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 황제' 윤성빈, 올림픽 사상 가장 큰 격차 金…안방서 대관식

"향후 10년 간 윤성빈 시대"

2018-02-18     박동준 기자

[매일일보 박동준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스켈레톤 황제’ 윤성빈의 대관식이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썰매 종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기념할 일이지만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압도적인 격차로 우승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윤성빈은 1~4차 시기 합계 3분20초55를 기록했다. 이는 2위인 OAR(러시아 선수 출신 올림픽 선수) 니키타 트레구보프의 3분22초18보다 무려 1초63이 빠르며 올림픽 사상 가장 큰 차이다.

스켈레톤은 평창올림픽을 포함해 역대 올림픽에서 7차례 열렸다. 1928년과 1948년 진행된 뒤 동계올림픽 공식종목에서 빠진 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부터 정식 편입돼 5개 대회 연속으로 열렸다.

윤성빈 이전까지 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종목에서 가장 큰 차이로 우승한 경기는 1948년 생모리츠 대회다. 니노 비비아(이탈리아)가 합계 5분23조2로 존 히튼(미국)의 5분24초6을 1초4 차이로 이겼다. 당시는 6차 시기까지 진행했으며 기록 측정 방식도 현재와 달리 정교하지 않아 단순 비교하기 힘들다.

2002년 이후 열린 올림픽은 챔피언과 은메달리스트의 기록이 한 번도 1초 이상 차이난 적이 없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트레티야코프(3분44초29)가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3분45초10)를 0.81초 차이로 이긴 것이 가장 컸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존 몽고메리(캐나다·3분29초73)와 두쿠르스(3분29초80)의 격차가 100분의 7초에 불과했다.

윤성빈은 불과 수 년 만에 해당 종목의 스타로 급부상했다. 지난 2012년 고교 3학년 시절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스켈레톤에 입문했다. 이전까지 엘리트 체육 종목을 접하지 않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키가 178cm에 불과하지만 농구 림을 두 손으로 잡는 등 탄력과 근육의 힘이 상당했다. 이는 배구 선수 출신의 아버지와 탁구 선수 출신의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운동신경 덕분이었다. 여기에 체계적인 훈련이 더해지면서 급성장했다.

윤성빈은 스켈레톤 입문 첫 해 스타트 챔피언 대회에서 깜짝 우승한 뒤 2014년에는 국제대회인 대륙간컵 6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후 소치올림픽에서 한국의 역대 최고 성적인 16위를 기록했다.

2014-2015시즌에 월드컵 무대에 출전한 윤성빈은 2014년 12월 첫 동메달, 이듬해 1월 첫 은메달을 따냈다. 모두 한국 스켈레톤 역사상 최초다. 2016년 2월에는 첫 월드컵 금메달을 따내면서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6-2017시즌부터는 마르틴스 두쿠르스와의 경쟁을 본격화 해 이번 시즌에 열린 7번의 월드컵에서는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를 따내 명실상부 1인자로 등극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4차 주행 중 무려 3번이나 트랙 신기록을 경신하면서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은 윤성빈 경기 직후 “향후 10년간 윤성빈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윤성빈은 지난 16일 스켈레톤 메달 시상식에서 “매일 밤 시상대에 오르는 생각을 했다. 꿈으로도 꾸고 싶었는데 꿈에는 잘 안 나왔다”며 “계속 생각하고 바라면 이뤄진다는 게 맞는 말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다. 정말 TV로만 보던 일들이 제가 주인공이 돼서 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