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영자 부사장 ‘전성시대 막 내렸나’

한때 롯데쇼핑 ‘실세’...그룹 내서 ‘쉬쉬’하는 이유는

2007-05-03     권민경 기자

13살 아래 동생 신동빈 부회장에 밀려 ‘퇴장’ 분위기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라이벌 더 이상 통하지 않아
분가 실탄 마련 위한 가족회사...롯데 부당지원 의혹

[142호 경제]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 아끼는 큰딸이자, 롯데쇼핑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공신,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더불어 국내 대표적인 여성 경영인. 바로 롯데쇼핑 신영자 부사장을 평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재계 일각에서는 신 부사장을 설명하는 또 다른 얘기들이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후계구도에서는 멀어졌고, 동생 신동빈 롯데 부회장과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에 밀려 그룹 내 입지가 좁아졌으며, 유통업계 라이벌 이명희 회장과 비교했을 때 한 수 아래라는 말들이 그것. 최근 들어서는 이런 얘기들조차도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해 롯데쇼핑 상장을 통해 신동빈 부회장의 후계구도가 굳어졌고, 신 부사장은 롯데쇼핑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레 신 부사장에 대한 재계의 시각 역시 그룹에서의 ‘퇴장’, ‘분가’ 등에 맞춰져 버렸다. 이처럼 한때 ‘롯데쇼핑’의 실세로 불리던 신 부사장이 그룹 내 설자리를 잃어가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그가 은근하게 주머니를 불려왔던 회사에 대해 최근 한 시민단체가 ‘부당지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신 부사장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롯데그룹 홍보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신 부사장에 대한 언급은 그룹 내에서 유달리 ‘쉬쉬’하는 부분이다. 해당사업 부서, 그룹 홍보실, 비서실 등 어느 곳을 통해도 신 부사장의 행보에 대해서는 좋은 일이건 그렇지 않은 경우건 정확한 설명을 듣기란 쉽지가 않다. 오너 일가이자 대외적으로도 롯데쇼핑 총괄부사장이란 엄연한 직책을 가지고 있음에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 롯데의 가풍이 유달리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신 부사장처럼 사적인 영역이 아닌 경영과 관련한 부분마저 은둔을 고수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 그 이유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 더욱이 이 은둔의 강도가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심해졌다는 것도 재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점. 한 재계 관계자는 “신 부사장에 관해서는 원래부터 노출된 부분이 많지 않았지만, 롯데그룹의 후계구도가 안착되면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의 애뜻한 딸, 롯데쇼핑 키워낸 주역으로

신 부사장은 부친 신 회장이 지난 1940년 동향 출신인 노순화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당시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청년이었던 신 회장은 ‘박봉의 삶’이 싫어 결혼한 지 1년만인 이듬해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고 노씨와의 결혼생활은 1년 남짓 만에 끝났다. 노씨는 신 회장을 끝내 다시 보지 못하고 51년 29살의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으로 건너간 신 회장은 온갖 고생 끝에 1946년 도쿄 인근에서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을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신 회장은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던 기계를 이용해 껌을 만들었고 껌 사업의 성공과 함께 오늘 날 그룹의 전신이 된 작은 주식회사 롯데를 탄생시켰다. 점차 사업을 번성시켜가던 신 회장은 52년 당시 일본 외무부 대신의 여동생인 다케모리 하츠코 여사(결혼 후 신 회장 성을 따 시게마쓰로 바꿈)와 재혼 해 신동주, 동빈 형제를 낳았다. 그 사이 신 부사장은 일본에 있는 배다른 두 남동생과는 달리 한국에서 홀로 학창시절을 보내며 외로운 사춘기를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신 회장은 딸 신 부사장에 대해 애틋하고 애잔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롯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한 신 부사장은 신 회장이 금의환향해 한국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친 67년 대구의 재벌이던 선학알미늄 장오식 전 사장과 결혼해 1남 3녀를 낳았다. 결혼 후 선학알미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 부사장은 73년 초까지 이사로 재직하다 그 해 5월 롯데호텔 이사로 옮겨오며 비로소 롯데그룹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79년 11월 장 전 사장과 이혼한 뒤 롯데쇼핑으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패션과 의류사업에 손을 대고 롯데쇼핑을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워내는데 큰 공을 세웠다. 97년부터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에 올라 롯데백화점을 국내 유통업계 백화점 부문 부동의 1위 자리에 앉히는 데 기여하는 등 롯데쇼핑의 ‘실세’로 군림해왔다. 이와 함께 고교, 대학 동창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유통업계의 강력한 라이벌을 형성하며 국내 대표적인 여성 경영인으로 분류돼왔다. 

‘일등공신’ 과거지사...그룹 ‘퇴장’ 굳어지나

롯데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신 부사장이 롯데쇼핑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공신 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롯데쇼핑을 키워냈던 ‘과거’에 국한된 얘기.  한국 롯데를 이끌 후계자로 신 부회장이 부상하고, 재계에서도 그가 신 회장의 자리를 물려받을 사람으로 기정사실화되면서 신 부사장의 화려했던(?) ‘업적’에 대한 소리는 줄어갔다. 13살 아래의 동생 신 부회장 보다 먼저 롯데에 발을 들여놓고, 사업을 키워왔지만 신 부회장이 빠른 속도로 그룹 내 입지를 키워가고 부회장직에 오른 것과 달리 신 부사장은 97년 총괄부사장직에 오른 이후 10년 넘게 직함 역시 변함이 없다는 점 또한 그의 입지가 예전같이 않다는 점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되자 이명희 회장과의 라이벌전 역시 재계에선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 얘기가 돼버렸다. 삼성에서 분가해 오늘날 신세계라는 거대 유통기업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 회장과 견주어 봤을 때 지금 신 부사장의 위치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것.  대신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신 부사장의 ‘분가’, ‘퇴장’이라는 분석들이었고, 심지어 재계 일각에서는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간 갈등설’까지 흘러나오기도 했다.물론 롯데 측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일축해 버렸지만, 그렇다고 이런 추측을 잠재울 어떤 적극적인 해명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추측은 기정사실화 돼버렸다.   

분가 작업 순탄치 않아, 시민단체 부당 의혹

사실 재계에서 이처럼 신 부사장의 분가 쪽에 무게를 싣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신 부사장이 자식들과 함께 또 다른 개인회사를 일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신 부사장 가족 측은 롯데 비상장 계열사로 알려진 일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유니엘과 비엔에프 통상, 시네마 통상이 그것. 유니엘은 롯데백화점, 마트 등의 전단지 제작과 각총 판촉물, 광고물 등을 만들어 내고 있는 회사로, 신 부사장의 장남인 장재영씨가 최대주주이자 등기이사로 전체 지분의 89.3%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친인척인 장지황씨 등이 갖고 있다. 해외명품 의류 및 화장품을 수입하는 비엔에프통상은 베네통, 랑방, 엘리자베스 아덴 등 해외명품 의류 및 화장품을 비롯 프레쉬, 캠퍼, 스위스 라인 등 수십종의 해외 의류 브랜드를 수입하며 롯데백화점에 매장까지 갖고 있는 중견수입업체로 알려졌다. 이 회사 또한 장씨가 99.6%의 지분으로 최대주주이고 신 부사장의 세 딸인 장혜선, 선윤, 정안씨가 모두 이사와 감사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 가족회사나 다름없다.그런가하면 롯데쇼핑 시네마사업본부 산하의 계열법인인 시네마 통상 또한 신 부사장의 또 다른 가족회사. 신 부사장의 지분이 28.3%에 달하고 그의 세 딸 역시 6%∼8%가량의 지분을 보유해 대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시네마통상의 주요 업무는 롯데시네마 매점 관리와 인력 관리다. 롯데가 적극적으로 영화 사업의 덩치를 키우고 있어 롯데시네마의 영화관 수 또한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에 시네마 통상의 매출 역시 안정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 부사장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이들 회사를 다 모으면 연 매출 800~900억 원대의 중견 사업군이 형성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신 부사장과 자녀들은 알짜배기 독립 회사들을 통해서 ‘분가’에 대비, 보이지 않는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롯데시네마 매점사업 신 부사장 개인주머니?

이런 가운데 최근 ‘시네마통상’을 둘러싸고 시민단체의 물량몰아주기 의혹이 제기돼 이 회사를 통한 신 부사장의 개인 주머니 불리기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18일 경제개혁연대는 시네마 통상이 롯데 측의 부당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롯데쇼핑이 수익률이 높고 주로 현금으로 거래되는 롯데시네마 내의 매점사업을 시네마통상과 유원실업에 임대(위탁)함으로써 물량몰아주기 또는 부동산 저가임대 등을 통한 부당지원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롯데시네마의 경쟁업체인 CGV나 메가박스 등은 매점 사업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과 달리, 총수 일가 또는 그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인사들이 지분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 매점 사업을 임대하고 있는 롯데의 경우는 물량 몰아주기에 의한 부당지원 또는 회사기회의 유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연대는 지적했다.한편 롯데시네마의 서울, 수도권 매점 운영권을 갖고 있는 유원실업은 신격호 회장과 사실혼 관계이자 신 회장과 사이에 두 딸이 있다는 서미경씨가 실질적인 대주주로 알려져 있다. 대표이사는 롯데전자 출신인 박성운씨로 돼 있으나 실질적 소유주는 서씨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서씨는 친인척으로 추정되는 서진적씨와 함께 유원실업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고 알려졌다.    경제개혁연대는 “유원실업이 공정거래법상 롯데그룹의 계열사에 해당하는지 여부 또한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