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8일차] 썰매 불모지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되기까지
2019-02-16 박숙현 기자
[매일일보 박숙현 기자] 유럽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을 윤성빈이 차지하면서 한국을 넘어 아시아인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썰매 불모지였던 한국이었던 만큼 스켈레톤 ‘황제의 탄생’은 의미가 더욱 크다.한국은 썰매 종목에서 메달은커녕 올림픽 진출도 힘들었다. 윤성빈이 이날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역대 동계올림픽에서 1개의 메달도 획득하지 못했다. 지난해 평창에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가 완공되기 전까지 선수들은 아스팔트 위에서 훈련해야 했다.탁월한 운동 신경과 근성을 가진 윤성빈 역시 이런 환경에서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12년 6월 그가 다니던 서울 신림고 체육교사였던 김영태 서울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이사로부터 권유를 받고 스켈레톤에 입문했다. 타 종목을 하다 썰매 선수로 넘어온 체육특기생들 사이에서도 9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이후 윤성빈은 하루에 8끼씩 폭식하며 몸무게를 늘리고, 매일 팔굽혀펴기 1000개 이상과 240kg의 스쿼트 역기를 들며 강도 높은 근력 운동을 이어갔다.이후 첫 공식대회였던 2012년 11월 8일 북아메리카컵 1차 대회에서 그는 23위에 올랐고, 북아메리카컵 2차 대회에서는 25명 중 15위에 올랐다.2014년 1월 윤성빈은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륙간컵 6차 대회에서 한국 스켈레톤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까지 됐다. 이후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2014년 소치올림픽에선 27명 중 한국 역대 최고 성적인 16위를 기록했다.이후 2014년 영국 출신 리처드 브롬리 코치가 합류하면서 그의 실력이 눈에 띄게 상승했다. 썰매 제작사를 운영하는 브롬리 코치는 그의 썰매 날 장비를 담당하고 세계 각국의 트랙 정보를 공유했다.그 결과 2012~2013시즌 세계랭킹 70위였던 윤성빈은 2014년 시즌부터 톱5 안에 들었다.나중에 합류한 플로리안 린더는 윤성빈이 스타트 기록을 앞당기도록 도왔다. 이후 올림픽 시즌인 2017~2017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총 8개 월드컵 대회 가운데 월드컵 1~7차대회까지만 출전하고도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평창동계올림픽의 금빛 메달을 예고했다.강광배 한국체대 교수는 이날 그의 경기를 본 후 “스타트와 주행 능력 모두에서, 윤성빈은 1~4차 시기를 완벽하게 했다”며 “홈 트랙의 이점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윤성빈의 시대라고 말할 만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