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 ‘통기타’를 부활시키다

낙원상가 상인 “가게 열고 35년 만에 이런 호황은 처음”

2011-03-18     변주리 기자

[매일일보=변주리 기자] 대한민국이 ‘통기타’ 열풍에 휩싸였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아이돌 가수들에 의해 점령된 것 같았던 대한민국의 음악문화가 삽시간에 완전히 180도 뒤집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통기타에 대한 관심이 이렇듯 높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은 통기타가 ‘감동’을 이끌어내는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60~80년대 음악인들은 통기타 하나로 트렌드와 상관없이 자기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불러 수많은 명곡들을 남겼지만, 90년대 이후부터 하나의 트렌드가 유행을 하면 대형 기획사에 의해 비슷한 음악을 쏟아져 나오면서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례없는 ‘통기타’ 열풍의 원인이 무엇인지 <매일일보>이 추적해봤다.

‘우결’ 정용화-서현 커플의 기타 개인교습이 불씨 만들고
‘세시봉’ 재발견에 대폭발, 우후죽순 오디션프로가 부채질

서울 종로2가에 위치한 종합 악기판매상가 ‘낙원상가’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낙원상가가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통기타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통기타 판매전문점으로 35년 동안 낙원상가를 지켜온 ‘아리아 뮤직’의 김진현(35)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통기타를 보러 오는 것은 35년 이래 거의 처음”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는 2~3월 기타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0% 가량 증가했다. 옥션의 악기 담당 양종수 차장은 “기타 배우기 열풍이 뜨거워지면서 초보자들에게 적당한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박제민(37)씨가 운영하는 ‘독학으로 통기타 배우기’ 동호회는 작년 9월에 개설해 12월까지 회원수가 7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 회원이 급격하게 증가, 현재 35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의 힘

낙원상가에서는 통기타 ‘붐’의 발단을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결혼했어요>에서 지난해 초 밴드 씨엔블루의 보컬 정용화와 걸그룹 소녀시대의 서현이 새로운 가상부부로 투입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난 첫날 정용화가 서현과의 사이에서 어색함을 덜기 위해 통기타를 가르쳐주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통기타 ‘붐’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온·오프라인에서 통기타를 판매하는 ‘통기타 이야기’의 윤현민(34)씨는 “방송이 나간 다음 주 월요일에 문의전화가 폭주했고 그 후 한 달 간 포탈사이트에서 ‘통기타’ 키워드의 검색 건수는 2배가 됐다”고 밝혔다.

윤씨에 의하면 이후 통기타 판매율이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지난해 10월 케이블 채널에서 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로 또 한 번 통기타 ‘붐’이 일어났다. 오디션에 참가했던 가수 지망생 장재인이 통기타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 영상의 비주얼과 스타일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가수 윤종신은 “비주류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대중들의 취향을 바꾸었다는 증거”라며 그를 극찬했고, 트위터를 통해서는 “너 때문에 통기타도 더 팔리고, 배우는 사람도 늘거야”라며 통기타의 ‘붐’을 점치기도 했다.

이어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인 MBC <위대한 탄생>에서 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방송을 탔고,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드림하이>의 주인공 아이유가 작고 귀여운 핑크빛 통기타를 연주한 것도 통기타 ‘붐’에 보탬이 됐다.

통기타,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 가운데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금의 ‘통기타붐’에 최대 동력이라고 지목한 것은 ‘세시봉’의 재발견이다.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날 MBC 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서 <세시봉 콘서트>가 특집으로 방송되면서 화제를 모은 것이다.

프랑스 이브 몽탕의 노래 ‘세시봉(C'est si bon)’에서 유래된 것으로, 프랑스어로 매우 좋다, 멋지다는 의미를 가진 ‘세시봉’은 1960-70년대 서울 무교동에 있었던 음악감상실로, 당시 통기타 가수들에게 ‘선망의 무대’였다.

60~80년대 통기타 문화를 주름잡던 김민기, 양희은, 조영남, 이장희, 송창식, 윤형주, 김도향, 서유석, 김세환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으며, 이들은 ‘세시봉’이 폐업한 이후에도 여전히 정기적으로 만나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추석특집 방송이 나간 후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자 지난해 12월21일 서울에서 ‘세시봉 친구들 콘서트’를 가졌고, 이후 각지에서 공연요청이 쇄도하면서 전국 순회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세시봉’ 열풍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들이 50~60대의 추억은 물론이고 20~30대의 감성까지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세시봉’ 주역들이 최근 20~30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통기타는 이제 더 이상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옥션의 홍보 대행사 오리온컴 최정은 과장은 “최근 기타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20~30대 남성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부터 젊은 여성, 초등학생까지 폭넓어졌다”며 “특히 옥션에서는 기타 구매자 중 여성 비중이 35%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파크 홍보팀 이남훈 대리 역시 “통기타를 구매하는 주요 구매객들은 30대 직장인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낙원상가가 이전과 다르게 최근 평일에 붐비는 이유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통기타를 구매하려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아리아 뮤직’의 김진현씨는 설명했다.

통기타 열풍은 군부대에서도 불고 있다. 16일 낙원상가 통기타전문매장에서 만난 박희성(23)씨는 전역을 10일 앞둔 군인이었다. 그는 “갓 입대한 후임들이 통기타를 치는 것을 보고 매력을 느꼈다”에 “전역 후 취미생활로 통기타를 배워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통기타 열정, 식지 않으려면…

통기타가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대해 ‘통기타이야기’ 윤현민씨는 “1960~80년대 당시 20~30대였던 통기타 문화의 주역들이 지금은 50~60대가 됐다. 이들의 자녀들인 10~20대가 최근 다시 통기타에 관심을 보이면서 온 가족이 통기타를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씨는 “댄스와 발라드 등 최근 음악 트랜드에는 감동적인 부분이 없지만, 과거 통기타 세대의 명곡들을 따라 부르다 보면 서정적 분위기에 심취하곤 한다”며 “20~30대가 이러한 매력을 재발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통기타의 또 다른 매력은 누구나 배울 수 있고 어디서나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점이 쉽게 흥미를 잃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아리아 뮤직’의 김진현씨는 “악기는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지금의 열정이 식어 쉽게 식어버리면 안된다”고 조언했다. 윤현민씨도 “기타를 치려면 연습 계획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며 “학원, 문화센터, 동호회 등을 이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