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철거, 단전 그러나 ‘두리반’
[현장] 홍대 문화와 어우러진 새로운 철거 농성의 장을 만나다
[매일일보=송병승기자] 한국사회에서 재개발 문제는 말 그대로 비일비재하다.
쫓아내려 발톱을 세운 사람들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대립의 골은 깊기만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재개발 현장은 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안고 있다.하지만 홍대 인근 동교동 삼거리 공항철도 재개발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한 건물의 철거 투쟁의 모습은 여느 재개발 철거 현장과는 달랐다. 젊음의 상징인 홍대의 문화와 철거 농성장이 어우러져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철거 반대 투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곳. ‘두리반’ 이다.갑작스레 찾아온 강제철거, 터무니없는 이전보상비 내밀며 ‘나가라’
전기까지 끊겼지만 새로운 문화와 함께 짜임새 있는 투쟁 이어가…
두리반은 여러 사람들이 둘러 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크고 둥근 상을 일컫는다. 그래서 칼국수 전문점인 ‘두리반’의 식탁도 둥근 원형이다.
두리반 사장인 안종려(52)씨와 그의 남편인 소설가 유채림(50)씨도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물은 2년여 만에 송두리째 사라졌다.
“300만원 줄 테니 나가라”
안종려, 유채림씨 부부는 지난 2005년 두리반의 문을 열었다. 시설 투자비 1억 300만원, 보증금 1300만원. 부부가 평생을 모은 돈이었다. 홍대의 문화와 어우러진 두리반은 안종려씨가 만드는 칼국수, 보쌈의 맛이 소문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장사가 번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뒤 마포구 동교동 일대는 도시공항철도 역사가 세워진다는 계획과 함께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 됐다. 부부의 희망이 담긴 두리반 건물 역시 철거 대상이 됐다. 도시공항철도 역사가 세워진다는 말에 주변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올랐고 주변 건물주들은 10배 이상의 값을 받고 땅을 처분했다.
유채림씨는 “평당 8백만원이었던 땅값이 순식간에 8천만원으로 올라가고 심지어 모퉁이 부동산 건물은 평당 2억1천만원에 땅을 넘겼다”고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된 부부에게 시행사 측이 제시한건 ‘이주보상비용’에 해당한다는 300만원이었다. 다른 건물의 세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턱없이 부족한 금액의 이주보상비 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그나마 이거라도 받고 떠난 세입자들이 있는 반면 항의하던 여러 집들 중에는 이주보상비도 받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도 있다. 두리반 옆에서 라틴댄스학원을 운영하던 원장은 철거에 반대하며 버티다가 십원 한 장 받지 못한 채 그곳을 쫓겨나듯이 떠났다.
한때 남미 등지에서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학원의 원장은 현재 한 음식점에서 홀써빙을 하며 주방 옆 쪽방에서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고 홀로 남은 두리반. 그 부부를 몰아내기 위해 2009년 12월 24일 철거용역 30여명이 들이 닥쳤고 식당에 남아 있던 테이블과 집기 등을 모두 들어내고 입구에 철판을 박았다.
‘강제철거’ 두리반의 새로운 ‘시작’
부부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들은 되찾고 싶었고 되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강제 철거 하루 뒤인 크리스마스날 부부는 철판을 뜯고 두리반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남편 유채림씨가 소설가였기에 농성을 시작하자 작가들의 지지방문과 응원의 글들이 이어졌다. 단골손님이었던 홍대 주변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알려지면서 인디밴드들이 방문해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여느 철거 농성장과 달리 홍대 특유의 문화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농성문화가 두리반에서 만들어졌다.
두리반에서 지난해 6월부터 농성을 함께 하며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는 류한주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은 “두리반이 홍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등 두리반만의 새로운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리반에는 지난해 1월 엄보컬과 김선수의 월요일 음악공연을 시작으로 다큐영화 상영 자립음악가들의 음악회, 홍대인디밴드들의 공연, 일본어 강좌 등이 진행되고 있다.
전기 끊어졌지만 열정 막을 순 없어
철거 반대 투쟁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있던 두리반, 그 두리반에 강제 철거 이후 ‘단전’이라는 암흑이 찾아온 건 지난해 7월이었다. 시행사 측은 지하철공사 현장에서 전기를 끌어 쓰던 두리반의 전기를 끊었다. 전신주에 올라가 전기선을 끊어 버린 것이다.
한 여름 전기가 끊기자 냉장고에서는 음식이 썩었고 더위 속에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유채림씨는 “여름에 전기가 끊기고 아스팔트 복사열까지 올라오면서 밤에도 온도가 36도까지 치솓아 밤새 자다깨다를 반복했다”며 “너무 더워 화장실에서 찬물샤워를 하고 잠을 자도 1시간이면 더위가 다시 찾아와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유씨는 그럴 때면 3층 공연장에 올라가 미친 듯이 드럼을 치던 것을 회상했다. 상가지역이라 주변에 잠을 자는 사람이 없어 새벽 3시고 4시고 상관없이 드럼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신나게 드럼을 치고 땀을 흘리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두리반에 전기는 끊겼지만 그 곳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곳곳에서 생필품들을 도와 주었고 자전거로 돌리는 발전기와 태양열 발전기도 옥상에 설치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알전구로 두리반에 한줄기 빛을 비추는 정도는 충분하다.
매주 있는 공연 때 사용하는 엠프는 공연시에만 경유 발전기를 돌려 사용한다. 두리반의 문화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공연에는 차질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채림 “반드시 이기겠다”
두리반에 찾아온 두 번째 겨울. 농성을 처음 시작하던 그 겨울과 다른 점은 전기가 끊겼다는 것 한가지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두리반을 지지하고 있고 두리반에서 상주하고 있는 10여명의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두리반의 정신적 지주인 유채림씨는 “두리반 철거투쟁을 반드시 이기겠다”며 “이겨서 철거세입자들의 아픔을 알리고 법 개정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젊음의 문화와 접목된 새로운 철거 농성 문화를 전개하고 있는 ‘작은용산 두리반’. 그곳은 아직 현재진행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