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IT회사 통한 ‘편법상속’ 심각하다 심각해!
IT회사 총수일가 평균 지분율 38%…2000년 이후 설립 회사는 86%
예전에 비해 상속을 통한 기업집단 전체의 경영권 승계가 점점 더 난관에 봉착하면서 총수일가, 특히 2세 혹은 3세들이 IT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 지배주주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를 근원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2일 경제개혁연대가 2007년 4월을 기준으로 상호출자제한 대규모기업집단 62곳의 IT소유구조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43개 기업 중 28개 기업집단의 IT회사 수는 총 30개로 IT(정보기술)회사에 대한 총수일가(지배주주 및 가족들)의 평균 지분율은 37.97%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기업집단 총수일가 평균 지분율 5.04%에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치다.
왜 재벌총수일가들은 IT 회사를 선호할까?
◇ IT회사와 계열회사와의 거래로 안정적 매출 = 경제개혁연대가 경제개혁리포트를 통해 IT회사를 통한 재벌 총수일가의 지원성 거래현황을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43개 기업집단(재벌) 중 IT회사가 계열회사로 있는 그룹은 28개(65.12%)로 집계됐다. 삼성그룹의 삼성SDS, 현대자동차그룹의 오토에버시스템즈, SK그룹의 SKC&C 등이 대표적이다. 지배주주가 존재하지 않는 19개 기업집단 중에는 한전의 한전 KDN, 포스코그룹의 포스데이타 등 4개 그룹(21.05%)만 IT계열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28개 기업집단의 IT회사 수는 총 30개인데, 이들 중 거래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25개사의 경우 관계자 매출의 64.97%(5년간 평균 기준)에 달했다. 특히 롯데그룹의 롯데정보통신, 현대자동차그룹의 오토에버시스템즈, 한진그룹의 싸이버로지텍 등 3개사는 관계사매출이 90% 이상이었고 CJ그룹의 CJ정보통신 등 5개 업체는 그 비중이 80%에 이르렀다.이처럼 적은 자본으로 회사 설립이 가능하고, 계열사의 계속 거래를 통해 안정적인 이윤 창출이 가능하면서도 이에 따른 법률적 사회적 위험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재벌총수일가들은 IT회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IT회사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이용해 주력계열사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자금줄(Cash Cow)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한 이유다.◇ 총수일가, 2세 혹은 3세의 합법적 경영권 승계 가능 =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연구팀장은 “예전에 비해 상속을 통한 기업집단 전체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때문에 2세 혹은 3세들이 상당한 지배 지분을 확보한 후 이를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이용해 여타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SK그룹의 SKC&C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난 4월11일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한 SK(주)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직접 지분율은 1%도 안되지만 SKC&C의 지분은 44.5%를 갖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 94년 지분을 인수할 당시 가격은 주당 400원. 그러나 그룹 내 IT서비스 업체인 SKC&C에게 IT서비스와 관련된 업무를 몰아준 덕택에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1조1천억원을 육박했다.한화S&C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아들 3명이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장남 동관씨가 지분 66.6%를, 나머지 지분은 차남과 3남인 동원, 동선씨가 소유하고 있다. GS그룹의 아이티멕스에스와이아이의 경우 3세들 18명이 93.34%를 갖고 있다. 또 대성그룹의 가하티에스의 경우 김영대 회장의 장남 김정한 전무 등 3명의 자식들이 69%를 갖고 있다. IT회사가 지배주주 일가의 사익 추구 행위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설립된 회사일수록 지배주주들의 지분율 높아 = 특히 이번 조사에선 최근에 설립된 회사일수록 지배주주들의 지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돼 주목된다.
1990년대에 설립된 회사들의 경우 지배주주 및 가족들의 지분율이 30% 정도였으나, 2001년 이후 설립된 회사의 경우 지배주주들의 지분율이 86%에 달했다.2001년 이후 설립된 IT회사는 대성 가하티에스, GS 아이티멕스에스와이아이, 대성 나우필, 현대 현대유엔아이, 한화 한화S&C 등인데 2001년 4월1일 설립된 한화S&C는 설립 당시 김승연 회장이 33%, 한화가 67%를 갖고 있었으나 현재 가족의 지분율은 100%다. 가족의 지분율이 100%를 차지하는 곳은 태광시스템즈(태광산업)도 마찬가지다.재벌들은 이처럼 IT업체에 대해 오너 일가의 지분 비율이 높고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가 많은 것과 관련, IT업체가 그룹 전체의 정보시스템관리(SM)를 총괄하는 등 ‘SI(시스템통합) 업체의 속성과 관련이 깊다’고 항변한다. 쉽게 말해 ‘남에게 그룹 정보를 내다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들은 ‘매출에서 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 또한 사업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반박한다.그러나 회사 지분이 아니라 재벌총수일가가 IT회사의 지분을 월등히 높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 설립된 회사일수록 지배주주들이 독점적으로 지분을 보유하면서, 지배주주의 자금 확보 내지 상속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해결책은 없나 = 최근 공정위는 상품ㆍ용역거래에 의한 몰아주기 관행을 규율하기 위해 총수 및 친족의 지분율이 50% 이상인 회사 및 그 회사의 자회사인 경우에 대해서만 대규모 내부거래의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보고서를 통해 분석한 IT회사만을 일단 대상으로 할 경우, 총 30개의 IT회사 가운데 공정위 입법예고안에 따른 거래상대방 회사에 해당돼 이사회 의결 및 공시 의무가 부과되는 회사는 고작 11개(36.67%)에 불과하게 된다.하지만 동일인ㆍ친족 지분이 30% 이상인 회사와 그 회사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늘릴 경우, 공정위 입법예고안에 비해 10개사가 추가돼 총 30개 IT회사 중 21개(70%)사가 규율대상에 포괄되는 등 규율효과가 대폭 제고된다는 주장이 경제개혁연대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최한수 팀장은 IT회사들에 대한 지원성 거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상품ㆍ용역거래에 의한 물량 몰아주기를 규율하기 위해선 공정거래법 시행령상의 거래상대방 회사의 지분율 조건과 거래규모 요건을 대폭 낮춰 그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최 팀장은 또 “자기거래 규제 강화 및 회사기회 유용 금지 등의 실체법적인 내용과 비상장회사 이사에 대한 이중대표소송의 인정 등 절차법적인 제도 개선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조속히 입법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