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랜드마크 ‘63빌딩’이 시끄럽다
평화롭던 12년 노사관계에 균열…원사용자 한화63시티 ‘수수방관’
[매일일보=송병승기자] 1990년대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최고의 빌딩”이라 불리어지던 63시티.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자리는 다른 건물들에게 내준지 오래지만 그 명성만은 여전한 63시티에 최근 주차·보안직의 고용승계와 관련해 용역업체와 노조의 간의 마찰로 분란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가 생긴 1999년 이후 12년간 별다른 갈등 없이 원만한 노사관계를 이어온 이곳에 분란이 생긴 것은 지난 1월 용역업체가 바뀌면서이다. 이상한 부분은 용역업체와 노조의 입장을 각기 들어보면 양자 사이에 갈등이 이어질 이유가 전혀 없어보인다는 점.
취재과정에서 기본적인 사실 하나 하나에 대해서조차 서로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 사태의 책임자인 동시에 피해자로서 갈등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원사용자 한화63시티 측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 더욱 의문을 키우고 있다.
접점 없는 평행선을 달리면서 마찰을 이어가고 63빌딩 노사갈등 현장의 내막을 <매일일보>이 알아봤다.
하이파킹 “노조 그대로 옮겨 오는 것, 회사명의만 빌려 달란 소리”
노조 “100프로 고용승계만 되면 단협·임금 부분 양보할 용의 있다”
1985년 완공된 한화63시티는 각종 부대시설과 전망대, 수족관 등의 관람 시설을 갖춘 초고층 건물이다. 대한생명의 사옥으로 유명했던 63빌딩 건물은 2000년 통합법인 (주)63시티가 설립되었고 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그룹에 편입되었다.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빌딩으로 공인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단일빌딩으로는 가장 많은 상주인원과 다수의 관람객이 상존하는 곳이다.
평화가 깨진 이유
63빌딩에서 주차·경비 업무를 보는 직원들의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산하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 63빌딩주경시설환경노동조합(이하 63빌딩 시설노조)는 1999년 설립됐다. 한화63시티는 2001년 주차·경비 직원들을 아웃소싱으로 전환했고 이후 주차·경비 직원들은 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형태로 63시티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간 한화63시티와 주차경비 직원 공급에 대한 노무공급 계약을 맡는 용역업체는 총 3번 바뀌었지만 업체가 바뀌었다고 해서 직원들이 한꺼번에 바뀌는 일은 없었고, 이 기간 동안 노조, 용역업체, 63시티 간에 이렇다 할 마찰도 발생하지 않았다.
평화로웠던 3각 관계에 균열이 생긴 것은, 올해 1월 63시티가 새로운 계약을 위해 진행한 5개 회사의 지명입찰에서 ‘하이파킹’ 이라는 업체가 선정되면서부터였다. ‘하이파킹’ 측이 기존 노조에 대해 ‘고용 승계’와 ‘단체협약 승계’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퇴사한 노조원들을 제외한 약 60여명의 고용승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이파킹 측은 연봉, 단체협약 등을 새로 해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하이파킹 관계자는 “63시티 용역을 따내기 전까지 주차·경비 업무의 단순 노무직이 호봉제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계약시 평균월급 203만원을 제시 했는데도 불구하고 노조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기존 노조원들이 개별적으로 입사 한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의사가 있고 그 사람들이 새로운 노조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하겠다”면서 “하지만 기존의 노조가 그대로 옮겨 오는 것은 회사의 명의만 빌려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더불어 “현재 노조가 사무실 점거 등의 업무를 방해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처리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노조 측 관계자는 “평균월급 203만원은 10년차 이하에게는 많은 금액 10년차 이상에게는 조금 적은 금액”이라며, “203만원 준다고 했으면 우리는 당연히 들어갔겠지만 임금 부분은 만나서 이야기 할때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서 “개별적으로 입사하면 회사가 직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며, “우리는 노조원들에 대한 100프로 고용승계가 이루어진다면 단체협약 임금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노사갈등이 불거지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하이파킹이 지나치게 저가에 용역을 따낸 것도 있지만 보다 근원적으로 보면 현재 존재하고 있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발 뺀 한화63씨티
63시티 현장에는 지난 1월까지 주차·경비 업무를 보던 노동자들은 계약이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전 근무지에 계속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 새로 들어온 용역업체에서 고용한 노동자들이 이 자리에 투입되다보니 한 자리에 두 명씩 근무를 서고 있는 셈이다.
양측이 중복해서 업무를 보고 있다 보니 이들 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5일에는 관리실로 들어가는 노조원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용역업체 직원 간에 마찰이 일어나 양측 인원이 허리와 목 등을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노조원과 용역업체 직원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원 사용자인 한화63씨티는 마치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는 듯 한 발 뺀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2월5일 발생한 노조원과 용역업체 직원과의 충돌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화63시티 사측 관계자는 2월5일 충돌상황에 대한 <매일일보>의 질문에 14일 “알지 못했다”고 답했고, 추후 보내온 답변에서는 “2월5일 발생한 폭행사건은 노조와 신규업체간의 인수인계 과정에서 발생한 마찰이므로 당사와는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고 강변했다.
10여년 간 별다른 마찰 없이 유지되어 왔던 63시티 노조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차·경비원들의 근무지인 한화63시티 측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63시티 노조 관계자는 “이번 일의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한화63시티 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화63시티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63시티가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지만 개입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개입하게 되면 문제의 해결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관망하고 있는 상태”라며 한화 63시티 측의 행태를 지적했다.
하지만 한화 63시티 관계자는 이번 발생한 노조와의 마찰에 대해 “금번 사태는 협력업체 변경과정에서 기존업체 직원들과 신규업체간 고용승계와 단체협약의 승계에 관한 이견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고용승계 및 단체협약 승계 문제는 인수를 하는 신규업체서 판단할 문제이지, 당사가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조 측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까지 한화63시티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선 적이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63시티 측은 “업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두 업체 간의 원만한 고용승계 협의가 성사되길 바랄뿐 입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