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오디션’중

[이슈초점] 방송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문제점

2012-02-23     송병승 기자

[매일일보=송병승기자] 서인국은 조문근을 누르고 최후의 1인이 되었다. 거리의 악사 조문근이 마지막까지 살아남길 바랐던 사람들은 서인국의 외모와 스타성만을 보고 슈퍼스타를 결정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1년 후 짜리몽땅한 환풍기 수리공 출신의 허각이 큰 키와 말쑥한 외모의 존 박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냥 허각의 우승을 기뻐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의 오디션 프로 ‘슈퍼스타K’의 이야기이다.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들은 연이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시작은 참신하고 좋았다. 하지만 이제 ‘너무 과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다들 장에 간다니 똥장군 지고 따라나선’ KBS까지…방송계 따라하기 백태
리얼 버라이어티 적응 실패로 망한 MBC 일요예능, 이제는 ‘오디션’에 올인?

예능에서 아나운서 뽑는다는 MBC ‘신입사원’, 첫방 타기도 전에 갖은 논란…“왜?”
‘날림’으로 치러진 1차 선발부터 아이돌 노예계약서 방불케하는 ‘지원동의서’까지

‘오디션 시대’를 연 <슈스케>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단연 <슈퍼스타K>(이하 <슈스케>)시리즈를 꼽을 것이다. 2009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발점이자 도전을 꿈꾸던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72만명이 오디션에 참가했고 1등에게는 1억원의 상금과 M.net 아시안 뮤직어워드 참가 기회도 주어졌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후 M.net은 2010년 <슈퍼스타K2>를 제작해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케일은 더욱 커졌고 1차 오디션 참가자만 134만명에 달했다. 1% 시청률만 나와도 ‘대박’이라는 케이블방송에서 사상 최초로 10%의 시청률을 넘겼고 최종회 시청률은 18.1%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대 흥행’이었다.

MBC, ‘오디션’에 올인?

<슈스케> 시리즈가 예상을 뛰어넘는 대흥행에 성공하자 각 공중파 방송들은 슈퍼스타K에 조금의 새로움을 접목시켜 새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었다. 첫 선을 끊은 프로그램은 MBC <위대한 탄생>이다. <슈퍼스타K>와 많이 달라진 것은 없다. 기존 심사위원 체계를 벗어나 멘토 시스템을 적용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나와 노래를 하고 갖가지 미션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스케일 면에서는 공중파의 힘을 확연히 드러냈다.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가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해외 순방 오디션을 진행했고 예선 합격자들에게는 국내 항공편도 제공됐다. 우승상금에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우승자에게는 음반 제작비를 포함해 3억원이라는 상금이 걸려있고 K7 자동차도 부상으로 주어진다. <위대한 탄생>이 방송시작과 함께 성공의 기미가 엿보이자 맛(?)을 들인 MBC는 오는 3월6일을 기점으로 전면 개편되는 ‘일밤’의 새 코너를 전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채우는 과감한 베팅에 나섰다.

‘일밤’ 제작진은 가장 선망 받는 직업의 하나인 방송국 아나운서를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뽑는 <신입사원>과 일반인들의 오디션이 아닌 현직 가수들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특히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경우, 각자 자기만의 개성있는 음악세계를 이미 구축하고 있는 실력파 가수들을 대중이 ‘평가’한다는 점에 대해 일부 비판도 있지만 ‘높은 수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에서 우려보다 기대가 큰 분위기이다.

우후죽순 쏟아지는 아류들

오랜 기간 침체의 늪을 걸었던 일요일 저녁 예능에서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는 MBC가 이처럼 사활을 걸고 ‘일밤’ 전 프로그램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변경하고 나서자 다른 방송사들 역시 연이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SBS는 오는 6월 말부터 연기자 오디션 <기적의 오디션>을 방송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비공개적으로 배우를 뽑았던 기존의 방식이 아닌 국민의 손으로 자라날 예비 신인 연기자를 뽑는 오디션이다. 케이블 방송계 역시 연이어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tvN은  영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한국판인 <코리아 갓 탤런트>를 준비 중이다. 또한 가수들이 오페라를 부르며 경쟁하는 프로그램인 <오페라 스타 2011>도 내놓을 예정이다. 각 방송사들이 앞 다퉈 ‘오디션’으로 치고나오자 KBS도 따라잡기에 나섰다. KBS 관계자는 22일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논의 중으로, KBS가 공영방송인 만큼 객관적이면서 투명하게 시청자가 참여하는 방향으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선발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KBS는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개그맨, 탤런트, 뮤지컬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재능 있는 인재들을 선발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방식으로 오디션을 진행하겠다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야말로 ‘남이 장에 간다니 똥장군 지고 따라나선 격’인 셈이다.

‘영광’ 그 뒤의 그림자

갑작스레 등장한 그리고 앞으로 등장이 예고되어있는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 과연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즐거움을 준다는 장점만이 존재할까. 문제점은 그 시발점인 <슈스케>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에 지원했다고는 하지만 가수로 데뷔 할 수 있을지 여부도 판가름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신상정보, 사생활, 가족사항 등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됐고, 방송에 나타난 모습으로 인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가 <슈스케>에 출연했던 김모양. 김양은 미션 수행 과정에 의도치 않게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미션을 진행하려는 듯한 모습이 방송에 비쳐줬고, 시청자들은 그녀에 대해 인신공격을 쏟아냈으며, 이후 이러한 모습이 ‘편집’의 묘미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김양을 희생물로 삼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슈스케>의 첫 번째 아류인 <위대한 탄생>에서도 같은 문제가 드러났다. 한 참가자가 과거 인터넷 중고거래사이트에서 돈을 받은 뒤 물건을 보내지 않은 일이 밝혀지자 많은 누리꾼들이 그에 대해 인신공격이 쏟아진 것이다. 이밖에 프로그램 진행 과정에 일부 심사위원의 이해할 수 없는 심사기준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외모지상주의’, ‘음악성이 아닌 스타성만을 고려한 선택’ 등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입사원>의 총체적 난국

<위대한 탄생>의 성공적인 시작으로 재미를 본 MBC가 후속타 격으로 준비하고 있는 ‘일밤’의 새코너 <신입사원>의 경우 기획의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드러난 진행과정까지 곳곳에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케이스.<신입사원>은 14일 원서접수 마감 결과 5509명의 지원자가 참여했다. 보도에 따르면 높은 경쟁률에 대해 MBC 측은 “예상보다 많이 지원했는데 아직 최종적으로 몇 명을 뽑을지는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이 관계자는 특히 “최소 1명은 뽑지 않겠나. 그러면 경쟁률은 5509대 1이 될 것”이라는 무책임한 발언도 덧붙였다. 이 발언은 뒤집어 보면 단 한 명도 뽑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문제는 과연 방송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으로 알려진 MBC아나운서국이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뽑힌 ‘신입사원’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없다는 점.  이 프로그램 기획 소식이 알려지자 아나운서 준비생들은 “정말 이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인 준비생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카페 ‘아랑’의 한 회원은 “언론고시 준비생들 사이에선 ‘아나운서 위기론’이 한창인데 이제는 하다하다 예능 프로그램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하기에 이르렀다”며 “아나운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참으로 슬프다”며 참담한 마음을 전했다.  <신입사원>은 지난 20일 첫 카메라테스트를 통해 5천여명의 지원자를 300여명으로 추렸는데, 1시간당 600명씩 심사를 진행하면서 부실 심사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당초 2월27일로 예정됐던 첫 방송에 맞추어 ‘날림’으로 진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온 가운데 한 지원자는 “1시간에 600명을 본다니 말이 되냐?”며 “난 질문 하나 받고 내려 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 첫 방송도 타지 않은 <신입사원> 관련 논란에서 클라이막스는 언론보도를 통해 ‘지원동의서’의 세부 항목이 공개된 것이다.

문제의 ‘지원동의서’에는 △MBC가 나의 초상과 모든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명예 훼손이나 사생활 침해 등을 포함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MBC는 나의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신체적, 정신적 손상에 대한 금전적으로 보상해야할 의무가 없다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에 대해 아나운서 지망생들은 “아이돌 노예계약서도 아니고 이게 뭐냐”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연…몇 개나 살아남을까?

대한민국 예능프로그램은 대세를 따른다. 지난 몇 년 사이 예능의 대세는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한국형 리얼버라이어티’의 역사를 시작한 <무한도전>과 이를 변용해 ‘야생 리얼버라이어티’를 표방한 <1박2일>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서 등장했던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경우 일부 반짝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고 언제 끝난지 모르게 막을 내렸다. 대표적인 예가 ‘일밤’ <신입사원>과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의 전작인 <뜨거운형제들>과 <오늘을 즐겨라>이다.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 범람 역시 리얼버라이어티 바람의 행로를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원조’인 <슈퍼스타K>와 2인자인 <위대한 탄생>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비교적 크겠지만 그 뒤를 따라서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프로그램들의 미래는 밝지 않은 것이다.시청자들에게서 웃음과 눈물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오디션 현장의 치열함 뿐만 아니라 지원자 개개인의 곡절 많은 사생활까지 파헤쳐서 팔아먹어야 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출연자 개개인의 피해도 심해질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되는 부분이다.꿈을 위한 도전은 언제, 누가, 어떻게 하느냐를 떠나서 모두 아름답다. 하지만 꿈과 도전을 팔아 돈을 버는 방송사의 논리에 따라 움직여지는 도전에 대해서는 오히려 의구심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