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칠성, ‘부당’해도 좋다, ‘매출’만 올려다오?

영업사원들 “가판, 덤핑판매 강요로 일할수록 빚만 늘어”

2008-04-19     권민경 기자

노조 설립 막기 위해 회식비 지급, 도박판 유도하기도
본사서 기자회견 과잉대응 물의...기자 주머니까지 뒤져

주당 120만원이 넘는 초고가주의 대명사로 불리며 국내 음료업계 독보적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롯데칠성에서 부당영업행위를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1일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앞에서는 롯데칠성을 주축으로 해태음료, 동아오츠카 소속 전, 현직 영업사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서비스노조 식음료 유통본부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조원 100여명은 “가짜판매, 덤핑판매 등을 강요하는 사측의 부당영업행위로 영업사원들은 빚더미에 올라앉고, 이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며 악질적인 유통 구조를 규탄했다.

노조 김정일 본부장은 “1만원짜리 음료수를 가져와 8천원에 팔고도 회사에는 1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할수록 빚만 쌓인다. 영업사원 개인 당 적게는 1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에 달하는 빚이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영업사원들은 또 노조설립 과정에서 회사 측이 협박, 납치까지 일삼으며 지속적으로 탄압을 가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내 굴지의 음료회사인 롯데칠성 외 음료 3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충격적인 실태를 <매일일보>이 집중 취재했다.

그동안 음료업계에서는 경쟁업체들 간의 과당경쟁 속에서 자사의 매출을 늘리기 위해 영업사원들에게 상식적으로 달성하기 힘든 영업목표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가상판매, 덤핑판매를 요구해 온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롯데칠성을 비롯한 회사 측에서는 “어느 기업이나 매출 신장을 위해 목표치를 높게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는 일부 영업사원들이 오히려 덤핑거래를 통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영업사원들은 사측의 이 같은 부당영업행위로 인해 일을 할수록 빚만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르면 영업사원들은 회사 측의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게 위해 실제로는 판매되지 않은 물건을 판매된 것처럼 전산 조작하는 가짜 판매, 혹은 정상 가격보다 헐값에 판매하는 덤핑판매 등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물론 사측도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 묵인, 심지어는 이를 강요하고 있다고 영업사원들은 주장했다. 문제는 덤핑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족금(미수차액)을 회사측이 고스란히 사원들에게 전가시킨다는 점. 영업사원들은 보통 1년에 1억원에 달하는 부족금을 메우기 위해 대출금, 월급, 퇴직금에 집을 팔고, 전세보증금을 밀어 넣어 이를 충당하지만,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회사는 보증인의 재산까지 가압류한다는 것이다. 영업사원 김모씨는 “심지어 모 영업소 지점장은 어느 날 영업사원의 자가용 차키를 달라고 한 뒤, 대뜸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팔아 부족금을 회사에 입금시켰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회사는 횡령 및 업무상 배임에 대한 책임을 영업사원에게 물어 민, 형사상 소송을 통해 끝까지 부족금을 받으려 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런 과정들로 인해 영업사원들은 일반적으로 몇 천만원씩의 빚을 지고 있으며 회사를 다닐수록 이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간다는 얘기다.

견디다 못해 노조 설립했더니 지점 폐쇄, 전보발령까지

이 같은 불법 영업행위를 견디다 못한 영업사원들은 지난 3월 노동조합을 결성키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지만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사측의 치밀한 방해공작에 부딪쳤다. 노조 김정일 위원장은 “창립총회 전날 지점별로 2백만원씩의 회식비를 지급해 직원들을 참석케 하는가 하면, 밤새 주류와 도박판을 제공하기도 하고, 총회 날은 긴급 야유회를 벌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직원들의 차를 회사 관리자들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막아선 뒤 그 자리에서 직원을 끌고 가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탄압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사측의 탄압은 노조 설립 이후에 더욱 본격화됐다. 현행법상 노조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롯데칠성은 서광주지점을 비롯해 몇 개 지점을 통폐합하고, 영업사원들을 연고도 전혀 없는 외딴 지역으로 전보 발령을 낸 것이다. 해태음료 역시 별단 다르지 않아 순천지점을 폐쇄하고 영업사원을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내는 등 불이익을 줬다.

롯데 “계열사 일을 왜 본사에 일일이 책임지나”

실제로 지난 11일 서울 롯데그룹 본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도 회사 측은 영업사원들로 이뤄진 이들 노조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과잉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조는 이날 “롯데, 해태, 동아오츠카는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고 노조와 성실한 교섭에 나서라”며 규탄하고, 2명의 대표단이 사측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롯데 측에서 고용한 용역 경비 직원들과 본사 관리직원 70여명은 경찰병력까지 동원해 노조의 진입을 거칠게 막아섰다. 당시 현장에 있던 롯데 안전책임 담당자는 “칠성의 일을 왜 본사에 와서 항의하느냐”며 “계열사마다 대표이사가 있으니 거기에 가서 따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에 더욱 분노한 노조원과 롯데 측 직원들간의 밀고 당기는 몸싸움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고, 이 과정에서 한 여성 노조원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심지어 정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롯데 측 한 직원은 당시 상황을 취재하던 기자의 주머니를 뒤지며 녹음기를 빼앗으려고까지 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롯데그룹 홍보실 관계자가 나와 현장을 수습하려 했지만, 과열된 분위기를 쉽게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한편 홍보실 관계자는 “롯데 입장에서도 영업사원들과 관련한 이 문제로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면서도 “영업을 하는 쪽에서는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무리한 판매를 감행한다. 분명한 것은 회사 측에서는 이러한 부당영업행위(가판, 덤핑판매)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