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인상 첫 한 달] “누굴 위해 올린 건가요”
2019-01-28 박숙현 기자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최저임금 7530원 적용 첫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보통 지난주에 월급날이 몰려있지만 영세사업장의 경우는 대부분 다음 달 초부터 1월분 월급날이 시작된다. 정부는 다음 달 중반에야 최저임금 준수 여부와 일자리안정자금(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정부지원금) 신청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28일까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의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인 셈이다.이 중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는 청원도 있다. 청원인 A씨는 “둘째를 낳고 나서 분유에 기저귀에 안그래도 힘들던 생활이 더 힘들어 낮에 아이를 볼 수 있는 야간직 공장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3개월만에 최저임금이 오르자마자 일자리를 잃었다”며 “누굴 위해 최저임금 올린거냐”고 물었다. 두 돌 된 아기의 엄마라는 청원인 B씨는 “일반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상여금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살아남기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일자리를 잃지는 않았지만 삶의 질이 더 떨어졌다는 청원도 많았다. 청원인 C씨는 “여기저기서 연차수당을 없애고 상여금을 (기본급에) 녹여 최저임금을 맞추고 있다”며 “어찌 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삶의 질은 더 떨어졌다”고 했다. 27살 아이아빠라는 청원인 D씨는 “최저임금은 올랐는데 어떻게 월급은 더 줄어들 수 있느냐. 회사에서 상여금을 기본급화 할 줄 나라에선 모르고 일처리를 이런 식으로 했느냐”며 “당장 다음 달 설날인데 부모님들 뵙지 말란 소리냐”고 했다. 이들 외에도 월급날을 앞두고 회사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통보받았다는 청원인들과 회사가 지정한 휴일을 제외한 나머지 공휴일을 연차로 지정 당했으며 이에 불복하면 사직을 해야 한다는 청원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누굴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냐”고 했다.지난 23일 한국노총 자료에 따르면, 193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최저임금 준수 상황을 조사한 결과, 136곳이 상여금을 기본급화하거나 휴일연장근로를 축소하는 등의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대해 근로자들은 사측에서 합법을 가장한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반면 사측에서는 자구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기업 하도급 업체를 운영하는 청원인 E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4대보험료, 퇴직연금, 휴일수당 등이 따라 오른다. 단순히 시급만 오르는 게 아니다”라며 “가뜩이나 힘들어도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이제는 죽어라 하는 것밖에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가족 같은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심정을 아시느냐”고 했다.한편 최저임금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은 자영업 분야에서는 ‘을(乙) 대 을(乙)’의 싸움이 돼 가고 있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청원인 F씨는 “어렸을 때부터 미용업에 종사했지만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하고 있다”며 “기술직이기에 기술을 알려준다는 핑계로 급여를 터무니없게 주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반면 업주인 청원인 G씨는 “고객에게 시술할 수 없는 초보를 (최저임금을 주고 쓸 수 없어 차라리) 안 쓰겠다는 게 고용주들의 생각이다. 그럼 갓 배우고 취업에 나선 청년과 주부들은 어떻게 실습과 경험을 얻을 수 있겠냐”며 “최저임금을 모든 직종에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은 자영업 분야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요즘 영세한 곳에서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 이전까지 최저임금 준수에 대해 관심 없던 사람들이 이번 인상을 계기로 상담을 해오고 있다”며 “다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고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부고발이다보니 우리도 강요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