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 끝은 ‘백수생활'시작

[현장로포] 수도권 A대학교 졸업식장을 가다 '졸업자 4명 중 3명이 백수'

2011-02-18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송병승기자]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졸업식 노래의 가사이다. ‘새 나라의 새 일꾼’을 준비하던 아이들이 자라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며 새 일꾼이 될 준비를 마쳤지만 현실은 ‘새 일꾼’들에게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학교 졸업시즌이다.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은 짧게는 2년 길게는 6~7년의 시간동안 전문 지식을 배운다. 대학만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철없던 생각들은 이미 간데없고 ‘취업’이란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 더 이상 대학교 졸업장은 빛나지 않고, ‘졸업은 또 다른 시작’ 이라는 말에서 말하는 ‘시작’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백수생활의 시작’이라는 자조가 터져나오는 요즘.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졸업생들에게 현실은 더없이 차갑기만 하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대학 졸업식의 현장에서 취업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스펙’이라는 벽에 부딪힌 ‘대졸 구직자들’, 무리하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휴학하고 스펙 쌓기 전념해도 부족…재능만 보고 뽑는 회사 어디 없나?”

더 나은 미래 위해 선택한 대학원 진학, ‘고학력 백수’ 지름길?
“대학원이 경력으로 인정된다지만 그건 입사해야 해당하는 말”

<매일일보>이 찾아간 수도권의 한 대학교 졸업식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초·중·고를 비롯해 대학까지, 또 누구는 대학원까지 15년이 넘는 학업과정을 마친 이들에게 가족들과 친구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많은 졸업생들과 가족들이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고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감추기에 그 웃음은 어색해 보였다.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어느 회사든 갈 수 있다는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지나간 옛말. 일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높은 토익 점수, 해외 연수 경험, 많은 자격증 들이 필요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날 졸업식장에서 만난 학생들도 다가온 현실과 높아져만 가는 스펙에 고민하고 있는 모습들이 역역했다.

선배들과 친구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기 위해 왔다는 강모(26)군은 군 휴학을 포함해 4년간의 휴학을 했다. 그는 “학업과 이외의 공부를 병행하려니 쉽지 않아 휴학을 했다”며 “휴학기간동안 ‘스펙’을 쌓기 위해 자격증, 토익 공부 등을 했다”며 휴학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휴학을 하면서까지 스펙을 쌓았지만 사회적으로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어지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스펙이 아닌 재능과 능력을 보고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 많아 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점점 더 높아지는 사회적 요구 ‘스펙’

201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임모(27)군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꿈을 접었다. 그리고 약 20여 군데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그를 찾는 회사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그는 “대학원도 경력으로 인정된다고 하는데 입사를 해야 해당하는 말”이라며 “좋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어학연수, 자격증 등 더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는 이모(27)양은 현재 학원강사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이양은 취업을 준비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버는 일을 택했다.

그녀는 “점점 더 높아지는 스펙을 따라잡기 위해 시간을 버리는 것 보다는 그 시간동안 돈을 벌어 나중에 작은 가게를 할 계획”이라며 졸업 후 일정을 전했다. 

유달리 눈에 띄는 졸업가운을 입고 있는 한 학생이 있었다. 대학원 졸업생이라 가운이 조금 다르다며 자신을 “이제 고학력 백수가 된 사람”이라고 소개한 박모(28)군이다.

박군은 대학 졸업당시 좀 더 공부를 하며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원을 졸업해도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보다는 더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력과는 다른 자격증, 토익점수 등의 ‘스펙’들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졸업식, 또 누구에겐 그냥 하루

졸업식 날임에도 불구하고 학내 도서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졸업식의 즐거움과는 달리 이들에게는 현실에 대한 고민과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났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사람에게 말을 걸자 “대학원까지 졸업했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올해 나이 스물여덟의 그녀는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두 차례 시험을 봤지만 번번히 낙방.

 

친구들은 일반 회사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한걸음 나아가고 있지만 선생님의 꿈을 품은 그녀에게 아직까지는 사회 경험보다는 자신의 꿈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고민은 찾아오고 있다.

 

“선생님이라는 꿈을 위해 계속적으로 도전하고는 싶지만 시간이 더 흘러가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이미 다른 것에 도전하기에도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게 되어 앞으로 얼마간의 기간 동안 더 시험을 준비할 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점점 더 높아지는 경쟁률과 줄어드는 교사 자리는 현재의 그녀에게 꿈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2010년에 대학을 졸업한 김모(27)양은 졸업 후 1년여의 시간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투자했지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기업서비스 교육 업무를 하고 싶다는 그는 현재 그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연수를 모두 마친 상황.

하지만 그는 “원하는 회사에 여러 차례 면접을 봤지만 회사는 점점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고 있어 번번이 떨어지고 있다”며 “꿈을 이루고는 싶지만 스펙을 쌓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에 대해 현재는 자신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졸업자 4명 중 3명이 백수

<매일일보>이 A대학교 B학과에서 제공받은 취업실태 조사표를 보면 올해 40명이 졸업한 이 학과에서 취업에 성공한 학생은 10명에 불과했다. 졸업생 4명중 1명만이 취업에 성공한 셈이다.

취업에 성공한 10명의 학생들마저도 ‘정규직’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막상 취업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일이나, 안정된 직장이 아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우선 임시적으로 취업을 한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이 A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취업을 고민하고 있다”며 “관련 공부를 하기 위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밝혔다.

선후배들 간에 인간관계를 쌓으며 지식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던 ‘지성의 상아탑’ 대학.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책상 앞에만 앉아 있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