번 ‘청계산 서류 은닉’사건과 관련해 “이번 사건과 비자금 사건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고 일축한 후 “좋지 않은 일로 매번 청계산과 연관되어 안타깝다”고 답했다.

또한 “이번 일(청계산 서류 은닉)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나간 후 반박 자료를 내려 했으나 전혀 연관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박 자료를 낼 경우 오히려 언론의 이목이 더욱 집중될 가능성을 의식한 말이었다.

‘부정부패’의 거대한 바위

한편 검찰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 자료 말미에서 “부정부패와 사회 부조리라는 거대한 바위 앞에서 작은 정 하나를 들고 서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개한 한화그룹의 수사 방해 활동 내역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직원들을 동원해 중요 자료와 증거들을 모두 없애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인물들의 도주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최초의 제보자에게 5천만원을 건네 무마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화 사건을 맡은 일부 변호사들은 피의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진술지침’을 준 사실도 확인 되었다고한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이러한 행위들은 기존의 범죄 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또 하나의 범죄”라며, “재벌그룹의 법질서 유린 행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