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원로 총수들 어떻게 지내나
롯데 신격호, 동아 강신호 ‘대권’ 유지하며 왕성한 활동...
2008-05-25 권민경 기자
구자경 명예회장 ‘전통된장’ 연구로 제2의 인생 즐겨
김준성 명예회장 소설, 경제서적 등 집필 활동 매진
[136호 경제] 국내 재벌그룹의 총수들이 30~40대의 젊은 후계자들에게 빠르게 대권을 승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있다. 한 평생 기업을 책임지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세월을 보내고 현업에서 물러난 지금 이들 원로총수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직함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경영권을 유지하는 회장이 있는가하면 ‘명예회장’이라는 타이틀만을 가질 뿐 경영에서는 완전히 손을 뗀 경우도 적지 않다. 롯데 신격호 회장,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등은 아직도 일선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반면,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 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 등은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롯데 신격호 회장, ‘대권’ 유지, 활발한 경영
국내 재계에서 최고령급 CEO인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은 여든 여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대부분 넘긴 상태지만 아직 롯데의 대권은 신 회장이 쥐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은 홀수 달엔 한국, 짝수 달엔 일본을 오가는 ‘셔틀경영’으로 유명한데, 한국에서는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에 집무실을 마련하고 그룹 경영 전반에 관한 내용을 보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아직까지 그룹 중요사항에 대한 최고결정권자는 신 회장”이라면서 “계열사 사장단 인사 등에 관한 부분도 신 회장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최근 신 회장은 ‘셔틀경영’의 법칙을 깨고 장기간 한국을 찾지 않는 일이 잦아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연말 약 5개월간 일본, 중국 등지에 머물며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고, 올해 들어서도 홀수 달에 한국을 찾지 않아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각에서는 ‘와병설’까지 나돌기도 했지만, 신 회장의 건강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한국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맞물려 신 부회장이 그룹 내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신 회장이 아들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그룹 대권을 완전히 넘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사회공헌 활동 매진할 터
한편 신 회장과 더불어 재계의 대표적인 고령CEO인 동아제약 강신호(81) 회장 역시 다방면(?)으로 왕성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올해 2월까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하며 재계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는가 하면 동아제약 내에서도 여전히 총수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물론 전경련 회장 연임 의지로 인해 한때 도마 위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아들과의 경영권 분쟁, 황혼이혼 등의 ‘집안문제’로 인해 재계의 ‘어른’답지 못하다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그러나 지난 3월 동아제약 주총에서 대표이사직을 사임, 경영권 분쟁을 일단락지은 강 회장은 최근 봉사활동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강 회장은 지난 5월 동대문구 전농동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 급식소에서 동아제약 임직원들과 함께 노숙인 등에게 밥과 반찬을 배식하는 봉사 활동에 참가했다.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강 회장은 앞으로 회사의 장기 비전 수립과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할 뜻을 밝혔다.한편 골프 매니아로 알려져 있는 강 회장은 여전히 골프장을 자주 찾으며 건강을 유지하는 가하면, 지난해에는 전경련에서 발행하는 ‘월간 전경련’에 골프칼럼을 싣기도 했다.
LG 구자경 명예회장 ‘전통된장’ 담그며 여가 즐겨
현대百 정몽근 명예회장 9시면 출근, 점포 둘러봐
정몽근(66)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이른 나이에 대권을 승계하고 일선에서 물러난 경우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4월 12일 총수를 기존 정 명예회장에서 정지선 부회장으로 변경 요청했고, 이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받아들여, 올해부터 정 부회장을 현대백화점그룹의 총수로 등록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2005년 정 명예회장은 아들 정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의 대부분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어 지난해 12월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정 부회장 체제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후계자인 정 부회장의 나이가 상당히 젊고, 정 명예회장 또한 아직 활동하기에 충분한 나이임에도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때 정 명예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이와 관련해 현대백화점 한 관계자는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면서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매일 회사에 나오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매일 아침 8시30분에서 9시 사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그룹 본사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것. 이곳에서 12시 정도까지 업무를 본 후 서울 시내 주요 점포를 하루에 2곳씩 방문해 꼼꼼히 둘러본다는 것이 백화점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백화점 운영 현황을 점검하는 차원의 것이지 경영과는 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신세계 정재은 명예회장, 지분 정리하고 조언자 역할 충실
신세계그룹 정재은(69) 명예회장 역시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영에서 손을 뗀 경우다. 이미 지난 96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그는 특히 다른 원로 총수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도 지분은 유지하는 것과 달리 지난해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에게 주식 전량을 넘기면서 지분 정리 또한 깔끔하게 마쳤다. 대신 정 명예회장은 회사 내 직원들을 상대로 특강을 열어, 삼성그룹과 신세계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경영 노하우를 전달하는 등 조언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한국 최초 우주인 후보’를 뽑는 시험에 최고령으로 참가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우주인 후보를 뽑는 시험의 첫 관문인 3.5Km달리기를 무난히 통과하며 체력을 과시했고, 이어 영어와 상식, 기본체력 등으로 이루어진 2차 과정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이밖에도 대림그룹 이준용(70) 명예회장 또한 일찌감치 일선에서 물러나 전경련을 비롯한 대외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대림 측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은 평소부터 젊은 인재들에게 빠르게 경영권을 넘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올 초 전경련 회장 선출이 난항을 거듭할 당시 ‘70대 회장 불가론’을 내세우며 젊은 인재로의 변화를 외친 바 있다. 자신 또한 작년 11월 명예회장으로 물러났고, 아들인 이해욱 대림산업 석유화학부문 부사장이 지난 3월 그룹 지주회사격인 대림코퍼레이션 대표이사에 복귀하면서 후계 승계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준성(88)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최근 ‘문학전집’을 출간한 김 명예회장은 지난 83년부터 소설, 경제서적 등을 집필하며 25년여간 30편이 넘는 작품을 펴낸 재계의 원로총수이자 원로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