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고인 윗물’은 놔두고, 아랫물만 변화 외쳐

오너일가 스캔들 터뜨려도 구조조정 제외대상?

2007-05-24     권민경 기자

적자사업매각, 인력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 단행 
일각 “겉으론 투명경영, 실제는 오너 지배력 강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이고 있는 두산그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적자사업부를 매각하는 한편 인력 배치를 재조정하는 등 다각도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결과 핵심계열사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두산의 주가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두산이 아래로 과감한 변화를 꾀하는 것과 달리, 그룹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오너 일가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로 두산은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박용성 전 회장을 비롯해 박용만 부회장 등을 대부분 경영에 복귀시켰고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을 두산건설 사장으로 선임했다.

또 오너 4세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박용곤 명예회장 장남)은 두산 등기임원이 됐고,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박용성 회장 아들)도 두산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며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서고 있는 상황.

심지어 박용곤, 박용성 회장 등의 손자, 손녀인 10대의 오너일가 5세들까지 계열사 지분을 사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형제의 난 이전의 경영체제로 복귀한 두산 측이 ‘투명경영’, ‘전문경영’을 외치는 것과 달리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5년 11월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오너 일가의 분식회계, 비자금 사건 등이 터져 박용성 전 회장 등이 징역형을 선고 받자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의 투명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도 오너 일가의 비리로 얼룩진 두산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두산은 전문경영인체제를 공표하고 경영진 재편에 나섰다. 두산은 지난해 11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제임스 비모스키씨를 (주) 두산의 부회장으로 영입했고, 정지택 두산건설 사장, 이남두 두산중공업 사장, 김용성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등 실력 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경영 전면에 내세웠다. 이밖에도 최근 들어서는 각 사업부문장들과 재무, 마케팅 등의 핵심 부서에 외부의 쟁쟁한 인재들을 임원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또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를 100% 사외이사로 구성,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 체제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재판이 진행 중인 두산 가 오너들은 대외적으로는 그룹 회장, 부회장 직에서 물러나, 투명경영을 위한 두산의 행보는 일단 성공을 거둔 듯 보였다.  그런가하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걸음에도 박차를 가했다. 10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最古)기업인 두산은 그동안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건설→(주)두산.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엔진→(주)두산. (주)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주)두산 등 (주)두산을 중심으로 3개의 순환출자를 이루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여타의 재벌총수들과 마찬가지로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산은 내년 말까지 지주사 전환을 목표로 하고 (주)두산과 두산중공업, 두산산업개발, 두산인프라코어를 중심으로 계열사 재편에 나섰다. 먼저 두산엔진과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두산의 보통주 50만주(2.1%)와 150만주(6.3%)를 박정원 부회장을 포함한 대주주에게 매각함에 따라 순환출자구조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로써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과 ‘㈜두산→두산중공업→두산엔진→㈜두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것. 앞서 두산 대주주들은 두산건설이 보유했던 ㈜두산 보통주 전량(171만주, 7.2%)을 매입, 또 하나의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한 바 있다.두산은 또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부실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2월 식품BG(사업부)에서 사료를 제외한 전체 사업(종가집 김치, 두부, 고추장 등)을 대상그룹에 매각했다. 외식사업 부문에서도 버거킹과 KFC를 SRS코리아라는 법인으로 독립시켰으며, 유리병, 페트병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두산 테크팩의 주방용품사업 부문을 정리했다.이러한 노력으로 2005년 300%대였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200%까지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두산은 이를 200% 미만으로 낮추고 지주사 형태를 결정하는 등 지주사 전환을 위한 나머지 절차를 진행시켜 나갈 계획이다.한편, 두산은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적자 사업부의 매각과 함께 인력구조조정 역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출판, 주류 등의 인력 감축을 비롯해 최근 그룹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던 R&D 센터의 기능을 각 사업부로 넘기면서 인력 배치 역시 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명경영, 지배구조 개선 일단은 합격점?

투명경영,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두산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인수·합병. 전통적 소비재그룹이었던 두산은 외환위기 이후 철저한 구조조정을 통해 중공업그룹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2000년 이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고려산업개발(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인수해 그룹의 색깔을 바꾸고, 세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선 것이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보일러 원천기술업체인 영국 소재 두산밥콕(구 미쓰이밥콕), 루마니아 소재 철강 주·단조 회사인 두산IMGB를 차례로 인수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역시 올 초 중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기업인수에 성공하며 글로벌 M&A를 본격화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휠로더 생산업체인 연대유화기계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친환경 엔진 원천기술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CTI사를 인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두산의 구조조정이 그룹 전반에 걸쳐 다각도로 전개되면서 주식시장에서는 연일 두산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특히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지주회사 전환 준비 등이 부각되며 10만원권을 넘어선 상황. 전문가들은 “향후 두산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 등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 개선이 본격화되면서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판단, 목표주가를 올려 잡고 있다.

아랫물은 구조조정...윗물은 변함 없네~

그러나 재계에서는 두산이 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통해 실적이 개선되고 주가가 상승세를 지속하는 것과 달리 그룹의 정점에서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경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형제의 난’의 주역이었던 오너 일가가 대부분 경영에 복귀하며 이들의 구조조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실제로 지난 3월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은 각각 두산중공업 이사회 의장으로, 두산중공업과 (주)두산 사내이사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그동안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오너 3세인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도 두산건설 대표이사로 선임돼 박용오 전 회장을 제외한 두산 오너 3세들이 주요 계열사 경영 전면에 재등장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오너 일가의 경영 복귀를 두고 ‘쓴소리’가 강하게 터져 나왔다. 애초부터 일시적인 퇴장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난 2월 특별사면으로 형 집행이 정지된지 불과 1달여 만에 그룹에 복귀하면서, ‘형제의 난’ 이전체제로 완벽히 돌아간 것은 너무 성급한 모양새라는 얘기.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불법행위로 시장과 주주들에 대한 신뢰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서 제왕적 총수의 모습으로 경영에 복귀하는 것은 책임경영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시장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어 “‘책임을 통감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박용성 전 회장의 언급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었나”라고 꼬집기도 했다.더욱이 오너 3세들의 복귀와 맞물려, 4세들의 경영행보 역시 빨라져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전보다 강화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됐다. 실제로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은 지난 지난달 두산산업개발 등기임원으로 선임돼 두산 오너 4세 경영의 막을 올렸다.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역시 (주)두산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가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박 전 회장의 차남도 두산중공업 부장으로 근무하며 후계를 준비하고 있다. 그룹 내에서 ‘실세’로 떠오른 박용만 부회장의 장남 또한 미국 유학을 마치는대로 경영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결국 도덕적 물의를 일으켰던 오너 3세들이 또 다시 그룹의 정점에 올라서고, 이들의 자녀들이 후계구도를 본격화하면서 두산 오너 일가의 지배력만 한층 강화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두산 측에서는 오너 일가의 경영복귀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뿐이다. 지난 3월 주총을 통해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당시 두산 관계자는 “박 회장 등이 복귀한 것은 꼭 경영 전면에 나선다기 보다는 대주주로서의 책임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일단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총수들의 의중을 일일이 알 수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박 전 회장이 경영 쪽에서도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앞서 ‘형제의 난’으로 두산 오너 3세들이 비난 여론에 휘말렸을 당시에도 “‘형제간 다툼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당사자들(박용성, 박용만 등) 아니겠느냐”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