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戰 당시 '정책적' 양민학살 시인

피격 대상이 양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행, 여성과 어린이 대부분

2008-04-14     매일일보
【매일일보제휴사=뉴시스】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양민 학살을 허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서들이 곳곳에서 발견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미군 당국이 한국전쟁 당시 방어선을 넘어 남하하는 피란민들을 향해 총격을 가할 수 있도록 혀용했음을 보여주는 존 무초 당시 주한 미 대사의 서한 내용을 시인했다고 AP통신이 13일 보도했다. 무초 대사가 1950년 7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발생 당일 미 국무부의 딘 러스크 차관 앞으로 보낸 이 서한에는 "피란민들이 미군 방어선의 북쪽에 출현할 경우 경고사격을 하고, 이를 무시하고 남하할 경우 총격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AP통신에 따르면, 양민 400여명이 학살된 이 사건에 대해 미군측은 지난 1997~98년 "사건 발생 당시 노근리에는 미군이 없었다"며 부인하다 1999년부터 16개월간 진행된 진상조사 이후 비로소 사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고의적인 살상은 아니었다"는 입장으로 전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에도 미군은 양민학살이 정책적으로 허용됐음을 보여주는 무초 장관의 서한을 진상조사 최종보고서에서 누락시키는 등 은폐를 계속하다 최근에서야 이 서한의 내용을 시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美 전쟁 당시 '정책적' 학살 자행 AP는 또 노근리 학살사건이 보도된 1999년 이후, 미군이 양민들을 대량학살했다는 보고가 한국에서 60건 이상 접수됐으며 이중 일부는 미국에서 비밀해체된 문서와 증언들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1950년 9월 포항 송골 해변가에서 발생한 양민학살 사건도 포함돼 있다. 비밀해체된 미 해군 문서에 따르면 당시 포항 앞바다에 떠 있던 미 구축함 USS디헤이븐호는 해안함포사격통제반(SFCP)으로부터 피란민에게 함포 사격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뒤 피격 대상이 양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실행에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당시 해변에 모여 있던 피란민 200명이 사망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였다.

또 1950년 8월 10일 고간리에서는 미군과 항공기가 은신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폭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한 83명이 학살됐다. 비밀해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미군 25사단은 사건 발생 2주전 전투지역 내 민간인들을 총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이듬해인 1951년 1월 21일에는 미 전투기가 충북 단양 영춘 곡계굴 입구에 네이팜탄을 투하해 양민 300여명이 질식사했으며 당시 미군은 북한 인민군 첩자의 존재가 우려되는 경우, 이 같은 대규모 양민 폭격을 종종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1월 15일에는 충남 아산 둔포마을 창고에 숨어있던 피란민 300여명이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가 경고도 없이 미 전투기 폭격으로 몰살됐으며, 1월 19일에는 경북 예천의 산성마을 주민 34명이 미 전투기의 공격으로 숨졌다. 공개된 문서에는 당시 주민들이 인민군들에게 식량을 조달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으나 생존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