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대화’…상대는?
[현장] 故김주현씨 어머니의 절규 “내 아들 살려내라!”
[매일일보=송병승기자] 자식은 부모를 잃으면 흙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가슴에 묻고 평생을 기억한다. 여기 한 어머니가 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그녀는 지난 1월 삼성전자 탕정 LCD 공장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故김주현씨의 어머니다.거대한 자본 삼성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사과를 바라는 그녀의 1인시위 현장에 22일 <매일일보>이 함께 했다.
부모의 정식 응접 요청도 거절한 삼성…“대화로 풀겠다”
1인 시위 가족 동선 미리 파악한 듯한 대응 비결도 의문
김주현이 세상을 뜬지도 벌써 70여일. 하지만 아직 그 시신은 장례식장에 있다. 부모는 삼성전자가 주현의 자살을 방조했다며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거대한 자본 삼성전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내 아들 장례식 좀 치르자”
매일 점심시간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는 1인 시위가 벌어진다. 점심을 먹으려고 밖으로 나온 삼성 직원들에게 故김주현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고된 노동과 삼성의 관리소홀로 인한 과실치사였다는 것을 알리고 관련자들의 공개사과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김주현의 어머니와 누나, 이모가 참가하는 1인 시위는 2월 중순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한 달째를 훌쩍 넘겼다.
“내 아들은 25년 밖에 못 살았어. 삼성전자는 책임을 져라”
“내 아들 장례식 좀 치르자”
“내 아들 과실치사로 죽여 놓고 장례식도 못 치르게 하고 삼성전자는 책임을 져라”
김주현의 어머니가 외치는 목소리에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한이 서려 있다. 그 목소리가 높은 건물들 사이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한 달 내내 목소리를 내질렀으면 지칠 만도 하련만 자식 잃은 부모의 비통한 심정은 힘듦을 이겨낸다.
누나가 외치는 목소리도 어머니의 절규와 다르지 않다. 다 쉬어버린 목소리지만 동생의 죽음에 대한 삼성의 책임을 묻는 비장함이 담겨 있다.
점심시간 쏟아져 나오는 다수의 삼성직원들은 일인 시위가 진행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부분 관심 없는 듯한 모습으로 지나쳤지만 삼성이 아닌 인근 건물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는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일인시위 팻말을 유심히 보며 관심을 가졌다.
삼성에 납품 대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는 한 중소기업 업체 관계자도 “죽은지 70일 이상이나 됐는데 합의도 안 해준다니, 쯧쯧쯧 삼성이 저런다니까”라며 혀를 찼다.
“남은 세 가족까지 죽이려”
<매일일보>은 1인 시위가 끝나고 김주현의 어머니, 누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주현이 떠나고 남은 세 가족은 현재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지내는 상태다. 이날 삼성본관 앞에 함께 하지 않은 아버지는 어머니와 누나가 서울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같은 시각, 천안에 있는 삼성 LCD 탕정공장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는 지난 3월6일 삼성 본관으로 들어가려다가 보안직원들과 사이에 벌어진 충돌로 인해 전치 4주 이상의 입원을 필요로 하는 부상을 입었지만 계속해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주현의 어머니는 “현재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삼성의 대처는 남은 세 가족까지 다 죽이려는 것”이라며 “삼성의 사과가 있을 때 까지 더욱 강력히 1인 시위를 계속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는 또한 “누가 아들을 잃은 것을 돈으로 환산 할 수 있겠냐”며 “돈이 먼저가 아니다.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의 사과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현의 어머니와 누나는 지난 17일 삼성 본관에 정식으로 응접 신청을 하고 책임자를 만나려 했다. 프런트 직원은 “홍보실 직원을 연결해 주겠다. 기다리라”했지만 이후 삼성 에스원 직원이 찾아와 어머니와 누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삼성은 이처럼 정식적인 대화 요청조차 거부 하고 있다.
뛰어야 삼성 손바닥?
이날 1인 시위 현장에서는 약간 이상한 점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오전 12시 05분 경 삼성 본관 앞에 바리케이트가 펼쳐졌다.
지난 3월 6일 주현의 어머니와 누나가 삼성 본관에 들어가 항의를 하고 난 후부터 바리케이트를 치기 시작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바리케이트가 쳐진 것이다.
이후 약 10여분이 흐르자 주현의 어머니와 누나가 정문 앞에 나타났다. 삼성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시간에 맞춰 바리케이트를 친 것이다.
이후 그 고참 사원에게 같은 질문을 다시 하자 “여기 있는 사람들 괴롭히지 말라”며 “기사 찾아보니 어차피 우리가 나쁜 쪽으로 다 썼다. 알아서 쓰시라”는 대답이 돌아 왔다.
이와 관련해 삼성 홍보실 측에 어떻게 도착 시간을 알아서 미리 바리케이트를 칠 수 있었는지 묻자 “전혀 모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故김주현 씨와 관련한 1인 시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 방침이냐는 질문에는 “대화로 풀겠다”며, “현재 천안 탕정 쪽에서 협의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부모의 정식 응접 요청조차 거부했지만 이번 일을 “대화하려 하고 있다”는 삼성의 대화 상대가 과연 누구인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