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허무한 연말정산, 확 뜯어고치자”

“고소득자가 더 많이 돌려받는 공제제도…누진세 제도 사실상 무력화”

2012-02-25     김경탁 기자
[매일일보=변주리·김경탁 기자] 정부가 납세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각종 공제제도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공제도 많이 받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한 나머지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어렵게 받은 세금을 이렇게 쉽게 대폭 돌려준 결과, 종래에 11%로 알려져 있던 근로소득자 실효세율(급여총계대비 납부세금)은 공제재도를 감안하면 3.4%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모순은 결국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조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조세부담 원칙’의 취지와 의미를 퇴색시키는 효과는 물론 더 나아가 소득이 많을수록 더 많은 공제혜택을 받게 되는 ‘역누진세’ 효과로 이어진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21일 ‘각 공제제도의 계층별 세금감면액 조사 보고서’를 발표, 이러한 사실을 밝히면서 “각종 공제제도를 재정사업으로 전환해 ‘무상복지’ 재원에 보태자”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무상복지의 재원마련을 두고 정치권에서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종 공제제도를 재정사업으로 전환하자’는 이 대표의 주장이 한 방안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근로소득 최상위 0.8%와 하위 54% 공제혜택 최대 45배 차이 충격

“저소득층, 푼돈 주느니 차라리 재정사업으로 전환 복지 확충하자”

이정희 대표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근로소득자 중 상위계층 0.8%(근로소득금액 1억 초과)는 770만원을 감면받은 반면 하위계층 54%(근로소득금액 2천만원 이하)는 17만원 감면받아 무려 45배 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근로소득자의 실효세율은 일반적으로 약 11%라고 알려졌으나,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등의 감면 규모가 커 실제 총 급여 대비 납부세금은 3.4%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11%와 3.4%의 차액은 7.6%로, 결국 실질소득세의 2배가 넘는 금액이 공제제도를 통해 환급됐고, 이 소득세 확급분의 대부분이 고소득자들에게 되돌아갔다는 말은 결국 각종 공제제도가 고소득층에게 세율을 낮춰주는 혜택을 줬다는 뜻이다.

동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소득자들은 2009년 총 13.5조원의 세금감면 혜택을 받았으며, 하위계층 70%(근로소득금액 2천만원 이하)는 30만원, 상위계층 30%(근로소득 4천만원 초과)는 250만원의 감면 혜택을 받았다.

또 대부분 자영업자인 종합소득자는 2009년 총 4조원의 감면 혜택을 받았으며, 이 중 근로소득금액 1천만원 이하 계층(하위 52%)은 1인당 21만원을 감면받은 반면, 10억원을 초과한 계층(0.09%)은 1인당 1억3천만원을 감면받아 ‘조세의 역진성(소득액에 따라서 세부담액이 줄어드는 것)’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제제도 지나치게 복잡

이에 대해 이정희 대표는 “그동안 각 공제제도들은 각 공제제도의 혜택을 보는 이해집단과 정치논리를 통해 각종 공제제도들이 개정 또는 추가되어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조세감면제도는 어차피 세금납부액이 미미한 저소득층에게는 혜택이 거의 없다”며 “조세감면이 의도했던 목적을 다른 재정사업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역진적인 조세감면을 정비하고 재정사업으로 전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정희 대표에 따르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다자녀추가공제’의 경우, 저소득층은 1인당 1800원이 돌아가는 반면 고소득층엔 2만6000원이 지급돼 두 계층의 공제액 차이가 14배에 달한다.

이렇듯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다자녀추가공제’와 함께 ‘자녀양육비 추가공제’를 정비하면 아동수당(예산 소요액 2.5조원)의 약 30%에 이르는 76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정희 대표의 아이디어이다.

더욱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공제액 차이(24배)가 가장 많이 나는 ‘교육비 특별공제’의 경우, 이를 통해 감면되는 세금 1.4조원은 반값등록금(3.9조원)과 친환경무상급식(1.8조원)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금액의 25%에 달한다.

저소득층 1인당 불과 7500원이 돌아가는 ‘의료비 특별공제’ 역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구현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의료비특별공제제도(8200억원)와 보험료 특별공제(2.1조원) 중 일부를 정비하면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의 정부지원금 재원(3조원)의 약 절반 이상을 마련할 수 있다.

이정희 대표는 “이러한 재정사업을 통해 소득공제가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입법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면, 공제제도가 가진 역진성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목표 집단에 직접 혜택을 줌으로써 재정사업 혜택을 즉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 더욱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세금신설 만큼 어려운 공제폐지

최근 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리알 지갑’이어서 번대로 세금을 내는 근로소득자들에게 그나마 자신이 냈던 세금을 ‘13월의 월급’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던 최대 창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는 큰 파장을 낳았다.

대규모 서명운동이 벌어졌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이어진 끝에 결국 정부여당은 논란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올 연말로 시한이 종료되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연장하기로 합의했다”는 항복선언을 내놓았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기업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하여 기업의 설비투자금액 중 일부를 소득세 또는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지난해 연말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다가 결국 공제율을 낮추는 조건으로 다시 연장됐다.

이 두가지 사례는 기존에 적용되던 세액공제 항목을 줄이는 것이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들로, 이러한 문제를 결정하는 정치권이 결국 국민들의 즉자적인 반응에 대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벌이지는 무상복지 논쟁에서 핵심 이슈중 하나도 증세 없는 복지확대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에 대한 것이다. 복지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증세 없이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대해 보수와 진보 양쪽이 모두 비판을 보내고 있다.

이정희 대표가 이번에 발표한 보고서는 이러한 정치권의 ‘눈치보기’ 습성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통해 국가세수관리와 실질적 복지혜택 문제를 바라봤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 마땅한 정책 대안 제시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