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南北’ 두 남녀 이야기…분단분학 새 지평 열었다

분단문학 천착해온 소설가 이정 장편소설 ‘압록강 블루’ 펴내
미리 보는 남북교류 시대 다큐 보듯 사실적 묘사 압권

2019-03-28     서형선 기자
[매일일보 서형선 기자]

“안 보이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인단 말입니다.

먹고픈 대로 먹고, 말하고픈 대로 말하고, 여행하고픈 대로 여행하고,

사랑하고픈 대로 사랑하고……. 기런 것들이 제 두 눈에 막 보입니다.”(139쪽)

‘압록강 블루’는 10년 가까이 분단문학에 천착해온 소설가 이정이 서울과 평양, 중국 동북지방을 오가는 오랜 취재 끝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남북합작 애니메이션 ‘새’를 제작하는 남한 감독 오혜리와 북한 연출가 로일현의 우정과 사랑, 거기서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들을 다뤘다.
작가 이정은 소설의 제목 ‘압록강 블루’를 ‘희망과 우울을 동시에 가진 색감’으로 정의한다. ‘압록강’은 북한을 외부세계와 이어 주는 희망의 통로이자 북한과 외부세계의 금을 긋는 금단의 경계이다. 생필품을 실은 무역 차량과 밀수선이 넘나드는 동시에 많은 북한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도강한다. 이러한 압록강의 이중적 현실이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을 이루고 있다.소설은 고지식하리만치 당에 충직한 북한 남자(로일현)와 자본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계에서 살아온 남한 여자(오혜리)가 만나서 펼치는 낯설지만 감내해야 할 애증을 담았다. 서로 다른 두 체제 속의 인물들이 겪는 파열음과 고뇌를 따라가다 보면 남북교류 협력시대를 앞둔 교류의 현장이 생동감 있게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 민족이 열어 가야 할 남북통일이 구호 속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대비와 실천에 있는 것임을 남북협력사업이라는 실험 장치를 통해 보여준다.실제로 작가 이정은 이 소설의 소재가 된 남북 애니메이션 합작사업을 진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새를 통해 평양에 있는 아버지의 생사를 알게 된 조류학자 원병오 박사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시나리오를 직접 써서, 2006년 중국 선양에서 북한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소설 속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이름의 단편 애니메이션 ‘새’를 제작했다.작가는 북한 지식인 로일현이 겪는 서로 다른 체제 사이에서의 고뇌와 갈등을 묵직하게 다루면서도 로맨스와 유머를 가미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 북한식 화법과 용어도 현장감을 높인다. 오늘날 북한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생생한 필치로 담아낸 점 또한 인상 깊다. 남북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온 작가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번 소설에 대한 평단에서는 “분단소설은 이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시인 홍사성) “획기적인 남북합작소설 같은 작품이다”(문학평론가 이경철)이라며 높이 평가를 했다작가 이정은 논산에서 태어나 경향신문 기자와 민족문화 네트워크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22010년 <계간문예>로 등단했다. 북한을 7차례방문하는 등 20여 년간 북한을 취재해 왔다. 장편소설 ‘국경’(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을 비롯해 북한과 북한사람들에 대한 다수의 소설을 써왔다.